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근무하고 있는 미술관에는 관람객들은 전혀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화초의 무덤. 전시가 이뤄지거나 인사변동이 있을때 축하화환으로 들어오는 화초들은 항상 오랜 기간 남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하였다.
작년에 들어온 몇 안되는 화초들 역시 대부분 흙으로 돌아갔다.
축하화분으로 많이 쓰이는 뱅갈고무나무 역시 작년 여름 미술관에 왔으나
한창 잘 자라다 겨울에 모든 잎을 떨구고, 올 봄에 그나마 다시 자라던 싹도 살리지 못하고 메말라 버렸다.
그렇게 화초들은 때론 과습으로, 때론 무관심의 메마름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통풍과 햇살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무실 안에서
서서히 생의 기운이 다하였다.
겨울동안 미술관을 떠나있다 돌아와 발견한 고무나무의 모습은 참담하였다.
그렇게 흙에 묻어줄까 싶은 마음에 메말라 바스라지는 나무 줄기 자체를 톱으로 도려내었다.
뿌리기둥만 남은 고무나무에 무슨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봄날 햇살과 물을 주기 시작하였다. 2주만에 남은 뿌리로부터 싹이 돋아났다.
고무나무는 옥상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새벽의 이슬과 봄-여름의 빗물을 받으며 다시 잎을 틔우기 시작하였다.
화초에게 '떨구기 힘든 암'과도 같다는 깍지벌레의 습격을 받았지만, 영양제와 알콜을 이용한 잎 닦음으로 기어코 생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사무실 직원들에게 정수기가 아닌 수돗물로 물을 줘야한다는 점과
직사광선을 맞으면 잎이 타버려서 죽는 화초들이 있다는 부족하지만 알고 있던 짧은 지식을 전하였다.
대부분의 식물에게 빗물은 어떤 영향제보다 좋은 보약이다.
그리고 화초에 흙을 만졌을 때 축축하다면 꼭 물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과습으로 죽지 않도록 관심의 농도를 줄여야한다.
애석하게도 한번 깍지벌레나 응애가 생긴 화분들은 다른 화분과의 격리가 필요하다. 잘못하다가는 모든 화초에게 옮기게 된다.
저마다의 생장 과정이 있다. 특별하게 좋은 영양제가 제각각이고, 걸리는 병의 종류나 차도도 저마다 다르다
평생 꽃을 피우지 않는 화초가 있고, 주인의 관심에 애정어린 꽃을 피우는 화초가 있다.
온도와 습도, 빛의 양, 흙과 비료의 분포에 따라 식물은 다르게 자란다.
이는 비단 식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새로운 사람과 사귈 때도 이 공식은 제법 유효하다. 너무 과한 관심이나, 호기심 또는 무관심 등의 태도들은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준다.
동료, 친구 모두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계에 휩쓸려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자세와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모두 지키기는 참 어렵다.
어딜가든 일보다 사람이 힘들 건 '적절함'의 공식이 이뤄지지 않았거나, '나'다움이 가려지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보인다.
나름 사회생활에서 타인과 적절한 거리감을 잘 유지하는 편인 내 치명적인 약점 하나를 공개하자면, 누군가에게(특히 매력을 느끼는 이성에게)
호감의 감정 혹은 그 이상이 생기면 여유보단 조급함이나 애타는 마음이 쉽게 생기곤 한다. 알아차리기 쉬운 마음. 혹시나 알아차릴까 경계심의
날을 바짝 세우며, 마음 속에 나오는 몇 번이고 고심하며 꺼내는 말들이 더 신중해진다. 그럼에도 다 들통나버린다. '마치 의식하지 않겠어!'
다짐하면 꿈에서 종종 나오고, 풍부한 상상력의 소유자답게 좋아할 것들이 떠올려지고, 허례허식이 아닌 솔직한 표현들이 툭 튀어 나와
스스로를 놀라게 하곤 한다. 고쳐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주변에 운동을 시작한다는 분들에게 얻는 자극도 있었고, 작년 겨울무렵 갑자기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해 성공한 친동생과 사촌동생들의 이야기 덕분에 한 달 동안 샐러드 도시락을 직접 챙겼다. 식이요법으로 한 뜸 가벼워지는 몸이 이제 절실히 운동이 필요한 시간이란 걸 말해주어 일기를 쓰는 것과 함께 운동이 시작되었다. 태권도 시범단을 할만큼 한 때(?) 날라다니던 내 체력이 부끄러울만큼 줄어든 것을 절실히 느꼈다.
하다못해 하루 6시간 이상은 걸어다니며 골목과 미술관을 돌아다니던 것이 얼마지나지 않았다.
개탄스러운 마음을 부여잡고 천천히 확실하게 나아가려한다.
화초에게 빗물을 주듯, 내게도 회복과 생장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하였다.
직감이 뛰어난 지인이 가을이 되면 새로운 인연이 들어올 것이라 말해주던데, 체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것이 우선 과제가 되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오늘의 러닝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