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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YOU Nov 08. 2016

엇갈린 감동 포인트 -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독서 편식이 오래된 참이었다. 그런 내게 친구가 추천한 책이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였다. 대충 목차를 보고는 훌륭한 문학 작품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책으로 생각했다. 속성으로 문학 작품들을 훑을 수 있겠다는 얄팍한 생각에 책을 펼쳤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이 책은 약 100개의 문학 작품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 추천사를 엮은 책이었다. 읽은 작품이 몇 개 없다 보니 작가와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지점이 없어 지루하기는 했지만, 내게는 독서 편식을 넘어서겠다는 목표가 있지 않은가. 계속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읽고 싶은 책들이 하나 둘 늘어갔고 요즘 새로운 분야의 책을 읽는 재미를 느끼는 중이다.



사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감명’을 받은 부분은 서문이다. 저자 얀 마텔은 <파이 이야기로>로 유명한 소설가다(원작을 영화화한 '라이프 오브 파이'가 더 유명하려나..). 얀 마텔은 자국 캐나다의 수상이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다가 자신이 직접 읽어볼 만한 문학작품을 골라 추천사와 함께 수상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한다. 2007년 4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총 101번의 편지를 보냈는데 답신을 다섯 번 받았단다. 서문에 공개한 내용은 이러하다. 우선, 문서담당관이 수상님을 대신해 답신을 보낸다고 밝히고,

‘수상님께서 감사의 뜻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사려 깊은 행동에 저희 모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선생님의 의견도 신중히 고려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제가 실례를 무릅쓰고 선생님의 편지를 산업부장관과 문화유산부장관에게 전달했습니다. 따라서 두 장관께서도 선생님의 우려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일부러 시간 내어 그런 편지를 보내주신 것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서문을 읽어 내리며 "와. 이렇게 정성스러운 회신이라니. 정말 아름다운 소통이다." 하는 생각으로 감동하고 있을 때 저자의 분노에 찬 문장이 이어진다. 이것들은 답장이 아니라 감사의 표시일 뿐이고, 그마저도 고작 다섯 번 뿐이며, 수상으로부터는 한 마디도 듣지 못했고, 내용도 형식적이기 그지없어 전혀 소통의 느낌이 없었다는 거다. 감동이 깨지며 웃음이 나왔다. 똑같은 답신에 이렇게나 다른 반응이라니. 그 차이가 어디에서 왔겠는가. 만약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인이 대통령이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없다며 얀 마텔처럼 격주로 문학작품을 추천하는 편지를 대통령에게 보낸다면, 그리고 그 내용을 블로그를 개설해 공개한다면, 답신이 형식적이라고 성토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장 블랙리스트에 오를 일이다. 캐나다의 정치문화가 부러웠다.


장애인 복지 정책 연구를 위해 유럽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영국에서 만난 사례자는 사고로 신체장애를 갖게 됐는데 휠체어를 집 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자신의 집을 개조해줬다는 이야기를 하며 정부 정책에 감사를 표했다. 독일로 넘어가서 만난 사례자도 내용은 비슷했는데 이 분은 ‘집 개조하는데 6개월씩이나 걸렸다’며 느려 터진 정부를 비판했다. 장애인 복지 정책이 더 발달한 나라는 ‘물론’ 독일이다. 함께 출장길에 올랐던 동료들은 독일을 부러워했다.


뜻밖의 재미를 준 책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는 본문도 훌륭하다. 고전부터 희곡, 시, 어린이 동화까지 읽어볼 만한 문학 작품을 두루 소개하고 있는데, 품질보증서 같은 느낌이라 어떤 걸 골라 읽어도 기본은 할 것 같은 믿음이 생긴다. <섬은 미나고를 뜻한다>라는 작품에 대한 저자의 추천사로 글을 맺고자 한다. 


“역사적 사건에서 필연성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건이 일어나도록 허락하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먼저 꿈을 꾸어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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