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사는 이야기

by 쪼교

그해 겨울은 일찍 왔다. 가벼운 눈이 내리더니 밤사이 땅이 얼었다. 그 주말, 그녀를 만나기로 한날은 추위가 물러난 덕분에 날이 쌀쌀한 정도였다. 하지만 나무들에는 이파리가 모두 떨어져 있었고 잔디 색도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미 추운 겨울을 암시하듯 세상은 회색으로 변해있었다.




이렇게 쌀쌀한 날씨, 그녀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에 어느 날이 생각났다.

1년 전 바로 오늘 같은 날에 현식이네 신혼집 집들이에 가서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난 집들이를 도와주기 위해 미리 도착했다. 거기서 그녀를 처음 봤는데 현식이 와이프의 학교 동료 선생님이었는데, 역시 집들이를 도와주기 위해 미리와 있었다.

그녀는 눈 밑은 검게 푹 꺼져있었고,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느낌을 주었다.


집들이는 여느 집들이와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 중구난방으로 시작된 대화는 금방 사그라지고, 또다시 미약한 힘을 얻어 별로 상관이 없는 다른 주제로 옮겨졌다.

누군가 날카로운 소리로 ‘저기요’라고 작은 폭탄 같은 소리를 내었다.

웃음소리는 짧게 끊어졌고, 일제사격 후에 일시 정지 상태로 분위기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고, 다시 별일 없다는 듯이 서로의 말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10시까지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잡채와 갈비, 피자와 그 밖의 셀러리 등의 다양한 음식들을 몇 접시씩 먹었다. 술에 취해 먼저 간 사람들도 있었고 더 이상 음식을 안 먹는 사람도 있었다. 11시쯤에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돌아갔고. 현식이 부부와 나와 그녀만 남아 뒤처리를 도와주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으려고 했지만 상당히 술에 취해 있었고, 눈 밑은 더 검게 푹 꺼져 있었고, 얼굴은 하얗다 못해 창백해져 있었다. 뒤처리가 끝난 후에도 우리는 맥주 한 잔을 더 하기로 하였다. 그녀는 술기운에 혀가 풀어져 있었지만 발음은 비교적 정확했고 목소리에 배인 날카로움은 더 예리해져 있었다. 그녀는 무방비 상태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나보다 5살이 많았고 수학 교사라고 했다. 지금 다니는 학교는 2년 전 남편이 죽고 나서 전혀 낯선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녀는 전 남편을 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혼자 살아가는 삶에 스스로 만족을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털어놓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 살아가는 삶의 무료함에서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다가 점점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그 자유의 본질을 이해하게 됨에 따라 그녀가 느끼는 자유로움도 더욱 강렬해졌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그녀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잘은 모르지만 그녀가 일종의 변화를 거쳤음을 느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직관적인 깨달음 같은 것, 나도 책을 읽으면서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먼저 더 큰 고통을 통해 경험을 했기에 그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지식은 나보다는 더욱더 그 그녀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그녀와 나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비록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또는 자신에게 그 사실을 시인하고 있을 것이다. 연민은 아니라는 것을.


집들이 가 끝난 후에도 우리는 새벽 4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술에 지칠 때쯤 말소리는 점점 조용해지고 더 이상 힘을 얻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집들이 이후에 뜻밖의 위안과 온기를 찾은 우리는 정기적인 모임을 하기로 하였다.





얼마 후 우리는 파주 외곽의 어느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만났다.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죽은 남편 얘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남편과 성격차이로 별거 중이었다고 했다. 남편은 항상 피곤해했고 사사건건 짜증을 부렸다고 한다. 남편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녀도 또한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남편은 집에 있는 걸 좋아했다고 했다. 집 주변을 산책하거나 여행을 가보기도 했지만, 남편은 쉽게 지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파서 드러눕기까지 했다. 그녀에게 구애할 때만 활기찬 모습을 보였고, 결혼 이후에는 남편은 항상 아프다고만 했다.

병원에 갔었으나 남편은 아픈 곳이 없었다. 내성적인 남편을 도와 주려 손님들을 집에도 초대해 보고 모임을 만들어 남편을 데리고 나가봤다고 했다.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정성껏 신경 썼다고 했다. 피곤해 보이면 욕조에 물을 받아두었고 좋아하는 음식을 매일 저녁 해주었다. 남편은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자신의 기분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고, 오히려 강박적으로 그녀의 보살핌에 호의적으로 반응하면서도 긴장과 피로로 반 시체와 같이 침대에만 누워있었다고 했다.


그녀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이 결혼은 실패라고, 더 이상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별거를 결정하고, 그 집에서 나와 혼자만의 생활을 즐겼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의 모습을 너무 오래 가지고 있었다며, 그렇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했다.


별거 후 1년이 지나서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A 씨 부인되시나요?”

“ 네 그런데요”

“ 남편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남편이 계신 곳으로 와주셔야겠습니다”


되돌아간 집은 그녀가 나가기 전과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언제든 없애버릴 수 있는 임시 거처처럼 보였다. 옛날보다 더 건조하고 칙칙해진 거 같았다. 벽지는 곰팡이로 누렇게 바래져 있었고 바닥은 먼지로 더럽혀져 있었고 천장에는 줄이 매달려 있었다.

남편은 그렇게 혼자서 떠났다고 했다.


“ 난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어, 왜 아픈지 원망스럽기만 했어"


냉기가 흐르는 영안실에서 남편은 하얀 천으로 덮여있다고 했다. 흰 천을 열었을 때 그녀는 너무 놀라 화들짝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가 본 남편의 시신은 다른 사람의 것 같았다. 몸은 작게 쪼그라들어있었고, 얼굴은 얇은 종이로 만든 가면 같았고, 눈은 푹 파여 검은 그림자로 덮여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이 마지막으로 입고 있던 옷은 기괴할 정도로 컸고, 몸은 그만큼 줄어들어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정말로 혼자 남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 몇 번의 정기적인 모임에서 그녀를 만나왔다. 그녀를 생각하면 모호한 감정이 들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 아파지는 걸 느꼈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나는 이유 없이 아팠다. 병원에 가보아도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모임에서 못 나가기 시작했고 그녀도 그 후로 보질 못했다.


1년 만에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며 한번 보자고 했다.


몸이 아파지기 시작한다.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무엇을 마시겠냐는 간단한 물음에도 어두운 얼굴로 대답을 머뭇거렸다. 내 기억 속에 그녀는 늘 눈가에 잔주름 지으며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밝게 대답하려는 편이었다. 이 날따라 분장을 지우다 말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거북한 인상을 주었다.

이마에 내 천자를 흉하게 그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난 온몸에 바늘이 솟아나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나는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그날 카페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얼마 후 다시 전화가 왔지만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는 검은 사주래. 그래서 두려워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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