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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새벽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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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랑이 Dec 30. 2018

08. 깨지지 않는 얼음은
어루만져주면 녹는다

대한민국 경찰공무원이 전하는 당신이 잠든 사이의 이야기

[새벽 4시] 08. 깨지지 않는 얼음은 어루만져주면 녹는다




    지역경찰은 전국적으로 다양한 근무 형태가 있다. 실무상 주간 근무를 '주', 야간 근무를 '야', 휴무를 '휴', 비번을 '비'라고 앞 글자만 따서 부른다. 대표적인 근무형태는 4조 2교대, 3조 2교대 근무다.

 
    3조 2교대는 [주-주-주-야-휴-야-휴-야-휴]의 근무형태이다. 쉽게 말해서 연속 주간 3일을 근무하고, 야간과 휴무가 하루씩 바뀌는 형태다. 주로 근무인원이 많지 않거나, 치안수요가 높지 않은 지역경찰관서에서 운영하는 근무 체계다. 한 달을 기준으로 정해진 횟수만큼 비번을 쓸 수 있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원근무는 따로 지정하지 않는 형태다.


    다음은 가장 보편화되어 있는 4조 2교대 근무이다. 4조 2교대는 [주-야-휴-비]의 근무형태다. 휴무와 비번은 그 명칭에 따라 규정상 차이가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모두 '쉬는 날'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3조 2교대 근무에 비해 쉬는 날이 많은 만큼, 비번이나 휴무에 자원 근무를 하곤 한다. 


    이외에도 [주-야-심-휴-비]의 5조 3교대, [당-비-휴]의 3조1교대 근무체계도 있고, 주간 근무를 야간으로 대체하는 탄력근무, 야간이나 주간에만 근무를 전담하는 전종 근무 등 지방청 및 경찰서 별로 근무형태는 다양하고 각기 조금씩 다른 체제로 운영되기도 한다. 나는 각기 다른 지구대 및 파출소에서 3조 2교대와 4조 2교대 근무를 경험해 봤는데, 개인적으로는 4조 2교대 근무형태가 맘에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보니 최근에는 3조 2교대에서 점차 4조 2교대로 바뀌는 추세다. 지금의 근무형태도 만만치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과거 2조 1교대인 [당(24시간 근무)-휴(아침에 퇴근)] 근무체계를 겪었던 선배님들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경찰공무원의 인력이 증원되는 만큼 그에 따른 근무 여건도 개선되고, 거시적으로 볼 때 치안 서비스 또한 향상될 수 있기에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일반인들로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을법한 근무형태를 서두에 꺼낸 건, 여덟 번째 이야기에서 소개할 사건이 발생한 날 때문이다. 이번 이야기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쉬는 날, 혹은 출근을 하더라도 여느 때보다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에 일어난 이야기다.


    지역경찰의 일요일 아침을 이야기하려면 금요일 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불타는 금요일을 뜻하는 '불금'은 이제 언론에서도 종종 이야기하는 일반 명사가 되어 버렸다. 그만큼 금요일은 주중 업무에 지친 수많은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가슴에 불을 짚이는 요일이다. 그렇게 금요일이 불타는 요일이라면, 토요일은 그 불씨들이 활활 타올라 용광로가 끓어 넘치는 절정의 요일이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은 금요일과 토요일 밤이 뜨겁게 달궈놓은 용광로가 식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이다.


    토요일 밤 변질된 열기가 일요일 아침이 되자 광기가 되어 머무르는 곳, 지역경찰관서.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에 어울리지 않는 전쟁터에 도착한 나는, 제복으로 갈아입고 내려와 총기를 수령하고 있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젊은 남성이 취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고성에 욕설을 퍼부으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야간 근무자들은 밤샘 근무에 지쳐 허옇게 뜬 얼굴과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발라가며 남성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극복한 이질적인 광경. 이에 대한 논리적 해답은 주취 소란 난동에 관대한 대한민국 지역경찰관서라는 장소적 배경이었다.   

 
    얼마 후 야간 근무자들이 퇴근하며 남아있는 사건 관계자들에 관한 인수인계 사항을 마쳤다. 인수인계 사항 중 어느 한 가지 이야기에 주간 근무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남성 한 명이 친구들과 술을 마신 후 혼자 술집에서 잠이 들어있었고, 이후 술집 업주가 영업을 마감하기 위해 남성을 깨웠으나 일어나지 않아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야간 근무자들이 남성을 깨워 귀가조치를 하려 하였으나,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려 보호조치 차 대상자와 동행했다고 한다. 술에 많이 취한 상태였고, 업무방해로 체포된 상태가 아니라 보호조치 차 동행한 것이기에 언제든지 자유롭게 퇴거할 수 있음을 고지했지만, 남성은 이미 자신이 경찰서에 왔다는 것 자체에 불만을 품고 욕설을 하고 있었다. 그 사이 술기운이 어느 정도 가셨는지 사리분별은 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그렇게 야간 근무자들은 녹초가 된 상태로 퇴근을 했고, 바통을 이어받은 주간 근무자들이 그 남성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아니, 너네가 오라며! 오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가라는 거야? 나 안 갈 거니까 마음대로 해봐."

"선생님, 들어보니 선생님께서는 술집에 계실 때 몸을 못 가누실 정도의 상태였다고 합니다. 분명 저희가 현장에서 보호조치 차 오는 것이라고 말씀드렸고, 이제 어느 정도 술도 깨셨으니 귀가하시면 됩니다."

"야! 너 몇 살이야? 네가 뭔데 날 오라 가라 하냐고! 씨팔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이 새끼야!"

    그는 관서 의자에 몸을 기댄 채로 반쯤 누워있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언동은 우리가 항상 상대하는 여느 주취자와 다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유난히 앳띈 그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인적사항을 확인해보니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그는 아버지뻘 되는 경찰관에게 삿대질과 욕설을 하며 난동을 부렸다. 체포된 상태가 아니라 우리로서는 그에게 경찰력을 발휘해 강제조치를 할 방법도 없었고, 더 이상의 보호조치도 필요하지 않았기에 그저 귀가시키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물론 관공서 주취소란으로 현행범 체포가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그저 술의 호기를 빌린 청년의 실수라 생각되어 되도록 유연하게 처리하고 싶었다. 

"자자, 젊은 친구. 이제 해 떴어. 그만 술 깨고 집에 들어가야지. 부모님이 걱정하실 텐데."


    보다 못한 팀장님께서 나서 한 마디를 건네셨다.

"넌 또 뭔데? 내가 집에 가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냐고! 당신이 내 부모야? 꺼져 좀! 귀찮으니까."

    나이 지긋하신 팀장님께서 좋게 타일러 보아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어허, 젊은 사람이! 어른이 좋게 말씀하시는데. 자네 여기서 더 난동 피면 나중에 후회해. 자자, 어서 집에 들어갑시다. 우리가 차로 집까지 태워줄 테니까 어서 일어나 봐요."

    팀장님의 회유가 먹히지 않자, 부팀장님께서 강경책과 함께 회유책을 섞어 보셨다.

"뭐? 소리 지르면 어쩔 건데! 네가 우리 아빠야? 왜 훈계를 하는데!"

"훈계라니 이 사람아! 자네 지금 이러는 거 엄연히 범죄 행위야. 관공서 주취소란이라고!"

    사태는 점차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출근한 지 불과 1시간이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일이었다. 그의 주취소란으로 우리가 어설프게나마 기대했던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예상했던 대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열세에 몰린 것은 우리가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술이 덜 깬 젊은 남성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지역경찰관서에 오게 된 '보호조치 대상자'가 관공서 주취소란으로 체포되어 '범죄자'가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이러한 일이 그리 생소하지 않은 업무상 일부일 수 있으나, 그 남성으로서는 난생처음, 어쩌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게 될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이 지긋하신 선배님들도 아침부터 아들뻘 되는 주취자의 욕설과 난동에 심기가 불편해지셨다. 하지만 우리의 판단으로 보호조치 차 데리고 온 자를 함부로 체포할 수도 없었다. 최대한 사태를 유연하게 마무리 짓고 싶은 심정은 모두가 같았다.

"진정하시고 일단 좀 앉아보세요. 귀가하셔도 된다니까 왜 여기 계속 계시는 거예요?"


"넌 또 뭔데. 내가 가던 말던 내 마음이지 왜 자꾸 지랄이냐고 진짜."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대상자들의 연령과 성별에 따라 그들을 상대하기에 '적합한' 경찰관들의 연령이라는 것이 있다. 중년 이상의 대상자들은 젊은 경찰관들을 보면, '야, 너 몇 살이야? 경찰 배지 달았다고 겁나는 게 없냐?' 라며 나이 이야기를 꺼내어 우위를 선점하는가 하면, 젊은 대상자들은 중년 경찰관들의 이야기를 고깝게 듣는다. 대체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 유형은 반대의 경우도 있고, 사람들마다 생각과 성격이 제각각이듯 이러한 유형 또한 몇 가지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이번 케이스는  연배가 있는 경찰관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은 물론, 젊은 경찰관이 상대해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일반적인 유형인데, 이쯤 되면 이걸 유형이라고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아니, 왜 자꾸 내 주변에 모여서 뭐라고 떠드는 건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일단 진정하시고 좀 앉아보세요."


    그는 내 착석 요청을 무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관서 내를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경찰관들에게 족족 시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업무를 보고 있는 누군가는 그의 눈을 피하고 무시하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치기 어린 그의 행동을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교대 근무가 이루어지는 시점이어서 관서 내에는 서른 명 가까이 되는 경찰관이 있었지만, 그에게서 주눅 든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혼자서 관서 내를 휘젓고 다니며 눈이 마주치는 경찰관들에게 고성을 질러댔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를 때 아닌 일요일 아침, 그의 집에 불쑥 찾아온 불청객이 된 것처럼 보이게까지 만들었다. 말 그대로 주객전도(主客顚倒)였다.

"선생님, 뭔가 속상하신 일이 있는 것 같은데… …. 저한테 한 번 이야기해 보세요."

    순간 그는 고성과 욕설을 멈추고 술이 덜 깨 홍조가 띤 얼굴과 풀린 눈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나마 독기가 빠진 그의 눈빛만으로도 나는 현재 사태를 조금은 진정시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당시에 뭔가 깊은 생각을 하고 던진 말은 아니었다. 그저 최후의 회유책을 꺼내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 역시 그 회유책을 꺼내 든 순간, 이제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이 이렇게까지 억지를 부리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그는 술에 만취한 상태도 아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술이 깨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뜻 모를 억지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마치,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가진 속상함에 대한 표출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동안의 그의 고성, 욕설, 소란난동은 모두 '나 속상한 일이 있어! 제발 내 얘기 좀 들어줘!'라고 외치는 절규같이 느껴졌다.


"자,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저랑 나가서 차 한잔 하시죠."


    안하무인(眼下無人)이던 그가 잠시 침묵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본격적인 카운셀링(Counseling)에 박차를 가하기로 마음먹었다.
 
"담배 있어요?"

    

    그는 못 이기는 척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단 절반쯤은 그의 흥분 상태를 조금이나마 가라앉히는 데  성공한 셈이었다. 다른 선배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그를 맡긴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믹스 커피 두 잔과 담배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고, 그제야 주간 팀원들은 팀장님과 함께 조회를 시작했다.

"자, 한대 피워요."
   
    그는 나보다 한 참 어린 동생이었지만 엄연히 그와 나는 사회적 관계에서 단순한 형과 동생의 위치는 아니었다. 나는 대한민국 경찰공무원으로서 20대 남성 국민 한 명을 상대하고 있었고, 그러기에 국가와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공무원으로서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런 막대한 사명감을 갖고 있기에, 한참이나 연배가 아래인 그의 입에 담배 한 대를 물려주고 불까지 붙여준 후 커피를 권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말없이 담배 한 개비를 받아 물고 몇 모금 피우더니 커피 한 잔을 들이켰다. 그때까지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담배 연기를 깊게 마신 후 내뱉는 그의 모습은 이제 갓 스무 살이 지난 청년의 모습이라 보기엔 다소 낯설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 그 사람을 볼 줄 알게 된다. 이걸 앞서 이야기한 '유형'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이야말로 워낙 다양하고 복합적인 형태로 자신의 존재를 규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내가 전문적으로 심리학을 공부한 학자나 저명한 정신과 의사가 아니기에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오만방자한 일이다. 요리사는 한두 번의 칼질로 재료의 상태를 알 수 있고, 미용사는 한두 번의 가위질로 손님의 모발 상태를 알 수 있다. 경찰은 몇 마디의 대화나 상대방의 눈빛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이나 현재의 상황을 유추하는 일을 반복한다. 좋든 싫든 이런 일들을 반복하는 삶을 살다 보니 이론적 지식은 미약할지 몰라도 이를 커버할만한 경험을 축적해 나아간다. 이것은 '능력'이 아닌 '습관'이고, 이러한 습관을 바탕으로 사람을 다루는 '능숙함'이 아닌 '익숙함'이 자리매김한다. 이렇게 연차가 늘어날수록 다른 직업군에 비해 사람을 상대할 줄 아는 직업인으로 변모한다. 물론 이는 비단 경찰뿐만이 아니다. 주로 사람을 상대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직업군이라면 내 이야기에 어느 정도 공감할 것이다. 각종 상담직, 영업직, 판매직 등 일과 중 사람을 대하는 시간이 많은 직업군의 사람들은 개발직이나 연구직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 분명 사람을 상대하는데 두각을 나타내곤 한다. 즉, 사람을 볼 줄 아는 눈,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귀, 그들에게 들려줄 말을 내뱉을 줄 아는 입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분명 나는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은 아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그동안 축적한 길지 않은 경험으로나마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나 같은 경우 현장이든 관서 내에서든 난동을 피우는 사람들은 딱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앞서 사람은 워낙 다양하고 복합적인 존재이기에 유형을 정의하기란 힘들다고 했는데 갑자기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니, 이 무슨 괘변인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주취 소란 난동에는 이유 없는 경우와, 이유 있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당시 젊은 대상자의 그러한 행동은 주취상태의 습관으로 발현된 폭력성 일수도 있었고, 순간의 치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난폭한 행동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지금 이 순간과 상황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 아닌, 내면에 쌓아두었던 뜻 모를 아픔이나 분노가 폭발한 듯 보였다. 즉, 그는 '이유 있는 유형'이었다.

"제가 원래요… …."

    한 동안 말없이 담배만 피우던 그가 고개를 떨군 채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어렵사리 그의 입이 떨어진 후에도 또다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분명 나는 제복을, 그는 사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경찰관이 아닌 그저 나이가 조금 많은 사회의 '형'으로서 그를 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 사이의 벽을 쉽사리 허물지 못했다. 나는 슬며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그는 잠시 당황하더니 지금까지 보인 적 없었던 부드러운 눈빛으로 잠시나마 나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그의 눈빛에는 분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깊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은 아니에요."

    그가 나와의 독대에서 꺼낸 첫마디는 스스로 굳게 닫아 둔 마음의 문을 열어보려는 시도였다. 일순간 그러한 가능성을 먼저 보여준 그의 용기가 고마웠다. 분명 여전히 경계태세에 있긴 하였으나, 그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써도 깨지지 않던 두꺼운 얼음이, 한 번의 어루만짐으로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무슨 힘든 일이 있나요?"

    왜 술집에서 혼자 취해 있었느냐, 현장에서 난동을 피운 이유가 무엇이냐, 집에 가라고 했는데도 가지 않고 욕설을 한 이유가 무엇이냐 등의 질문은 무의미했다. 어느덧 나는 경찰관과 대상자의 입장이 아닌, 사람대 사람으로서의 대화를 시작했다.

"담배 한 대만 더 주실 수 있어요?"

    또다시 말없이 그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고 불을 붙여 주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참 동안 침묵을 고수하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유난히 햇살이 화창한 일요일 아침, 어느덧 거리에는 주말 나들이를 가거나 교회로 향하는 사람들의 경쾌한 발걸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거리에는 아침 햇살이 가득한데, 아직 우리가 있는 공간에만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다.

"제가요… …."

    다시 힘겹게 입을 연 그는 갑자기 고개를 푹 떨구었다. 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의 눈에서 한 두 방울의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두께조차 가늠되지 않던 두꺼운 얼음이, 갑작스러운 온기에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주취 상태에서의 이유 없는 눈물인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의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 다독여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소리 내어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그가 왜 울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경찰관은 사람을 상대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왜?' 냐는 질문이다. 이러한 경찰관의 질문을 사회에서는 '취조(取調)'라고 부른다. 그 질문이 인간미 베인 사적인 질문이든, 수사를 위한 공적인 질문이든 경찰관이 하는 모든 질문은 취조로 치부된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를 취조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는 범죄자가 아니었고, 나는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에 대한 규명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단지 불과 몇 분 전까지 분노에 가득 차 있던 그의 눈에서 지금은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그는 그렇게 꺽꺽 소리를 내며 한동안 실컷 눈물을 쏟아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봐요. 제가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들어줄 수는 있어요."

    나는 내가 경찰관으로서 그의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의 한계에 대해 솔직하게 밝혔다. 그리고 고맙게도 그는 나의 보잘것없는 능력의 한계를 수용해 주었다. 

"저 이제 스물한 살이에요.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랑 살고 있고, 형제는 동생이랑 형이 있어요. 형은 작년에 군대에 갔고 동생은 이제 초등학생이에요. 엄마는 식당일을 하셨는데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셔서 형 군대 가자마자 병원에 입원해 계세요. 형 휴가 나왔을 때는 엄마가 퇴원해 계셔서 형은 엄마가 아픈지 몰라요. 엄마 병원비랑 동생 학교 보내야 해서 제가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뜻대로 잘 안 돼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자동차 쪽에 관심이 있어서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려고 들어갔는데, 3개월째 급여를 안 주길래 사장님한테 물어봤더니 그동안은 실습 기간이었고, 이에 대한 교습비를 월급으로 지불한 셈이라고 했어요. 처음 입사할 때 작성했던 계약서에 보니까 그렇게 쓰여있더라고요. 제대로 못 본 제 잘못이죠. 아르바이트로는 제대로 돈을 벌 수 없을 것 같아 다른 일자리도 알아보곤 했는데 할 줄 아는 게 없다 보니 딱히 일 할 곳도 없었어요. 가지고 있는 돈도 지금 생활비 감당하기도 힘든 정도고요."

    한 참 동안을 눈물과 함께 격해진 감정을 쏟아낸 그는, 입을 열자 오히려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안타까운 사연에 대해 이야기하며 동정을 구하는 어투도 아니었고, 현재의 상황에 대해 한풀이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실 그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내뱉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또래들에 비해 다소 무거운 20대 초반의 삶에 무게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목소리였다. 잠시 숨을 돌리며 깊게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그의 모습은, 삶의 고초를 겪는 가장의 모습과도 같아 보여 오히려 내가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지금 가장 힘든 게 뭔가요?"

"솔직히 돈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냥, 집에 가도 엄마 병원에 가도 모든 게 다 짜증이 나요. 고등학교도 다니다가 자퇴했고, 그땐 제가 돈 벌어서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요.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사는 게 힘든 것 같아요."

    그는 어느덧 대한민국의 성인이 되어 있었다. 10대 때, 건강한 신체와 자신감으로 무엇이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사회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항상 곁에서 함께하면 두려울 것이 없었던 든든한 친구들도 어느덧 자신과 같은 대한민국의 성인이 되어 각자의 치열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회라는 황무지에 혼자 남겨져 텃밭을 일구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땅은 비옥한 땅도 아니었고, 그의 손에는 밭을 일굴만한 도구도, 심지어 무언가를 심을 씨앗조차 없었다. 그렇게 한 동안 씨앗을 구하러 다니다가 우연히 구한 씨앗을 심고 나면, 어김없이 새싹은 돋아나지 않았다. 그가 심은 씨앗들은 온종일 내린 비에 쓸려 내려가거나, 계속되는 가뭄에 말라버리기 일수였다. 그렇게 그는 좌절한 채 주먹으로 땅을 내리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금 당장은 돈은 못 벌어도 나중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근데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보다, 상대방의 삶에 무게가 더 무겁다고 하여 내 무게가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가진 아픔보다 상대방의 아픔이 크다 하여 내 아픔이 치유되는 것 또한 아니다. 그는 그의 무게를, 나는 나의 무게를, 그는 그의 아픔을, 나는 나의 아픔을 각자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경찰관으로서가 아닌 그와 같은 대한민국 성인으로서,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먼저 황무지에 던져져 그와 마찬가지로 가진 것 하나 없이 척박한 땅을 일구어야만 했던 선배 농부로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그에 비해 이렇다 할 특별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그는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 돌이켜보며,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 속에 있었다.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대뜸 그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나의 작은 두드림에, 굳게 닫혀있던 그의 마음에 문이 열렸다. 그렇게 나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비록 아름답지는 않지만 한 껏 평온해진 그의 정원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덧 관서 내에서는 조회와 아침식사를 마치고 각자 본격적인 업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이 어디지? 바쁜 시간이 아니니 가까운 곳이면 집까지 태워줄게."

"아니에요. 그냥 걸어서 갈게요. 좀 걷고 싶어요. 엄마 병원에도 좀 가보려고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혹시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렴."

"고맙습니다. 아, 잠시만요."

    그는 귀가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관서 내로 들어갔다. 순간 나는 그의 행동에 당황하여 무슨 일인가 싶어 바로 뒤를 따라갔다. 그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허리를 굽혀 인사하면서 소란을 피울 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아까 술에 취해 소란을 피웠습니다. 죄송합니다!"

    몇몇 직원들은 어리둥절해하는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고, 나이 지긋하신 선배님들은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는 각각의 경찰관들 앞에 가서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했다. 애석하게도 상황을 모르는 몇몇 직원들은 난동을 부리던 주취자의 180도 변한 태도에 냉소적 입장을 견지했으나, 또 다른 몇몇 직원들은 어린 사회 후배의 기특한 모습을 보며 충고와 덕담을 건네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문을 열고 나와 마지막으로 내게 인사를 했다.

"마음이 많인 편해졌어요. 경찰관님한테도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는 용기 있는 청년이었다. 이미 술기운도 다 가신 상태에서,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반성한 후 직접 표현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진 당당한 20대의 청년이었다.

"괜찮아.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앞으로 실수하지 않으면 되지 뭐. 어서 들어가."

"고맙습니다. 아, 근데 혹시 다음에 뵈면 형이라고 해도 돼요?"

    처음으로 그는 20대 초반 청년의 얼굴, 아직 성인으로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용기 있는 청년의 미소는 화창한 일요일 아침의 햇살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어느덧, 나와 그는 경찰관과 대상자에서 형과 동생이 되어 있었다.

"그럼. 커피 한 잔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들려."

"고마워요 형! 그럼 수고하세요."

    그는 인사를 마치고 걸어갔다. 그가 나와 함께 있던 공간을 벗어나자, 짙게 깔려있던 그림자가 사라지고 화창한 일요일 아침 햇살이 그의 앞길을 비추었다. 그렇게 그는 햇빛 속으로 걸어 나아갔다. 그 이후로 그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물론 나는 그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고, 이례적인 일이지만 그에게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연락하라며 내 개인 연락처를 주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우리는 서로 단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서로 각자의 삶에서 평온하게, 그리고 때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가 보여준 용기와 미소, 그 두 가지를 잃지 않는 한 그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청년으로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짙고 깊은 토요일 밤이 지나, 새벽의 어둠이 걷히고 찾아온 일요일 아침 화창한 햇살처럼, 그렇게 밝고 건강하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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