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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YOU Jul 15. 2016

공자님 말씀에 품었던 삐딱선의 정체, <관중과 공자>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공자님 말씀에 삐딱선을 타는 경향이 있었다. 어떤 공자님 말씀을 들어도 심드렁했고, 아무런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으니 더 들여다보게 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네가 아직 몰라서 그래’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알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 삐딱선의 기원을 굳이 따지자면, 나의 성향 상 공자님 말씀에서 느껴지는 ‘기득권에 대한 로망’ 내지는 ‘기득권의 어설픈 논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철학자가 아니라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야 할 것 같은 강신주의 여러 저서 중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관중과 공자>다. 이 책을 통해 그간 내가 공자에 대해 갖고 있던 거부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의 인간은 두 부류였다고 한다. 지배계급을 뜻하는 인(人)과 피지배계급을 뜻하는 민(民). 저자는 여러 문헌들을 인용해 당시의 사회가 人과 民을 엄격히 구분해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공자님 말씀은 모두 지배계급인 인(人)에만 해당한다는 점을 깨우쳐준다.  


   [공자가 말했다. “천승의 국가를 다스릴 때에는, 일을 공경히 하여 신뢰가 있어야 하며, 쓰는 것을 절약하여 애인(愛人)해야 하며, 사민(使民)할 때는 철에 맞게 해야 한다” (논어, 학이)]

   [공자가 말했다. “민중(民)은 따라오게 하면 되지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논어, 태백)]


   한 문장 안에서 人과 民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고, 民에 대하여는 섬기고 사랑할 것이 아니라 농사철에 맞게 쓰면 되고 알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民을 일종의 생산 수단으로 보고 있는 것인데, 당시로서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터다. 저자는 ‘공자가 주장했던 인은 보편적 사랑이 아니라 지배계급인 국인(國人)에 국한된 귀족적 고상함이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배계급인 人에 대한, 人으로서의 예와 사랑을 강조했던 공자는 막상 지배계급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관중과 공자>는 공자가 왜 이토록 지배계급의 처신과 태도에 천착했는지를 공자의 출생부터 하나씩 짚어가며, 그 결과 공자 철학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한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자의 출생은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내 기준에 사마천은 공자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인물이다. 사마천은 <사기>를 집필하며 공자를 다른 제자백가들과 달리 제후와 동급으로 격상시켜 ‘세가’편에서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굳이 공자가 ‘야합(野合)’으로 태어났다고 적어 둔다. 또한 ‘열전’ 안가편에서는 공자가 안가를 높이 평가했다고 하고는 반면 안가는 공자를 말만 앞세우는 사람으로 비판했다고 (구태여) 적고 있다. 

   어쨌거나, 사마천이 적은 대로 공자는 ‘야합’으로 태어났다. 국인(國人)이 사는 성 밖은 아직 난혼(亂婚)의 시대였을 때다. 공자가 난혼으로 태어났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예에 따른 혼례를 치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공자는 어머니 손에서 자랐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묘소를 가르쳐주지 않았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끝내 아버지 묘소를 찾아 어머니를 합장했다고 한다.      

   아주 작은 커뮤니티에도 여러 층위의 주류와 비주류는 있기 마련이다. 생긴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든 특정 주류에 편입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이 자신의 처지에 콤플렉스까지 갖고 있으면 주류에 편입하고자 하는 열망에 분별을 잃기도 한다. 영화 <부당거래>의 황정민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공자는 주나라 질서가 통용되던 당시 사회에서 명백히 비주류였다. 그러나, 비주류로 살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소꿉놀이 대신 제를 올리며 놀았다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주류 사회의 질서와 문화에 대한 동경이 강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주나라 예에 따라 아버지 묘소를 찾아 합장함으로써 주류 사회에 도달하고자 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미 주나라는 쇠퇴하여 주류 질서가 재편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공자의 눈에는 새로운 질서가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의 난세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주나라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라 믿었고 그러한 생각을 심화시킨 것이 공자의 철학이다.


   공자가 생각하는 주나라의 질서란 지배계급이 수양과 실천으로 예와 인을 다하면 피지배계급은 지배계급을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논어, 자로)’는 것이다. 주나라에 그런 시절이 있었을 수는 있으나 이미 주나라는 쇠퇴하고 칼이 춤추는 춘추시대인데, 공자는 시대의 요구를 읽기에는 비주류인 자신의 처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다. 

   당시의 제자백가들이 그러했듯 공자도 자신을 알아주는 제후를 만나 자신의 사상을 펼치고 천하를 통일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공자는 누구에게도 발탁되지 못했다. 그 즐겁다는 배움을 작파하고 6년간 제후국들을 돌며 일종의 영업을 했지만 수확 없이 돌아와야 했다.      

   그렇다면 공자가 포착하지 못한 시대의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춘추전국시대 다섯 번의 통일 중 첫 번째 통일을 이루어낸 관중의 철학과 행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앞서 기술한 공자의 사유는 그 시대의 보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民에 대한 공자의 시각은 당시로서는 문제적이거나 논쟁적인 면이 없었다. 물론, 혁명적인 면도 없었다.

   그러나 관중은 民을 그저 따라오는 집단이 아니라 결정력이 있는 주체적 집단으로 보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유를 했다. 오늘은 이 나라가 쳐들어오고 내일은 저 나라가 쳐들어오는 난세에, 궁극적으로는 民이 제후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民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해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본, ‘民의 주체성’을 간파한 사상가가 관중이다. <관중과 공자>에는 관중의 이 혁명적 사유가 어떻게 현실에서 구체화되어 첫 번째 통일을 이루었는지가 흥미진진하게 적혀 있다. 반면, 공자 철학은 춘추전국시대가 끝나고 시절이 안정된 뒤 기득권층의 통치 논리로 채택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다고 저자는 해설하고 있다. 그러면서 人의 범위도 모든 인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의도적 재해석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저자는 공자 철학의 한계로 유아론적 세계관[唯我(오직 유, 나 아), solipsism]을 들고 있다. ‘내가 잘 하면 남들도 당연히 따라오니 스스로를 수양하고 정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핏 수양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작동될 때에는 ‘나’를 강조하게 된다. 생각해 보라. 역지사지나 서(恕) 사상 모두 내 입장에서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에서도 썼듯 내 입장을 기준에 두는 한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폭력이 되기 쉽다.     

   나는 공자님 말씀에서 기득권층에 편입되고자 하는 열망이 늘 먼저 읽혔었다. 그 열망 자체는 불편하지 않았다. 정도와 방향의 차이일 뿐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이니까. 오히려 공자가 말하는 기득권층의 ‘도리’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기득권층의 선량함은 아랫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언제든 회수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봐주니까 점점’, ‘내가 계속 두고 봤는데’ 하는 말들이 언제 쓰이는지 떠올려 보라. 나는 ‘오직 스스로 정진하여 어질고 착한’, 그러나 때에 따라 돌변할 수도 있는 지배자보다 피지배자의 요구에 민감하고 피지배자를 두려워할 줄 아는 지배자를 좋은 지배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직장으로 시야를 좁혀도 그렇다. 내 사정이나 감정은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스스로의 신념에 투철한 상급자보다는 ‘나 사용법’을 알려고 애쓰는 상급자가 좋다.      

   <관중과 공자>는 어릴 적부터 있었던 공자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의 정체를 알 수 있게 해 준 책이다. 관포지교의 인물로만 알고 있었던 관중이 민의를 포착해 천하통일을 이루는 흥미로운 과정을 알게 된 건 생각지 않은 수확이었다. 관중은 약 3천 년 전 마소와 다름없이 여겨지던 民의 주체성을 간파했고, 그리하여 타자성(他者性)에 대한 사유와 실천을 해 낸 사상가다. 타자 즉, 나와 다른 누군가와 끊임없이 부딪쳐야 하는 지금 우리의 세상살이에, 관중의 사상이 해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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