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 김미경

by 토마토

화요일 출근길은 애매하다. 명백히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던 월요일이 지나고 오늘도 회사에 가야 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앞으로 삼일이나 더 출근해야 다시 주말이 온다는 점은 정말 좌절스럽지 않을 수 없다.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이 넓으니 주의하라는 안내방송 끝에 스크린도어가 열린다. 전동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문으로 향하는데, 열리자마자 출입문을 닫겠으며 곧 출발한다는 안내멘트가 나온다. 다급해진 승객들이 앞사람을 밀치며 열차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언젠가 본 영화 속의 질주하는 쥐떼들 같다. 슬랙스에 셔츠를 입고 가죽가방을 든 쥐, 색색의 화장을 하고 향수를 뿌린 쥐, 무선이어폰을 꽂고 무채색의 옷을 입은 무표정의 쥐, 세상 고된 표정의 쥐떼들 사이에 떠밀려 개찰구로 향하는 나, 김미경 쥐.


스물아홉의 늦여름에 김미경 쥐는 공무원 시험을 다섯 번째 떨어졌고, 학사학위와 한국사 자격증만 기재된 한 장 짜리 이력서도 검토해 주는 회사에 취직을 했다.

전공과 크게 상관없는 사무직에 급여도 짠 편이었지만 당시에는 4대 보험이 되는 회사에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년 전쯤 연봉을 조금 올려 이직을 했지만 실수령액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



처음 회사에 취직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공무원이 아니면 어디에서 너를 받아주겠냐고 했었다.


말 잘 듣는 장녀인 채로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어 성실한 남자를 만나 아이를 두 명쯤 낳아 기르는 것.

그렇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부모님이 나를 위해 그린 나의 미래였고,


일류 대학에 들어간 자랑스러운 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자랑스러운 딸.

번듯한 남자와 결혼해 메신저 프로필에 자랑할 수 있는 귀여운 손주를 낳은 딸.

아마 이것이 부모님이 원한 딸로서의 김미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것도 이루어줄 수 없었다.

그냥 딸이 되었다.

음,

맥주를 좋아하고 고양이와 함께 사는 혼기가 제법 지난 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