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난날에 육신으로는 이방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뽐내는 이른바 할례자들에게 여러분은 무할례자들이라고 불리며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 때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외되어서, 약속의 언약과 무관한 외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
《에베소서 2장 11-12절》
우리 모두가 설교시간에 많이 들어서 알다시피, 거룩함의 원어적 의미는 구별됨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과 구별되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이방 민족과 구별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거룩한 민족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정체성을 이방 민족과 차별하려는 정체성으로 바꾸어 나갔습니다. 마치 친분만으로 공동체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공동체에 들어오려는 다른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 이런저런 조건을 걸듯이 말입니다.
대표적인 게 할례가 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표식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택하시고, 그 택정하신 은혜의 표시로 할례를 행하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후대에 이르러 이스라엘 민족은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께 속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왜 거룩함의 구별됨이 차별의 주장으로 바뀌었을까요?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아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보다 강대한 민족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런 주장을 취해야만 했습니다. 자신들은 유일한 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 믿었는데, 현실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강대한 민족의 잘남과 차별화되는 나의 잘남이 할례뿐이었기에, 언약을 끝까지 붙들기 위해 선민의식을 택한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덕분에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로는 구약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두 번째로는 '아, 언약 백성은 저런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우리는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스라엘과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결코 핏줄이나 노력, 선으로 인함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구약의 이스라엘은 이 은혜를 조건부로 만들어, 하나님을 조건에 따라 선택하는 신으로 우상화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오셔야 했던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을 부수기 위해서였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선택된 새 이스라엘이 된 우리는 이런 구 이스라엘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구별됨은 타인과 나를 차별하는 조건이 아닌 하나님께 속하게 되었다는 기쁨입니다. 거룩함은 선택받았다는 선민의식이 아니라, 죄인 된 내 모습에서 비로소 자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은혜의 나눔입니다.
시작된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속할 수 없었던 죄인이었으나, 거룩함으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