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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이 Mar 10. 2019

결국은 떠나는 이들

그리고 그곳에 남은 나

 세상 무섭던 터줏대감들

 살얼음판 같은 곳에 첫발을 내디뎠던 순간이 기억난다. 이곳의 터줏대감들은 그 어느 누구 하나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이가 없었다. 언제나 조심스러웠고 그들에게 꾸중을 들을까 위축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 나를 그들의 구성원으로 인정해주기 시작하고부터는 더 조심스러웠다. 솔직히 그들의 눈에 들고 싶었다. 학연과 지연 등 어느 정도의 '연'을 구축해 놓은 동기들을 볼 때면 항상 부러웠다. 같은 실수에 한결 부드러운 반응이 돌아온다는 것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잘 보이고 싶어 애쓸수록 나만 초라해져 갔다. 그들의 인정만이 이곳에서의 생활의 평탄 여부를 결정지어줄 대단한 무엇인가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이제와 보면 그때 그 시절 그토록 대단했던 '터줏대감들'은 더 이상 이 곳에 없다. 절대 신생아 중환자실을 떠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선생님들은 하나둘씩 말도 안 되게 사라져 갔다.


세상없을 것만 같은 일들

 그들의 사직 및 부서 이동은 세상에 없을 것만 같은 일이었다. 20년 가까이 한 평생을 NICU에서만 일하며 정년퇴임을 몇 년 앞둔 선생님도 모두를 충격의 도가니에 빠트린 채 홀연히 떠나버리셨다. 몇몇은 육아휴직으로 병원보다는 가정과 아이를 택하며 자리를 비웠다. 어떤 이는 아기를 보내고 죄책감에 NICU를 도망치듯 떠나갔으며 또 어떤 이는 다른 이와의 불화로 얼굴을 붉히며 이 곳을 박차고 나갔다. 휘몰아치듯 몇 년 사이 하늘처럼 우러러보던 윗년차들이 그렇게 빠져나갔다. 떠나는 이들의 대부분은 미련 없이 홀가분해 보였다.


남은 것은 세상 허무함

 관계의 영원함은 없다. 모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음을 깨닫는다. 그 사람들의 눈 밖에 났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괴로워하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들의 꾸지람에, 날 선 시선 한 번에 생채기가 나던 순간들. 그 생채기가 너무나도 쓰라려 퇴근길에 수없이 눈물을 흘렸던 시절들이 지금도 선선한데 정작 그들은 미련 없이 이 곳을 떠나 없다. 참 허무하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용쓰듯 노력했던 것일까. 잘 보이기 위해, 잘하기 위해 애썼던 것일까.

 그만둔 동기가 이런 말을 했다. 병원 단톡 방을 나오니 다시는 연락할 일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매일매일을 시달리며 지옥에 살았다고. 그 말이 맞았다. 정신 차려보니 나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것 같았던 사람들은 온대 간대 없고 그곳에 허무함만이 남아있었다.


버티는 자가 승자

 모든 순간들을 지나 그들이 떠난 자리를 위태롭게나마 지키고 있는 것은 나다. 더 이상 다른 이의 쓴소리에 분노할지언정 상처 받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기분은 맞춰주되 윗년차의 시선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진 아랫 연차가 되었다. 그리고 날 선 시선과 말로 생채기 내지 않는 윗년차가 되었다. 모두 지나간 '터줏대감'들을 잘 보고 듣고 배운 결과일 것이다. 그들을 통해 어떻게 해야 '좋은'동료가 될 수 있는지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오답을 통해 정답을 공부하는 것 처럼 말이다.

내가 관계로 힘들어할 때 늘 되뇌었던 친구의 조언이 있었다. '버티는 자가 이기는 거야'라는 장난스러운 한마디였다. 그럴 때 난 늘 '간호부장까지 버틸게'라며 농담으로 받아쳤지만 그 말은 언제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지나고 보니 조금은 관계에 있어 쿨해질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이 관계가 영원할 듯이 신경 쓴다. 그러나 신경 쓴다고 뜻대로 될 인간사가 아니다. 나는 요즘 윗년차의 시선보단 내가 떠난 이후 남을 시선을 생각한다. 어떤 이는 떠나면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기쁘고 축제 분위기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떠나면 한없이 아쉽고 미련이 남아 가끔 떠오르기도 한다. 난 적어도 떠나가서 속 시원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대단한 미련을 남기려고 애쓰고 싶지도 않다. 그냥 좋았던 무난한 선배이자 후배로 남고 싶은 마음이다. 지나고 보니 관계에 있어 '무난한'게 제일 좋은 듯한다. 좋은 듯 하나 그것이야 말로 가장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요즘 나는 천천히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해나간다. 나의 떠나간 자리가 너무 '후련하진' 않길 조심스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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