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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비 리즈 Feb 15. 2023

솔직했더라면

2.  그날의 한 끼를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몇 년 전 이야기다.

친구에게 "오늘 볼까?"라는 짧은 문자가 왔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고 만나면 즐겁고 말도 잘 통하기에(나만 그렇게 생각했으려나?) 당연히 "응"이라는 짧은 한마디와 하트 뿅뿅 이모티콘을 여러 개 보내는 것으로 내 기분을 전했다. 늦게까지 수업준비를 하다 잠들어 아침부터 무겁던 몸과 마음은  "응"이라고 답하는 순간 벌써 지구 저 밖으로 내던져버리고 업된 기분이 되어 있다. 아직 약속 시간도 정하지 않았는데 드레스 룸에 들어가 입을 옷을 고르고 화장대 앞에 서서 화장품을 고르고 머리를 손질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이 친구를 간단히 소개하면, 내가 알고 있는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바쁜 친구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풀어가고 위트 있고 사람을 배려할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내가 자랑하고 싶은 친구다. 내게 단 한 번도 일이 많다고 얘기하지 않았지만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적힌 일정을 보면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친구를 보면 밥은 먹고 다니는지, 하루에 잠은 몇 시간 자는지 질문하고 싶을 정도로 일이 많은 친구였지만 바쁘다는 말을 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 친구와의 만남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만큼 나는 더 행복해질 거야"라는 대사처럼 내 마음 역시 만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심장이 쿵쾅쿵쾅 울리기 시작하며 기분이 좋았다. 문자를 받은 시간부터 언제 연락이 올지 몰라 핸드폰을 손에 쥐고 오전 시간을 지냈다. 다른 일정들이 생겨도 '오늘'이라는 약속의 유효시간인 밤 12시 이전까지 다른 일정은 잡지 않았다.


오후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보통은 3시경이면 연락을 할 텐데 연락이 없다. 슬슬 배가 고프다. 친구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아침부터 속을 비워두어 뱃속에선 요란한 교향곡이 연주된다. 손에 핸드폰을 쥐고 문자판에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는 것도 이제는 지친다. 배가 고프니 슬슬 짜증이 올라오고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허기가 올라오는 것 같다. 수업준비를 하고 있지만 이미 인간의 4대 욕구의 하나인 식욕에 내 정서는 지배당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약속 장소를 보내며 지금 보자고.

나 참 단순하다. 지금까지 식욕으로 지배당했던 내 감정은 내려앉고 거울을 보고 수업준비하던 자료를 챙겨서 가방에 넣고 노트북을 정리하고 차를 몰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일상을 나누고 헤어졌다. 그렇게 얼굴을 보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시간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앉아 있는 그 자체가 나를 빛나게 하는 시간이었기에.


그러나, 정해지지 않은 만남의 시간으로 나는 지쳐가기 시작했다. 친구의 미안한 표정을 보는 것도, 나를 위해 시간을 내고 마주 앉아 있는 것도 부담으로 느껴졌다. 그 일이 있은 후 친구는 더 바쁜 일상을 보냈고 가끔 우리에게 시간이 허락되었다 할지라고 핑계를 대며 만나지 않았다. 가끔 중요한 날 문자를 하는 정도로 지내고 있다.




기다리는 것이 힘들다고 친구에게 징징거리며 이야기를 할 것 그랬나?

우는 아이한테 떡 하나 더 준다고 하는데 내가 이렇다 저렇다 표현하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나?

친구와의 관계가 애매해진 시점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있으면 편안했고 많이 웃을 수 있었고 내게 '밝게 빛나는 사람'이라는 말을 하면서 나를 인정해 주고 위로해 주고 자존감을 키워준 친구였다. 오늘 밤은 문득 그 친구가 생각나고 그립다.


솔직하게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이야기했더라면 어땠을까?

바쁜 것은 이해하지만 "약속 시간은 언제가 좋아?"라고 질문할 수 있는 나였으면 어땠을까?

아마 그랬다면 서로에게 허락되는 시간을 정해 자유롭게 편안하게 만나는 우리가 되었으려나?

지금보다 더 예쁘게 빛나는 너와 내가 되었겠지?  


생각해 보니, 솔직하지 못함으로 인해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찾아 먹을 수 없는 그날의 한 끼 식사를 놓친 적이 많았다. 혼자 밥 먹는 것을 싫어해서 굶게 되는 날도 있었지만 애매한 약속이나 친구나 지인의 바쁜 일정을 고려하다 놓친 지나간 몇 끼도 있었다.


솔직했더라면...

그날의 한 끼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솔직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것과 더불어 혼자 밥을 먹는 연습도.

오늘은 샐러드 바에서 혼자 맛있는 샐러드로 놓칠 뻔한 한 끼를 잘 챙겼음을 스스로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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