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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미 Nov 21. 2024

택배가 온다.

큰 손 시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종이상자.

"고객님의 상품이 배송 완료되었습니다."

주문한 물건이 없는데 상품이 배송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현관문을 빼꼼히 열어 보았다.


■보내는 분: 박@화

■상품명: 김치, 무, 감, 사과


시어머니다.

택배 박스에 적힌 상품명을 보니 한숨이 먼저 나온다. 김치부터 사과까지.

박스 테이프를 뜯으면서부터 긴장이 되었다. 또 얼마나 보내셨을까.


"어머니, 냉장고에 자리 없어요."

"저번에 보내주신 것도 아직 있어요."


결혼 10년 차에 들어서야 조심스레 거절을 해보지만 그런 말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보내신다.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네가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과 그리움의 표현이려나. 직접 전할 수 없는 정성 어린 손길과 마음을 실어 보내는 그녀만의 방법 일테다.



시엄마네 산지직송



은퇴 후 작은 텃밭을 꾸리시는 아버님 밭에서 수확한 무, 배추, 아오리 사과부터 김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김치까지. 박스를 비울 때마다 또 작은 박스가 나오고, 비닐봉지 꾸러미가 또 나온다.


역시 우리 어머니 큰 손 인정.


박스 위로 유월이가 좋아하는 대봉시가 제일 먼저 등장했다. 먹거리를 고르고 포장하며 '이건 손주가 좋아하는 것', '잘 먹겠지', '부족하지는 않을까'하는 마음이었을까. 손주는 다시 만나는 자식의 어린 시절이라더니, 이토록 지극정성인 시어머니를 보며 문득 나 또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사랑받는 기분이 든다.



물론, 이 고부관계라는 게 이븐 하지 않을 때도(?) 더러 있었다.

막 결혼했을 무렵,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볶음밥이 최선이던 새댁 시절에는 어머니의 택배가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마트에 다 있는걸 굳이 이렇게 챙겨 보내시나 싶었다. 손질도 필요 없이 간편하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밀키트라는 게 있는데.



요리에 서투르다 보니 원물 그대로의 재료들이 냉장고 안에서 썩는 건 뻔한 일이었고,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는 점점 쌓여갔다. 효자 남편은 참다못해 "엄마, 얘 이거 다 버려. 보내지 마."라는 말로 어머니의 가슴팍에 비수를 명중시키기까지 이르렀다. "내가 버린다니! 당신이 안 먹은 거잖아."로 시작된 부부싸움의 마침표는 늘 시어머니께로 향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택배공격은 시댁과 더 멀어진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둘에서 넷이 된 가족의 식비는 계산기로 두드려보기도 실로 어마어마했다. 냉장고 속 재료로 아이들을 먹여야 하던 어느 날, 어머니의 택배는 부담이 아닌 연결고리가 되었다.


떨어져 있어도 사이를 이어주는 따뜻한 다리, 사랑과 그리움으로 단단히 만들어졌을 다리.


이제는 택배 상자를 열 때마다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어쩌면 그 한마디에 담긴 진심이 오늘도 우리 가족을 든든히 지탱해 주는 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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