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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YOU Jul 27. 2016

성을 판매할 권리에 대한 의문, <페미니즘의 도전>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됐다. 성구매자들의 반발이야 예상했지만 성판매자들의 반발은 내게 예상 밖의 일이었다. 성판매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시위를 했다. 내 눈에는 ‘동원된 것’이라는 기사만 들어왔고 그렇게 믿으며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헌데, 이번에는 ‘자발적 성노동자’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자발적 성노동자라고 주장하는 여성도 미디어에 등장했다. 최근에는 저명한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가 성매매 비범죄화를 주장하고 나서 논쟁이 첨예하다. 

   자발적 성노동자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①성적자기결정권에 따른 선택이고, ②직업선택의 자유로서 보장돼야 하며, ③따라서 노동3권 보장과, ④성노동 비범죄화가 필요하며, ⑤성노동에 종사하는 것이 당당하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 자체로는 구구절절 맞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그렇다면 <자발적 장기 판매 노동자>도 성립될 수 있는 거 아닌가? 장기 판매도 신체적자기결정권에 따른 선택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또한, 자기결정권이란 완전한 선택권이 보장된 상태에서의 결정권을 의미하는 것이지 이것 말고는 선택할 것이 없는 상태에서의 결정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예컨대, 내가 대기업도 갈 수 있고 성판매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성판매를 선택한다면야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성판매 말고 대안이 없어 선택한 것을 두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본다거나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한 것으로 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젠더 관점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뭐가 됐든 여성이 주체적 삶을 선택해 살겠다는데 지지해야 하는 거 아닐지 하는 생각들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만난 책이 <페미니즘의 도전>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자발적 성노동자라는 개념에 동의할 수 없었던 막연한 이유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정말이지 명료하게 설명한 책이다. 꼭 한 번은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주변에 자주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책의 내용 중 성노동 문제를 다룬 부분만 인용하고자 한다.  


   우선, 자발적 성노동자임을 주장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성적자기결정권은 약자에게 가해지는 성적 억압과 폭력에 저항할 때에 의미 있는 개념으로 탄생한 용어인데, 그 자체로는 몸과 정신을 분리하는 관점이라는 점에서 한계도 분명한 용어라고 설명한다. 

   두 번째로 짚은 것이 ‘젠더 관점’에서의 성노동 문제다. 자발적 성노동자에 의해 성을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게 된다면, 성노동자의 성별과 연령, 국적은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젠더 문제로만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애초 성노동자의 성별을 ‘성인 여성’으로만 한정해 고민했던 것이 나의 한계였다. 성노동을 인정하게 되면, 성판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회적․경제적 계급이 낮은 자들일 수밖에 없다. 결국 성노동은 젠더 문제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이자 빈곤의 문제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대안을 모색할 기회를 차단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성노동을 인정하게 되면, 성노동자들에게 다른 직업을 선택할 기회가 왜 주어지지 않는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대안을 모색할 기회가 차단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자발적 성노동자에 대한 나의 의문이 해소된 지점이다. 그러나 곧이어 더욱 당혹스러운 더 많은 난제들을 만나게 됐다. 저자는 ‘자발적 성판매’에 대해 어떠한 결론도 갖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의 성판매’와 관련해 지금까지 알려진 여러 입장들이 갖는 모순과 한계, 딜레마 상황들을 짚고 그럼에도 여전히 남는 의문을 제기한다. 여성주의가 성판매 여성을 대변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몇몇 성판매 여성이 내는 목소리가 전체 성판매 여성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가, 성판매 여성의 경계는 어디인가, 여성의 문제가 아닌 계급의 문제로 봤을 때 여성 내부의 계급 차이는 어떻게 다룰 것인가, 성판매 여성의 정체성은 고정된 것인가, 여성이 처한 구조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현실 설명력이 있는가. 대충 적어도 이 정도인데, 어느 것 하나 쉽게 답할 수가 없다. 책 제목답게 ‘도전’을 요구하는 질문들이다.

   저자는 “여성주의자 입장이나 성판매 여성의 입장이나 모두 ‘부분적 진실’이고 ‘상황적 지식’이다.”, “투명한 이야기도 끝난 이야기도 없다.”, “이 논의에서 성판매 여성과 여성주의가 어떻게 새롭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가 쟁점이 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성매매를 반대하는 여성운동은 다양화, 다원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로 돌아가야겠다. ‘페미니즘은 차이를 보편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로부터 기존의 보편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객관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합, 유동한다.’. 

   나는 ‘자발적 성노동’ 문제를 접하고는 객관적이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그래서 보편적으로 설득될 수 있는 입장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도전>은 그것이 허상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지. 객관이 어디 있을 것이며, 차이를 보편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방식으로 무슨 사유가 가능하겠나. 그래서 내게 ‘자발적 성노동’ 문제는 여전히 의문인 채로 매체에 등장할 때마다 가끔씩 생각해 보게 되는 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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