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 다니면서 임용 걱정 없이]
"교사가 되어서도 좋은 교사를 꿈꿀 수 있다."
어릴 때는 이 말이 너무 싫었는데
교사가 되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교사가 되어서도 이러저러 노력할 수 있었다.
노력이라기보다는 시간 덕인 것도 같지만.
아무튼 수학을 더 잘 가르치게 되고, 진로진학 상담도 더 잘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의 문제 상황에 대한 이해도, 해결 과정에 대한 구상과 실천도 빨라졌다.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것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참 교직생활의 시간들을 그렇게 빨리 지나갔다.
역량있는 교사가 됐지만,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사가 됐지만
아이들을 보느라, 학교 일을 보느라 내 안을 들여다보기 쉽지 않았다.
예비교사 시절에는
'나는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가?'
'좋은 교사가 무엇이고, 나를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로 나를 관통하며
끊임없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내 안을 들여다보았다.
지금은 이런 질문을 더 다양한 관점으로, 더 실질적인 관점으로 할 수 있게 됐지만
계속해서 질문만 던질 뿐이다.
내 안의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너무 어렵다.
내 안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잊어버린 기분이다.
교사를 꿈꾸는 4학년을 만났다.
한창 임용에 대한 생각과 노력이 많을 때인데, 인터뷰를 통해 나에게 귀한 배움을 주었다.
그의 말대로 교사가 되보니 오히려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많이 어려워진 것 같다.
무언가를 살피고 헤아리려하면 시간이 나를 끄집어 당겨갔기 때문이다.
예비교사의 마음으로 '좋은 교사'를 꿈꾸는 그를 보면서
교사보다 더 교사다웠던 나의 예비교사 시절의 내 기억과 마음이 새삼 피어오른 기분이 들었다.
나는 시간을 거슬러 갈 수도 없고
혹은 시간을 앞서서 갈 수도 없지만
누군가를 통해 과거 혹은 미래의 나를 만날 수 있는 경험을 하였다.
카이스트의 어떤 디자인공학 교수님은
'자신의 라이벌을 동시대 사람으로만 한정하지 마라'라고 했다.
'다른 시대의 나와 비슷한 연배의 인물을 라이벌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내가 만나는 '좋은 교사'를 꿈꾸는 젊은 예비교사가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모습을 생각해본다.
그는 내 나이, 내 연차가 되었으면 어떻게 교직 생활을 하고 있을까?
그냥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다'라는 진부한 생각과 감정 말고.
꼭 동년배일 필요도 없겠다.
'좋은 교사'를 꿈꾸는 어리지만 어쩌면 더 선생님다운 예비교사 시절의 나와
더 경쟁하고 싶다.
세상을 더 알아갔다는 것으로 그때의 내가 어리석었다고, 어렸다고 치부해버리지 않고
그 때의 생각을 가진 나와 경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