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도대체 되는 게 뭔데
‘숨겨진 세상~~~’ 영화 겨울왕국의 노래가 생각났다. 그래 임출육은 나에게 숨겨진 세상과도 같았다. 결혼 전, 먼저 임출육에 가는 친구들이 대화의 주제가 달라지면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낀 적은 있었다. 그래서 그때 결혼, 임출육의 세계는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이 사는 세상과 같은 것일까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이 세계에 도착하니 ’이 정도로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었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산부에게 이렇게 많은 제약이 따르는지는 정말 몰랐다. 미디어에서도 임신하면 입덧만 하는 장면만 보여주니 뭐 - 숨겨진 세상이 ‘입덧’ 정도라고 생각했지 뭐 하나부터 열까지 다 - 제약이 된 세상인지는 꿈에도 생각하지를 못했다. 물론 술, 약은 당연히 안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이 것 들 외에 먹는 것 자체에도, 행동 자체에도 임산부는 그 모든 것에 제약이 걸려 있었다.
과일도 어떤 건 임산부에게 안 되고 어떤 건 되고, 해산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제약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나 그렇게 좋아하는 고등어인데 - 중금속 이야기가 나오고 뭐 연어회라면 사족을 못쓰는 난데 ‘회’는 상상도 못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 되어버린 것이다. 음료수를 먹으려다가도 카페인 성분을 따져야 했고 아이스크림도 임산부 당뇨 때문에 조심하라고 했다.
다리를 높게 드는 것도, 엎드려 있는 것도, 무리한 운동도, 너무 많이 자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또 배를 압박하는 청바지도 입으면 안 되고, 배를 차게 입는 것도, 그냥 몸을 차게 입는 것이 허용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자궁 수축 때문에 찬물 샤워도 안되고, 사우나도 안되고, 목욕도 임신 초기에는 조심해야 하며 10주 지나고 나서야 해야 한다니 모든 게 다 제약뿐이라고 느껴졌다.
제일 괴로웠던 건 바로 벌레에 물려 간지러워 죽겠는데 버물리를 바르지 못하는 것 - 버물리 공식 홈페이지는 가능하다고 쓰여 있으나 뉴스에 버물리 ‘진통제 성분’ 때문에 임산부 주의 표시 하기로 라는 기사에 버물리를 들었다가도 내려놓았다. 양치를 하다가 토를 해서 찝찝하여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글을 했다가. 가글에 알코올 성분이 들어간다는 생각이 뇌를 스쳤을 때 모두 다 개어내야만 했다. 물론 그걸 삼키지만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 소량의 알코올이라도 몸에 들어갈까 노심초사하게 되어버린 스스로 제약을 걸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도대체 되는 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지 않고 쉬고 있는 이 임산부에게 주어진 자유는 ‘낮잠’뿐 이란 말인가? 근데 사실 이마저도 나는 자고 싶지 않은데 호르몬 때문에 자꾸 눈이 감기는 것이니 이것도 온전한 자유라고 할 수 없다.
이 모든 제약에 의문이 들려고 할 때면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고 생명을 품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보지만 아직 아기는 1cm도 안되고 나는 아직 ‘진짜 내 뱃속에 뭐가 있나?’라는 생각을 하는 단계이다 보니 그저 이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 숨겨진 세상에 와 있는 내가 현실감이 없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나에게 주어졌던 자유를 하나씩 포기하고 매일 순리와 맞서 싸우던 사람이 순리를 따르는 것이 - ‘나’의 자아를 내려놓고 ’ 임산부’-‘엄마’로서의 자아를 탑재하게 만드는 것이 숨겨진 세상의 첫 단계였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제약의 세상- 무슨 멀티버스의 세계관에 놓여 버린 기분이었다. 갑자기 마블의 주인공이라도 되어버린 걸까라고 생각하면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또 나쁘지 않은 알 수 없는 기분 속 나는 이 수도 없이 많은 제약이 걸려 있는 세계관에 아직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왜 자꾸 손이 그리로 가는지 모를 배를 어루만지면서 그저 두 발을 딛고 서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