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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낑깡 Feb 22. 2022

행복을 위한 경제관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을 듣고



행복을 위한 경제관

w. 낑깡



  '누군가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이 가사로 유명한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

  하지만 나는 다른 가사를 더 좋아한다.

  '새샴푸를 사러가야지. 아침 하늘빛의 민트향이면 어떨까.'



  스무 살의 나는,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경했다. 서울로 대학은 절대 보낼 수 없다던 부모님도 합격증과 나의 단식 투쟁은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기에 나는 고시원에 살게 되었다. 부모님에겐 부담스럽지만, 서울에서 한 몸 건사하기엔 부족한 용돈을 받았다. 내 고집대로 상경한 것이니 나는 다 좋았다, 서울에서 겪을 불행도 전부 다 좋았다.


  그러나 내가 꿈꾸는 로망에는 돈이 따랐다. 고시원은 내 몸 누일 곳뿐이었는데, 그 마저도 바퀴벌레와 함께 해야 했다. 살면서 자꾸만 무언가를 덜어내야 했다. 덜고, 덜고, 또 덜다 보니 결국 먹고, 공부하는 것에만 돈을 쓰게 되었다. 돈 귀한 줄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나는 서울에 와서야 100원의 소중함을 알았다. 100원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은 좋았으나, 100원에 울고 웃는 내 자신을 발견했을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제일 첫 번째로 덜어낸 것은 취향이었다. 취향은 취향만큼의 값어치가 있어서, 돈이 없는 나는 지불할 수 없었다. 제일 싼 비누, 샴푸, 바디워시, 로션을 샀다. 내가 좋아하는 사과향 샴푸는 1000원이 더 비쌌으니까. 1000원으로는 라면 한 개를 살 수 있다. 한 끼 식량을 위해 나는 사과향을 포기했다. 경제관이 형성되지 못한 나는 그게 현명한 소비인 줄 알았다. 그냥 무조건적으로 아끼는 것, 100원이 모여 1000원이 되고, 1000원이 모여 10000원이 되니까. 여유가 없으면 없을수록 나는 개성 없는 인간으로 변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꾸만 덜어내야 했다. 취향은 내게 사치라고 응당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사생활은 없고, 방음은 사치인 고시방에서 천장을 보고 누워있는 시간이 늘었다. 무기력했다. 그 와중에 (옆방에 가까운) 옆집 사람은 자주 울었다. 울음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이어폰을 끼고 아무 노래를 틀었다. 이어폰을 타고 비밀의 화원이 흘러나왔다. '새샴푸를 사러 가야지. 아침 하늘빛의 민트향이면 어떨까.' 이 가사를 듣자마자 나는 눈물이 났다. 그래, 행복은 정말 사소한 거구나. 1000원 비싸더라도 민트향이 나는 샴푸를 고르는 것이 행복이구나.


  그 이후로 나는 사과향이 나는 샴푸를 샀다. 무난한 디자인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산다. 그러나, 없던 여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 절약해야 했다. 가끔은 내내 라면만 먹을 때도 있었고, 교재를 도서관에서 빌리고 반납하고 빌리고 반납하고를 반복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행복했다. 취향을 위해 지불한 그 돈은 응당 쓰여야 할 곳에 쓰였다고 생각했다.


  경제관이 잘 형성되어있지 않았던 나는 그냥 무작정 뭐든지 싸고 양이 많은 것을 사는 일이 잘 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응당 취향을 논할 처지가 아니고, 다 그렇게 산다고 나를 다잡았다. 돈이 없는 나는 어쩌면 행복할 권리가 없다고, 그런 무서운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돈을 어떻게 쓸지, 어떻게 써야 행복할지를 정하는 것이 진정한 경제관임을 이제는 안다. 


  이 글을 읽고 누군가는 치기 어린 젊은이의 철없는 생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무작정 비싸고 취향인 물건을 사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취향을 위해 자기가 생각하는 몇 푼쯤을 더 쓸 수 있는 마음속 여유를 가지자는 말이 하고 싶었다. 그 몇 푼이 귀함을 안다. 하지만 그 몇 푼을 어떻게 아끼느냐는,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민트향이 나는 샴푸'였다. 이를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다.


  행복은 참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 내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너무 작아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 작고 작은 행복을 잡아가다 보면 분명 커다란 행복이 되어있겠지. 하루하루, 나에게 사소한 행복을 선물하고 싶다. 마음속에 여유가 없을 땐,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을 꺼내 듣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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