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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Sep 17. 2024

대2병에 걸린 2학년

공부 왜 해야 하지? 

서울대 중앙도서관 들어가는 슬로프


"그래, 고등학교에서 그렇게 날고 기던 녀석들도 여기로 오면 무려 50%가 평균 이하로 곤두박질치잖아? 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 신경 끄고 살지 뭐." 이런 생각으로 4년을 잘 버틴 후 학교를 졸업하고 밖으로 나가면 세상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

그러므로 자신의 성적이 신통치 않다면 스스로 이렇게 말하라. ... 지금은 어쩌다가 이상한 곳에 와서 바닥을 기고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훌륭한 과학자가 될 것이다.


- 리처드 파인만의 열등생들을 위한 충고 中




1학년 2학기가 되면서는 친한 친구들도 많이 생기고, 서울의 다양한 장소와 문화생활들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본격적인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매일 약속을 잡았고 술도 많이 마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적도 좋지 못했다. 한 과목은 기말고사를 치르는 도중에 나가버린 적도 있었다!


공부에 의욕을 잃게 된 핑계를 몇 가지 대자면, 우선 고등학생 때 배우던 내용과는 수준의 차이가 컸다. 과제의 난이도는 이때까지 내가 냈던 수행평가에서 요구하는 수준과 아주 달랐다. 시험 또한 고등학교보다 더 광범위한 내용을 암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당 전공 학생이 아닌 자유전공학부 출신인 나로서는 족보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게 진짜 억울했다. 몇몇 시험들은 거의 족보와 몇 문제는 그대로 출제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는 막연하게 대학생이 되면 공부를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대학 가면 논다'는 건 그냥 고등학생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공부하랴, 동아리 하랴, 친구 만나랴...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줄어들었다고 느꼈다.


2학년 1학기가 되자 이렇게 놀아서만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시험기간만이라도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만 길어지고, 마찬가지로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생각이 들었고 책상에 앉는 순간마다 공부가 하기 싫어 눈물이 났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 내 신세를 한탄하면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 가면 논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챙길 것이 많아져 마음껏 쉴 수 있는 시간은 부족했다. 이렇게 그냥 '해야 하는 일'만 하다가 죽는 건가 싶었다.




그래도 울면서 공부를 하기는 했고, 1학년 때보다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이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나와 함께 놀았던 친구들인데, 친구들의 학점은 나보다 더 잘 나왔기 때문이다(흥). 나에게 B학점은 평균적인 결과인데, 친구들에게 B학점은 교수님께 가서 따질 일이었다. 또한 '시험 전날만 공부했는데 A+가 나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겉으로는 '와 대단해'라고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위축되며 열등감을 느꼈다. 그냥 가볍게 지나가는 이야기로 던지는 공부 이야기를 들을 때도, '저 친구는 저 정도만 해도 잘 나오구나...'라고 생각하며 우울해했다. 소중한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이 싫었다. 자괴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계속 눈물이 났던 궁극적인 이유는, 사실 정말 공부가 하기 싫어서였다. 공부를 해야 할 동력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생의 역할이 공부니까, 1등을 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좋은 내신을 받아 교대에 가야 하니까 열심히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학점을 잘 받는다고 해서 눈에 직접 보이는 이득이 없었다. 학점이 4.0이면 취직을 할 수 있고, 3.9이면 취직을 못 하는, 이러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학점이 낮아도 전혀 상관없는 진로도 많다. 그래서 좋은 학점을 받아야 하는 이유,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계속해서 고민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나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했다. 그래서 어딜 가나 서로 공감하고 공감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생은 다르다. 대학교, 전공, 진로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이 무궁무진하게 다르고 공부가 아닌 다른 것에 투자하여야 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엇을 목표로 공부하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직 이곳에 없었다.


나는 정말 명확하게 목표가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가 생기면 그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목표가 없으면 굳이 노력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이다. 목표가 없어진 나에게 방황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잠시 접어두었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이라도 생기면, 뭐든 한 가지를 잡고 노력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목표로 삼을만한 것들을 여러 가지 고민하다가, 가장 무난한 길으로 '취직'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취직은 전문직, 대학원과 같은 진로보다도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명확하고, 학점이 낮아도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할 것 같았다. 또한 선택한 두 개 전공 중 하나가 경영학과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취직을 생각했던 것 같다. 좋은 곳으로의 취직을 위해서는 학부 시절부터 관련한 경험을 쌓으면 좋다는 사람들의 말에, 나는 한 경영학회에 지원하게 되었다.


(다음 글에 계속)




+) 개강을 하고 나니 학업이 바빠 격주 화요일 연재로 변경합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님들께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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