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꼬박일기 05화

나도 내가 재미있어야 놀아

꼬박일기_5

by 노해원
img-2.jpg © 황바람



오랜만에 미싱기를 꺼냈다. 막내 '우리'를 키우면서는 거의 처음 꺼낸 거 같다. 미싱기를 꺼내 놓으니 제일 먼저 '우리'가 관심을 보인다. 그런 '우리'를 보며 울림이 이음이가 '우리' 만할 때 생각났다. 미싱기를 돌리고 있는 내 맞은편에 앉아 신기한 듯 쳐다보던 동그란 눈. 미싱을 돌리던 내 옆에서 아이들은 실과 바늘을 구경하고 같이 페달을 누르고 내 등에도 올라탔다가 옆에 있는 재료들로 자기들만의 신기한 놀이를 했었다. 그때 보단 훌쩍 큰 울림, 이음이지만 여전히 내가 뭔가 하려고 하면 관심을 보인다. "이건 뭐야?" "나도 인형 이불 만들래" "나 단추 하나 가져도 돼?" 옆에 와서 종알종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니 아직 아가들 같아 귀엽다. 이제는 막내 우리까지 조용히 형들 옆에서 한 자리 차지한다.


나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지 않는 엄마다. 놀아 줄 시간 자체가 별로 없기도 하고, 내가 워낙 이입형 인간이라 재미없는걸 재밌는 척 놀아 주는걸 잘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아이들한테 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우리(아이들과 나)가 함께 즐거울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본다.(나의 이기심을 이렇게라도 포장해 본다) 첫 번째 방법은 내가 하는 것에 아이들이 관심을 보일 때 최대한 내버려 두는 것이다. 오늘처럼 내가 꺼낸 미싱기를 보고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재료를 더 가져와 방법을 알려 준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를 함께 보기도 하고 아주 가끔 새벽에 함께 축구를 보기도 한다. 덕분에 한두 시간이면 끝날 일을 일주일 만에 끝내고 요구에 응해 주느라 두 세배의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는 어려움 이 있지만. 놀아주지 않는 시간을 이렇게 쓴다 생각하며 그 시간을 최대한 너그럽게 보내려 애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얕고 넓은 덕력+맥시멀 리스트 수집왕인 내 주변에는 아이들이 보기에 재밌는 것이 많다. 아이들이 금방 지루해할 것을 대비해 숨겨 뒀다 가끔씩 특별한 날 인 척하면서 꺼내 놓기도 한다. 장난감 놀이를 하자고 하면 만들기를 하자고 딴소리를 하거나 숨겨 놨던 내 장난감을 꺼내며 '몰래 빌려 주는 거니까 너만 갖고 놀아' 하며 주는 식이다.('몰래' 놀아야 하기 때문에 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논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미끼 삼아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주로 동화책이나 영화를 볼 때 사용하는 방법인데.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 뒤에 내가 보고 싶은 것을 꼭 같이 포함시킨다. 뭐든 주입식이 되면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이니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전략이랄까.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보게 된 첫 영화가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스>였다. 웬만한 애니메이션 재밌는 건 거의다 봤고, 이제 슬슬 영화 한 편 같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대학 때 보고 듣고 쓰고 다시 보았던 이 영화가 떠올랐다. 무엇보다 무성영화이기 때문에 자막을 읽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지난겨울에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봤는데 자막을 다 읽어주느라 힘들었다. 연기도 해야 함.) 다행히 투덜대던 울림이도, 시큰둥하던 이음이와 우리도 물론 나도. 모두 즐겁게 봤다. 아이들이 가장 재밌어하던 장면은 역시 공장 씬과 감옥 씬. 비극을 희극으로. 나이, 성별, 인종 그 외에 무수한 벽들을 넘어 웃음 짓게 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이 다시금 대단하게 느껴졌다.


사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점은 내 취향의 유치함이다. 이런 내 취향을 좋아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어린이들이 반갑다. 어른들(특히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아이들과 나)의 세상이 있다는 게 기분 좋다. 요즘은 아이들이랑 15세 이상의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 다양한 영화를 같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15세가 넘으면 같이 영화도 많이 보고 드라마도 보고 콘서트도 가고 아껴둔 애니도 같이 보고 싶다. 근데 막내 '우리'가 열다섯 살이 넘을 때쯤. 그때도 아이들이 나랑 영화나 만화를 같이 봐줄까? 그러려면 괜한 꼼수 부릴 게 아니라 지금 재미없는 놀이도 신나게 같이 해줘야 하나, 하는 다급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오늘은 문득 궁금해져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야, 너네가 엄마랑 놀아주는 거 같아? 엄마가 너네랑 놀아 주는 것 같아?" 우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네!! 엄마도 정말 모르겠어서 물어본 거지?"라고 되 물었다. 우리 말이 맞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앞으로 아이들과의 더 긴밀한 관계를 위해 귀여운 물건을 꾸준히 늘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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