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만을 기다렸다.
그날은 당도하였으나 기다리던 그날은 아니었다.
마법사가 주문을 잘못 외친 건지,
더위는 가시질 않았다.
마음을 담아 구성된 전시장에 작품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200여 개의 피스자국을 메꾸고
좌대와 모니터를 분해하고,
꼬박 일주일간 정리가 이뤄졌다.
좋은 전시를 하였나 보다.
사람의 수를 떠나 본 사람들에게 남은 것이 있었다면,
꼭 배움이나 휴식의 개념을 넘어 같이 본 사람들이
소통할 거리가 있었다면
그것이 참 좋은 전시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옛 사진들을 마주하였다.
2017~19년 미술관 연구원으로 한창 새로운 것을
마주하던 때였다.
어린이가 중심이었던 전시와 콘텐츠가
유독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일주일에 한 두 곳 좋은 이직처가 나와 이력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쓰고, 직무계획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서 지나간 시간들을 마주한다.
‘참 열심히 살았다. 치열하게 살았다.
정말 잘 될 일만 남았다.’
행복의 기준에 대해
이제는 조금씩 고민이 축적된 나이에
나의 긍정과 자신감은 허투루 보내지 않은
그 시기로부터 조금씩 응축되었다.
고민과 불안보단 어디로 가든
운명대로, 그리고 내 열정과 자신감 따라
결국은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기대와 설렘이 더 큰 요즘이다.
꼬박꼬박 챙기던 식단은 이제 적응이 되어갔다.
먹는 양 자체가 적절히 줄었다는 것을
전시안내 선생님들과 회식으로 간 식당에서 느꼈다.
쉬는 날. 쇼핑몰을 돌아보다 이번 전시에 도움 준
안내선생님들께 선물로 주고 싶은 작은 식물들을 샀다. 호야나 콩고, 올리브나무를 주고 싶었지만
결국 가장 기르기 쉬운 페페와 금전수를 골랐다.
저마다 색이 다른 화분으로 옮겼는데
적어도 내년 봄까진 잘 길러서 좋은 흙과 화분으로
분갈이해주길 당부하였다.
이별의 시간이 지나고 제법 많은 이들이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다.
장난기 많은 친구가
내 결혼상대 봐주었다고 유료결제해 보내주었는데
저런 분 알고 계시면 연락을 부탁드린다.(진심이다!)
직업이나 mbti는 몰라도 성격은
내 불완전한 완벽주의자, 일중독과 번아웃 사이,
즉흥적 실행력과 계획의 이중주를
잘 받아줄 것 같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다정함을 나눌
상대를 만나고 싶다.
다른 이로부터 롤모델이 누구냐는 물음이 있었는데,
나는 손석희 앵커와 배철수 DJ를 언급하였다.
말을 잘하고 말의 중요성을 아는 지식인들이다.
냉철한 면이 있지만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고, 나이가 들어도 유쾌함과 우아함, 어린아이 같은 면과 사회의 어른다운 면모가 있다. 호감 있는 사람이 생기면 롤모델을 한번 물어보고 싶다.
갤러리를 마저 정리하다 보니,
나도 스스로가 참 특이하거나 궁금했나 보다.
어찌 몇 마디 말들로 한 사람을
모두 소개할 수 있겠냐만은
다른 것보다 노란 원피스 입은 흰여우는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진다.
작품 운송을 위해
어느 미술관 수장고 앞 정원의 나무 그늘에서
볕을 피하였다.
처서매직은 주문 실패였더라도
나무 그늘 아래에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이
속삭여주었다. 가을을 곧 데려올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