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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YOU Nov 24. 2016

주도권을 쥐고 싶다면, 사과하라!

“어떻게 그렇게 죄송하다는 말이 쉽게 나와요? 좀 가르쳐 줘요.”


후배가 묻는다. 나는 업무 관계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잘 하는 편이다. 백배사죄도 잘 한다. 보통은 사과의 말 이전에 자신이 왜 그랬는지 동기를 설명하려 드는데, 상대방에게도 늘 태산 같은 동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대화는 갑론을박이 되고 ‘내가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 그래도 이해를 못 해?’라며 더 화가 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과부터 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일의 진행을 위해서다. 내 입장에서는 다음 단계를 원활하게 진행하는 게 이득이다. 기분 상한 사람들끼리 일 해 봐야 처음만 못할 테니 잘잘못을 따지는 건 일을 진행해야 하는 내게 불리할 뿐이다. 두 번째 이유는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다. 백배사죄를 하고 나면 내가 한 수 접어 준 것이므로 이번에는 상대가 접어 줄 차례라는 암묵적 룰이 만들어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다음 단계를 진행하면서 재차 사과하거나 어려워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과한 것으로 끝이다. 어쨌거나 내게 있어 사과는 전적으로 나 좋자고 하는 일이다.


행사를 준비하며 멘토링 전문가 A와 유명 방송인 B를 섭외하기로 했다. 먼저 A에게 연락해 행사 취지를 설명하고 또 다른 게스트로는 B를 섭외할 예정이라고 했더니, A는 B와 잘 아는 사이라며 자신이 이야기를 해 보겠다고 했다. 곧바로 B도 함께 하기로 했다는 회신이 왔다. 그 후에도 몇 차례 A에게 연락을 하고 A가 B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됐다. 그러자 얼마 후 B에게 전화가 왔다. 왜 직접 연락을 안 하고 엄하게 A를 통해 듣게 하느냐는 항의였다. 장황하기는 했지만 조목조목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다. 처음부터 직접 연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상하게 미루게 됐던 터였다. 두 말 안 하고 백배사죄했다.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닳도록 사과했다. 그런데 B는 이렇게 쉽게 끝내고 싶지 않았는지 “저 지금 촬영 들어가야 하니까요, 내일 다시 통화하고 할지 말지 결정하죠.”한다.


다음 날 B에게 수차례의 전화와 문자 연락을 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더니 그다음 날 문자가 왔다. “어제는 종일 촬영이 있어 전화 못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일 못 하겠네요. 또다시 A를 통해 진행상황을 듣게 하시나요.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습니다. 저는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우리 실무자가 A와 무슨 통화를 한 모양인데, 상황을 몰랐던 A가 그새 B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오해가 더 커진 것 같았다. 실무자는 사색이 돼서 자신이 찾아가 죄송하다고 하겠단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시작이야 내가 잘못했지만 백배사죄를 했음에도 바로 상황을 종료시키지 않고 다음날까지 푸닥거리를 이어가겠다고 한 것도 거슬렸는데, 그다음 날까지 ‘너 잘 걸렸다’는 태세로 덤비는 걸 보고는 내가 상황을 종료시켜야겠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진행하면 행사 끝날 때까지 삐걱거릴 게 자명하다. B를 빼고 다른 게스트를 섭외하기로 했다. B가 빠지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으니 내가 회신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며칠 후 A와 만나 회의를 하면서 우리 실수로 B와 못 하게 됐고 다른 게스트를 섭외했다고 말했더니 깜짝 놀란다. “B는 이 행사 되게 기대하고 있어요. 오늘 아침에도 아이디어 내면서 이러저러하게 진행하자고 연락 왔었는데요?” B는 아마 자신의 유명세와 촉박한 일정 때문에 우리가 자신을 놓지 못할 거라고 착각했던 모양이다.


만약 내가 어설프게 사과했거나 사정을 설명하는 것에 급급했다면 혹은, 계속되는 사과 요구를 들어주며 전전긍긍했다면, 다음 단계로 나갈 수도 주도권을 가져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할 만큼 했다’ 하는 생각이 들며 “B 빼고 갑시다!” 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예도 있다. 협력 기관 대표가 전화를 해서는 “실무자들끼리 이러저러한 혼선이 생겼다는데, 그쪽에서 잘못 말한 걸까요 우리 쪽에서 잘못 들은 걸까요?”라고 묻는다. 내가 “그거야 알 수 없지만, 문제 해결 방법은 있습니다.”라고 답하는 순간 상대방이 폭발한다. “그냥 넘어가 주려고 좋은 말로 누구 잘못이겠냐고 물은 건데 죄송하다고는 못 할망정 알 수 없다고요?”하며 난리가 났다. 또 백배사죄했다. 무조건 우리 실무자의 잘못이라고 전제하고 너그럽게 봐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는 막 돼 먹은 태도임에도, 일을 진행하는 게 유리한 나는 끝없이 죄송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냥 못 넘어가겠다고 하더니 잠시 후 우리 대표실에서 연락이 왔다. 협력 기관 대표가 심하게 항의를 하더라며 “그냥 죄송하다고 한 마디 하지 그랬어.” 한다. 내가 죄송하다고 백 마디쯤 했다고 하자 대표가 당황하며 몹쓸 사람이라고 그런 줄 알았으면 자신도 한 마디 했을 거라며 신경 쓰지 말고 일하라고 한다. ‘면죄부’까지 얻었겠다 다음에도 내 식대로 일을 했더랬다.


사과? 어렵지 않다. 실익을 따졌을 때 즉각 사과는 꽤 유용한 카드다. 실익만 보자. 중요한 건 일을 장악하고 진행시키는 것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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