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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4시
by 포랑이 Dec 01. 2018

06. 자유에 대한 책임감

대한민국 경찰공무원이 전하는 당신이 잠든 사이의 이야기

[새벽 4시] 06. 자유에 대한 책임감




     교사는 학생을 가르친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한다. 그렇다면 경찰은? 단지 '범인을 잡는다'라고 하기에는 경찰이 하는 일의 범주란 것이 꽤나 광범위하다. 물론 범죄자를 체포하는 것이 경찰의 주된 업무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밖에도 범죄가 일어나기 전 예방하는 일,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호하는 일, 실종자를 찾는 일, 집회 시위를 막는 일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높은 비중의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음주단속이다. 이는 앞서 말한 '범죄자를 체포하는 일' 임과 동시에 '범죄가 일어나기 전 예방하는 일'의 범주에 속한다.  


    음주단속, 언론에서도 종종 나오는 이 익숙한 단어가 정확히 말하면 음주'운전'단속이다. 음주란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이고, 대한민국에서는 단순 음주에 공권력이 개입될 수 없다. 수많은 사건 사고가 음주에서 비롯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자유로운 음주가 허용되는 대한민국에서도 음주운전만큼은 엄연한 범죄행위다. 아직 우리 사회는 술에 관대하고, 그렇다 보니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는 행위 역시 잠깐의 실수 혹은 살면서 한 번쯤 저지를 수 있는 일 정도로 치부하는데 음주운전은 명백한 범죄 행위다. 법적으로 하자가 있는 행위라는 이상적 개념에서 탈피하고 본다면 그 심각성은 더욱 크다. 만약 주변에 타인의 음주운전으로 인해 무고한 희생을 당한 사람이 있거나, 혹은 음주운전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 말에 여실히 공감할 것이다. 물론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도 이 이야기에 딱히 반박할만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행히도 최근 국민의식이 음주운전을 명백한 범죄행위로 보고 있고, 이에 대한 처벌 강화 여론이 이는 등 우리 사회가 이전보다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있음은 올바른 현상이라고 본다. 국민들의 뜻과 생각이 이와 같이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여 뿌리 뽑아야 할 범죄행위로 보고 있는 만큼, 하루빨리 정부에서도 법안을 개정하고 사법부 또한 음주운전에 대해 보다 엄격해지길 바라는 바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만큼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이 가벼운 나라도 없으니까 말이다. 


    시작부터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한 것 같으니 잠깐 온도를 바꿔보자. 한 번쯤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는 세계 각국의 음주운전 처벌 규정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명확한 법 조문을 찾아본 처벌 규정이 아닌, 인터넷 서핑 중 보게 된 글이므로 정확한 정보전달과는 무관함을 서두에 밝힌다. 단순히 벌금형, 금고형, 징역형 등의 형벌 규제밖에 없는 우리나라에서 보기에는 재미있는 처벌 규정이 많다. 먼저 터키에서는 음주운전이 적발되면 운전자를 그곳에서부터 30km나 떨어진 곳까지 이동시킨 후 걸어서 귀가토록 한다. 물론 중간에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경찰이 뒤에서 따라간다. 물론 경찰은 차로 따라간다. 중간에 마음이 약해지면 큰일인데. 뉴질랜드는 음주운전을 한 사람보다, 술을 마신 사람을 태운 차를 처벌(?)한다. 다시는 음주운전을 못하도록 차를 매각해버리고, 매각비에서 벌금을 제한 나머지 비용을 운전자에게 돌려준다. 음주운전을 하고 돈까지 받고 돌아간다면 기분이 묘할 것이다. 물론 돌아갈 때 타고 갈 차는 없지만 말이다. 이게 사실인지는 모르겠는데 태국은 정말 상상도 못 한 처벌을 하고 있다. 바로 음주운전자에게 영안실 청소와 시체를 닦게 하는 처벌을 한다고 한다. 도대체 그것이 음주운전과 무슨 상관 인지도 모르겠고, 한 편으로는 영안실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욕보이게 하는 처벌 규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끝으로 말레이시아는 음주 운전자의 배우자까지 함께 처벌한다고 한다. 진정한 부부 일심동체가 아닌가.

    

    다시 조금은 머리 아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은 형법이 아닌 특별법, <도로교통법> 제44조에서 규정하고 있으며, 혈중알콜농도 수치 및 위반 횟수 등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위에서 이야기한 특이한 처벌 규정을 가진 나라가 아닌 우리와 유사한 벌금형 및 징역형을 선고하는 국가와 비교하더라도 분명 그 처벌 강도는 가벼운 편이다. 그 때문인지 매년 음주운전 근절을 위한 홍보 및 불시단속, 혹은 언론을 통해 예고하는 일제 단속 활동에도 딱히 감소 추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가벼운 처벌 규정도 문제이긴 하지만, 여전히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에 있다. 음주운전을 하고 경찰에 적발되면 재수가 없었던 것뿐이고, 적발되지 않으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진짜 운이 좋다는 것은 음주운전을 하고도 나로 인해 누군가가 다치지 않았고, 나 역시 살아있다는 것이다. 물론 행운의 여신이 악행을 저지르는 자의 곁에 머물 리가 없다. 결코 행운의 여신이 곁에 있어서 경찰에 적발되지 않았다거나, 나와 타인이 무사한 것이 아니다. 바로 옆에까지 왔다가 다녀간 죽음의 신이, 신으로서 베풀 수 있는 마지막 관용을 베푼 것이다. 음주운전 단속에 대한 에피소드는 너무나도 많다. 그중 딱히 버라이어티 한 사건이어서가 아닌 다소 안타까웠던, 그리고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른 저녁 시간, 단순 교통사고 신고가 접수되었다.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로 짐작컨대 신고자는 젊은 남성이었다. 좁은 1차선 골목길 도로에서 앞 차량에 타고 있던 여성 운전자가 차량을 후진하며 신고자의 차량을 충격했는데 이에 대해 발뺌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 가벼운 접촉사고라 다친 사람은 없고, 경찰관이 와서 시비를 중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신고자는 골목길에서 직진 주행 중이었고 상대방은 운전이 미숙한 여성으로 길을 잘못 들어 후진 중 뒤에 있는 차량을 충격했는데 자신의 차량이 닿은 느낌이 없다는 진술이었다. 일단 외관을 보건데 차량의 충격으로 인한 파손은 육안상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일단 신고 내용이 사실이라면 가해자와 피해자는 명확히 분류되는 셈이었다. 교통사고 현장에서는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 운전자의 면허 여부 확인, 차량의 보험가입 여부 확인, 운전자들의 음주감지, 2차 사고 예방활동, 진술 청취 후 교통사고 발생 보고서 작성, 현장 CCTV를 파악하고 약도를 작성 및 사진 촬영 등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다만 경찰관은 현장에서 명확한 사안이 아니라면 가·피해자를 단정 짓지 않고, 또한 가·피해자가 명확히 구분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과실 비율을 따지지 않는다. 교통사고 현자에서는 동료와의 손발이 잘 맞아야 다양한 현장조치를 신속하게 할 수 있다. 함께 나간 동료가 신고자의 블랙박스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운전자들의 면허증을 확인하며 추가적인 진술을 청취했다.

"아니, 상대방이 내 차를 박은 건데 내 면허증은 왜 확인하는데요? 저 성인이거든요?"

    신고자는 이제 갓 20살, 성인이 된 남성으로 상당히 흥분한 상태였다. 신고출동을 하는 사이 빨리 오라며 1분에 한 번 꼴로 재신 고를 할 때부터 현장조치가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을 예상했다. 반대로 상대방 여성은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였는데, 이런 사고가 처음인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 진짜 몰랐어요. 부딪치는 느낌도 안 났어요. 진짜예요."

"선생님, 저희가 확인해 볼 테니 진정하시고 만약 사고가 났다고 해도 보험도 가입되어 있으시고 큰일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줌마! 왜 발뺌을 해요? 블랙박스에 다 찍혔다니까! 이거 사업소에서 범퍼 싹 다 갈 거니까 알아서 해요."

    신고자의 차량은 마크만 봐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고급 외제차였다. 사고로 인한 차 수리 경험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주머니도 이를 알았는지 가격이 얼마나 나오느냐, 고의가 아니니 한 번 봐달라는 등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아들뻘 되는 신고자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자신은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벌써부터 사고 처리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해자란 것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례 교통사고 현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심리 전쟁이 일어난다. 우리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이 많다. 그러다 보니 지금과 같은 아이러니한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당황하는 아주머니와 달리 그 아들뻘 되는 신고자는 단호했다. 무조건 사건 처리를 원한다고 했다. 
    이런 경우 경찰관은 절대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간혹 베테랑 선배들은 양쪽은 입장을 헤아리며 일방의 언행이 다소 지나치다고 느낄 땐 젊은 사람들을 타이르곤 한다. 물론 이 방법이 먹혀 들어가는 상대가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찰관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건의 사실 관계만을 파악한다. 나이 많은 경찰관이 젊은 신고자를 타이르며 훈훈하게 현장이 마무리되는 시대가 아니다. 더군다나 나처럼 젊은 경찰관이(그래도 당시에도 내 나이가 신고자보다는 10살 이상 많았다) 공명심에 사적 감정이 담긴 발언을 해봤자 득 될 것이 없었다.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젊은 신고자의 태도는 애써 외면하고 이성적으로 사건 처리에 집중했다.

"블랙박스 확인했습니다. 충격한 게 맞네요."

    동료가 블랙박스 확인을 마쳤다. 일단 신고 내용에 대한 진위여부의 확인은 끝난 셈이었다. 이 경우 상대방이 이를 인정하고 보험처리를 원하면 굳이 경찰관이 개입할 필요는 없다. 경찰관이 교통사고에 개입하는 경우는 도로교통법 등 법률 위반 사안이 있는 경우,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는 경우, 인피사고가 발생한 경우 등이다. 블랙박스를 확인한 아주머니는 후방카메라나 센서가 없어 정말 몰랐다며 아들뻘 되는 신고자에게 연신 고개 숙여 사고하고 보험처리를 약속했다.

"아 진짜 재수 없을라니까. 운전을 못하면 차를 끌고 나오지 말던가. 아줌마, 나 이제 성인이라 사실 면허 딴지 몇 달 안됐는데 아줌마처럼은 운전 안 해요."

    젊은 신고자는 자신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갑(甲)의 위치에 있다는 결과가 경찰관으로 인해 밝혀진 순간 언행에 거침이 없었다. 말 끝마다 자신이 성인임을 강조했고, 이제 갓 성인이 된 20살의 '이유 있는 자신감'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관도 사람인지라, 동방예의지국(東邦禮義之國)에서 법 아래 기본 예의와 도덕적 상식이 위치하는 이 상황을 지켜보기란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럼 상대방이 인정하셨고 저희는 끝으로 음주감지만 하고 가보겠습니다."

"네? 음주감지를 왜 해요?"

    젊은 신고자, 아니 젊은 피해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순간 현장의 공기가 바뀌었다. 교통사고 관련 대상자가, 그것도 피해자가 경찰관에게 직접 신고를 하고 당연한 음주감지 절차에 이토록 과민하게 반응하는 경우는 드물다. 경험이 많지 않은 내 동료도 순간 바뀌어버린 공기를 느꼈는지 눈빛이 바뀌었다.

"선생님, 저희가 교통사고 신고를 접수하면 면허증 확인 및 음주감지 등을 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이니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협조해주십시오."

    아직 지역경찰관으로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료의 목소리에는 베테랑 경찰관 못지않은 무게감이 배어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피해자인데 날 왜 감지하냐고요. 저 아줌마나 해요."

"공정하게 두 분 다 감지하겠습니다. 여기 감지기를 보시면 초록불이지요? 불어보셔서 색깔이 노란색이나 빨간색으로 바뀔 경우… …."

"아니! 시팔, 내가 피해자인데 날 왜 감지하냐고!"

    3초 정도의 적막. 이제 음주감지는 해야 하는 절차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차가 되었다.

"술 드셨어요?"

    이럴 땐 정공법이 나을 때가 있다. 그가 무슨 대답을 하든 우리는 바뀌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밥 먹으면서 반주로 소주 딱 한 잔 마셨어요. 왜요? 면허증 보셨잖아요. 저 성인이라니까요."

"선생님이 성인이시라는 건 확인했습니다. 술을 드실 수 있는 나이임은 알고 있어요. 얼마나 되셨나요?"

"30분이요. 아 근데 이거 내가 신고 안 했으면 모르는 거 아니에요? 신고 취소할게요."

    20살의 대한민국 성인인 신고자는 당당했다. 마치 대한민국 성인으로서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처리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질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강하게 내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내게는 그의 자신감 넘치는 외면의 모습과는 다르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저 신고 취소할게요. 112에 신고 취소하면 되죠? 가세요 이제. 사고도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냥 없던 일로 해주세요. 이거 엄마 차니까 우리 엄마한테 얘기해서 처리할게요."

    말이 많아지고 말의 속도도 빨라졌다.

'어떻게 하지? 아, 큰일이네. 괜히 신고했어. 엄마, 도와줘.'

    그의 마음속의 외침이 들리는 듯했다. 연신 핸드폰을 만지며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거는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선생님, 일단 감지해보겠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정말 30분 전에 소주 한 잔 마신 거라면 감지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측정을 해도 혈중알콜농도가 0.05퍼센트 미만이라면 훈방 조치되니 일단 감지에 응해주십시오."

    정공법 이후에는 회유 법이다. 함께 현장에 나온 아버지뻘 되는 선배 경찰관이 남성의 어깨를 토닥이며 달랬다.

"너무 겁먹지 말아요, 이미 시간도 많이 지났고 소주 한 잔이면… …."


 "아, 놔요! 겁 안 먹었거든요? 불거예요. 그냥 짜증 나서 그래요."

    그는 아버지뻘 되는 경찰관의 어깨를 다독이는 손길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겉으로 강한 모습을 보일수록 내면의 엄습하는 불안감이 외부로 드러났다. 엄연한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대한민국 성인인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해서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그는 씩씩거리면서 감지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먼저 아주머니를 감지해 이상 없음을 확인했고 뒤이어 그를 감지했다.

'삐. 삐. 삐. 삐.'

    감지기에 노란불(Low)이 떴다. 술을 마셨음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자 선생님, 일단 감지가 되었으니 음주측정을… …."

'퍽!'

    젊은 교통사고 피해자, 음주감지가 된 남성은 갑자기 음식점 앞에 세워져 있는 라바콘을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불안감이란 풍선이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터져버리며 그 안에 쌓여있던 분노가 밖으로 세어 나왔다.

"아니, 씨팔 내가 신고했는데 왜 내가 음주측정을 하냐고!"


    신고자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제 분에 못 이겨 씩씩 대기 시작했다.

[신고가 없는 순찰차는 지원 바랍니다. 대상자가 음주감지가 된 상황이고, 비협조적인 상황입니다.]

[순찰차 OO호가 지원 가겠습니다.]

    우리는 그 날 3명이 신고출동을 나왔지만, 눈치 빠른 신임 동료가 지원을 요청했다. 단순한 접촉사고 신고가, 최악에는 공무집행방해 사건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예상한 것이다. 이후 지원 순찰차가 도착했고 우리는 먼저 대상자가 입을 헹굴 수 있도록 물을 한 컵 주고 시간을 확인시켜주며 음주측정을 요구했다.

"선생님 현재 시간 23시 정각입니다. 1차 음주측정 시작하겠습니다."

    
지원을 나온 베테랑 선배는 현장 분위기를 재빨리 파악하고 최후에는 음주측정 거부가 있을 수 있음을 예상하며 모든 과정을 정석대로 처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측정을 하냐고! 안 한다고! 감지기 불라고 해서 불었으면 됐잖아요!"

    선배의 예측은 옳았다. 결국 우리는 음주측정 거부에 대해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10분 간격으로(이후 5분으로 측정 간격 시간이 바뀜) 3차에 걸친 음주측정을 거부하실 경우 음주측정 거부로 체포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혈중알콜농도 수치와 상관없이 음주운전 취소 수치보다 강력하게 처벌받을 수 있으며 행정처분상 면허도 취소됩니다."

"마음대로 해봐! 난 안 해!"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3번의 음주측정 기회가 무산되었고, 우리는 그를 음주측정 거부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관서로 돌아와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그는 약 1시간가량 온갖 욕설과 함께 난동을 피웠다. 그러나 여느 피의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자신과 경찰관에 대한 분노 표출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어린아이의 생떼와 같은 안쓰러움이 보였다. 한편으로는 그런 피의자가 조금 측은하게 까지 느껴졌다. 효력 없는 저항에 어느덧 지쳐버린 그는 서류 작성을 마치고 경찰서로 인계되는 순찰차 안에서 말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나지막한 음성으로.

"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지금 다시 불어 보면 안 돼요?"

"여러 차례 음주측정 거부 행위와 결과에 대해서는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기회는 없습니다."

"아, 왜요? 지금 분다니까요?"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애당초 상황판단을 하지 못할 만큼 만취 상태도 아니었다. 음주량도 측정 미달을 기대해 볼 수도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강하게 측정을 거부했을까.

"왜 아까 측정하지 않으셨나요?"

"제 친구들 중에 음주 걸린 애들이 있거든요? 걔네한테 들은 건데 경찰한테 걸리면 최대한 뻐기라고 들었어요. 그리고 시간 최대한 끌면 불어도 안 나온다고… …. 측정 거부 같은 거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냥 겁주는 줄 알았어요."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지금 와서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말도 없었고, 훈계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그는 엄연한 대한민국의 성인이었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였다.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이고, 법률에 위배되는 행위 시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대한민국 성인으로서 짊어지는 당연한 무게다. 미성년자에서 성인이 되는 순간, 누릴 수 있는 자유 못지않은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 <형법> 제16조.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아니한다.' ]
    

    그는, 그의 법률의 부지(행위자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알고 있으나, 자기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금지 규범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행위한 경우)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성인이 되어 술을 마실 수 있는 자유, 운전을 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내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 그 자유 뒤에는 항상 무거운 책임감이 따른다. 부디 그가 이 사건을 통해 지금은 경각심을 갖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올바르고 당당한 대한민국의 성인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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