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일기_1
첫째 꼬박이 울림
-유행이 시작되는 곳
조그만 집에 다섯 명뿐인 작은 가족 사회 안에서도 유행이란 게 돈다. 우리 가족의 유행은 항상 울림이로부터 시작된다. 지금 우리 집 어린이들을 모두 '장발(長髮)'의 세계로 들어서게 한 장본인도 바로 울림이다. 아래로 동생들 밖에 없고 동생들은 형이 하는 것들이라면 뭐든 멋있어 보이니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앞 머리가 눈을 찌르는 것이 귀찮아 머리를 기르고, 동생에게 자기는 나중에 커서 '누워서 만화 보고 배고플 때 짜장면 먹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일러주며, 학교에서 꿈을 적는 칸에는 '그냥 사람'이라고 적는 울림이의 세상이 엉뚱하지만 재밌다. 우리 가족들은 그런 울림이의 세상이 재미있어 더 눈이 가고 다음이 궁금해지고 따라 하게 된다. 학교에선 조용한 관찰자이지만 집에 오면 자신이 아는 것은 뭐든 알려줘야 하는 큰 형님. 아는 건 많지만 항상 2% 부족한 매력의 소유자.(꼭 한 글자씩을 오묘하게 틀려서 듣는 사람도 깜빡 속게 만든다. 예를 들어 고대기-> 나대기, 포춘쿠키-> 표준 쿠키) 요즘은 '원더버드'라는 밴드에 흠뻑 빠져서 아침마다 엄청난 사운드의 음악 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하루빨리 혼자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울림이로 부터 시작될 다음 유행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둘째 꼬박이 이음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이음이는 사랑이 많다. 그 사랑을 표현하고 나누어 이름 그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 마음이 여려 작은 것에도 자주 눈물이 나지만 그렇기에 이음이만이 볼 수 있는 작은 존재들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다. 갓 태어났을 때는 쭉 찢어진 눈에 장군 같은 몸집의 이음이를 보고 사람들은 차마 '예쁘다'는 말을 하지 못 해 "참 늠름하게 생겼네"라고 했다. 그런데 일 년 사이 눈이 2.5배 가까이 커지며 요정으로 변신. '장군'이었던 별명이 무색하게 몸은 자꾸만 여리여리해 지고 머리까지 기르면서 자주 여자아이로 오해를 받고 있다. 이음이는 종종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질 때가 있는데, "엄마, 나는 왜 나 일까?" "우리 눈에 보이는 게 진짜가 아닐 수도 있어." 같은 질문이다.(그러면 나는 대충 얼버무리다 "아빠한테 물어보자."하고 마무리한다.) 그런 이음이 옆에 있으면 왜인지 마음이 편해져 고민을 털어놓곤 한다. 속상하고 우울할 땐 '좋은 소식'을 만들어 보라는 해맑은 이음이의 답을 듣고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심각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별 거 아닌 일이 되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찾게 된다. 피아노 공연을 보며 혼자 손가락을 꼬물거리고, 이모의 전시에서 그림을 골라 꼬깃꼬깃한 용돈을 건네며 구입할 줄 아는.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찌르르- 하게 만드는 어린이.
막내 꼬박이 '우리'
-너의 정체가 궁금해
'우리'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웃긴 행동을 하거나 웃긴 말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가만히 있어도 보는 사람을 묘하게 웃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제는 너무 커버린 두 어린이들 사이에 있는 작은 존재가 주는 귀여움. 그리고 두 형들 사이에서 눈칫밥 먹고 살온 5년의 시간 속에 다져진 야무짐이 주는 귀여움이 웃음 포인트. "아침 먹고 학교 가는 형아들 따라가지 않고 엄마랑 있고 싶다"던 '우리'는 세 살에서 다시 세 살, 그리고 올해 다섯 살이 되었다. 네 살을 세 살로 속여 집에 있던 우리는 다섯 살이 되어서도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있다. "집에 있어도 엄마가 잘 놀아 주지도 않는데 뭐가 좋아?"라고 물으면 "엄마는 따뜻해서 좋아."라며 폭 안기는 '우리'. 어려서부터 낯을 많이 가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엄마 뒤에 숨는 우리지만 어디서든 혼자서 자기 할 일(자동차 놀이), 해야 할 말은(엄마의 입을 빌려) 하는 신기한 꼬마. 나는 오늘도 그런 우리의 팔에 매달려 잠든다.
아빠 바람
-그러니까 너무 박사
"뭐 궁금한 거 없어?" 남편이 아이들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남편은 아이들이 갓난아기 시절 "빨리 커서 같이 말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이들이 옹알거릴 때쯤부터 열심히 대화를 시도한 덕분인지 아빠의 어린이 맞춤형 대화 전술이 먹힌 건지 아이들도 아빠와의 '이야기 시간'을 좋아한다. 주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나에 비해 아이들은 질문도 하고 다른 이야깃거리도 찾으며 신나 한다. 너무 신나 하는 나머지 서로 말하겠다고 싸우는 아이들에게 '손 들고 말하기' 규칙까지 정해 주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 싶다. 어느 날 이례적으로 내가 남편에게 무언가 질문 하나를 잘못했다가 설명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비유적 표현이 아닌 실제로 팔을 나풀거린다)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이음이가 한마디 한다. "아빠는 너무 박사야, 너무 박사~!" 실제로도 박사인 아빠 바람은 올해 마흔 살 기념으로 일렉기타를 샀다.
엄마 해원
-누가 애고 누가 어른인지
좋고 싫음을 몸으로 먼저 표현한다. 이제 좀 큰 울림이는 그런 나를 보며 씩 웃는다. '우리 엄마 또 시작이네.' 또는 '귀엽다 귀여워.(?)' 하는 표정으로. 그 순간 나와 울림이의 권위가 뒤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나는 또 이상하게 그런 뒤바뀐 권위가 맘에 들어 더 열심히(?) 이상한 짓을 한다. 취미는 덕질. 자식 덕질에서 아이돌, 락 밴드, 축구, 만화책, 장난감 등 얕고 넓은 스펙트럼의 덕력을 가지고 있다. 자주 계획하고 자주 좌절 하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 아이들처럼 작은 즐거움에도 크게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