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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Sep 10. 2024

열심히 했는데 꼴등

서울대에서의 1학년 1학기

최인철 교수님의 < 아주 보통의 행복 > 中


입학의 기쁨을 누리기도 잠시, 나는 곧 여러 개의 벽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으로 마주친 벽은 바로 텝스(TEPS) 시험이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텝스 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기초영어, 대학영어1, 대학영어2, 고급영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나는 평소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평소 90점대의 점수는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못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나의 실력은 기초영어를 수강하여야 하는 수준으로 판명났다. 298점 이하가 당시 커트라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의 성적은 정말 아슬아슬하게도 296점이었다. 우선 충격일 뿐만 아니라 부끄러웠다. 보통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문과 학생들은 영어를 잘하고, 영어를 잘 못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수학/과학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이과 학생들이다.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통해 텝스에 대한 새내기들의 이야기를 염탐한 결과, 나 같은 사람은 없었다!


이것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나의 좌절이었다. 웃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인생에서 큰 좌절을 경험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중학교에서 적당히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등학교에서는 더 열심히 공부하여 상향 곡선의 멋진 그래프를 만들어냈다. 초등교사가 되려고 했었지만 운이 좋게도 서울대까지 합격했고, 학과까지 뭔가(?) 멋진 자유전공학부! 어깨가 한껏 올라가 있던 나는 '내가 원래 그럴 만한 사람이긴 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텝스 점수를 마주하고서, 내 마음속에는 앞으로 겪을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하위권을 해본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애초에 이곳이 다른 학생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온 곳인지도 몰랐던 나에게는, '서울대의 수준이 이 정도이구나'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바로 이 텝스 시험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2점은 사실 문제 한 문제만 더 맞히면 올라가는 점수이기 때문에, 시험 한 번쯤 더 보면 되니까. 근데 사실 더 실질적인 문제는 학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찾아왔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가 너무 버거웠다.

1학년 1학기 때 내가 들었던 과목은 다음과 같다 : 수학의 기초와 응용, 주제탐구세미나, 심리학개론, 대학글쓰기, 컴퓨팅 기초, 전공설계. 이중에서 내가 정말 힘들었던 과목 두 가지가 바로 수학의 기초와 응용(줄여서 수기응)과 주제탐구세미나였다!


'주제탐구세미나'는 자유전공학부의 전공 수업으로, 수업 이전에 논문을 읽어온 뒤 그를 바탕으로 수업과 토론을 하는 과목이었다. 주로 철학, 정치학, 뇌과학 등의 내용을 다루었는데, 애초에 내가 관심이 전혀 없었던 분야일 뿐만 아니라, 논문을 읽어본 경험이 거의 없던 나로서는 리딩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결국 팀플은 어찌저찌 끝냈으나 마지막 레포트에서 평균 이하의 평가를 받고 말았고, B+의 학점을 받았다(해당 수업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A를 받는다). 


그리고 '수학의 기초와 응용'은 고등학교 이과 범위에서 다루는 내용에서 행렬과 벡터 기초 내용까지 덧붙여진 과목이었다. 이는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한 문과 학생이라면 필수적으로 수강하여야 하는 교양 강좌이다. 나는 해당 과목에서 가장 좌절을 경험했던 기억이 난다. 이과 학생들이 2년 동안 배우고 연습하는 내용을 한 학기 동안 다루기에 너무 버겁기도 했고, 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중간고사 범위까지는 최대한 따라가려고 했으나 하위권의 성적을 받았다. 그때부터는 '이게 공부해서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기말고사 범위부터는 거의 공부도 하지 않아 소위 '던진' 수준으로 시험을 치고 나왔다. 그 결과 성적은 B-. 지금 생각하면 이 또한 과분한 성적이다(C 이하의 학점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 과목의 기말고사 시험 날은 우연히도 내 생일이었다. 생일인데 시험을 치고 있는 신세도 짜증 났지만, 더 짜증 나는 것은 시험이 끝나고 놀 친구가 없는 내 신세였다. 나는 서울에 혼자 상경하여 근처의 만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과 친구들과도 아직은 어색한 사이라 같이 놀자고 하기 부담스러웠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많은 사람이 과방으로 몰려들었는데, 나는 이때 기숙사로 들어갈지 과방에 끼어있을지 고민했었다. 생일인데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기숙사에 박혀있기도 뭐하고, 친구도 없는데 꼽을 끼기도 싫었다. 또한 내가 생일인 것을 밝히기도 부끄러웠다. 그걸 밝히면 생일에 할 일 없이, 친한 친구도 없이 과방에 남아 있는 불쌍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싫었던 것은 모두가 같은 시험을 치고 모인 터, 해당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분명 것이었다. 나는 시험지 이해하지 못한 문제가 절반이었는데, 그렇다 보니 '이 문제 어떻게 풀었냐?'와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망설였는지 잘 모르겠다. 졸업반이 가까운 지금은 얼굴이 두꺼워져서 그런가, 소심했던 과거를 잘 이해하기 어렵다. 그때는 아무래도 항상 기가 죽어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 환경에는 어느 정도 서서히 적응해 갔다.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과 친구들과 만나기도 하면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망한 학점은 복구가 안 되었다. 차라리 재수강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서울대에서는 C+ 이하의 과목들을 다시 수강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듣는다 해도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성적을 받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마무리한 나의 1학년 1학기 학점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앞으로의 학교 생활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막막해졌다. 2학기가 되고서도 이 막막함은 줄지 않고 더욱 커져만 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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