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기획 코너
[라떼:뷰]는 김은주 기자가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반추하며 그들의 현재를 들여다보는 기획 코너다. 제목 그대로 [라떼:뷰]는 서로 만난다는 뜻의 ‘랑데뷰’, 이야기를 나눈다는 ‘인터뷰’ 그리고 그 시절 그 느낌을 떠올린다는 ‘라떼’ 등 여러 단어의 소리와 뜻을 조합했다. 과거 그들에게 몽글몽글하게 피어올랐던 인생사와 바람들이 현재 이미 세세하게 이뤄졌거나 곧 펼쳐질 미래의 메시지로 다가갈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감미롭고 따뜻한 라떼처럼 우리 인생에도 녹아들기를 바란다. [편집자주]
배우 조정석을 10년 전 서울 잠원동 일대에서 만났을 땐 당시 서른 두 살이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한 청년의 해사한 외모가 한 눈에 들어왔다. 깨끗했던 첫 인상만큼 잡티 하나 없는 피부에 활짝 꽃이 핀 미소까지. 서른 청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싶어할만할 싱그러운 분위기였다. 당시 그가 왜 뮤지컬 시장에서 남녀노소에게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는지 외모와 풍채에서부터 단박에 감이 왔다.
지난 2004년 ‘호두까기 인형’으로 뮤지컬 시장에 데뷔한 조정석은 이후 7년간 ‘그리스’, ‘벽을 뚫는 남자’, ‘헤드윅’, ‘올슉업’, ‘스프링 어웨이크닝’, ‘트루웨스트’ 등 제목만 들어도 치열한 경쟁은 필수 옵션인 유명 작품에 연거푸 캐스팅되며 뮤지컬계 흥행 보증 수표로 자리매김했다. 캐릭터를 온전하게 표현해내는 정교한 감정선에 고음과 저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출중한 노래 실력까지 두루 갖춰 뮤지컬 무대를 쥐락펴락하는 명배우가 됐다.
그렇게 열심히 내달리던 그에게 딱 10년 전인 2011년은 배우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던 해였다. 당시 조정석은 뮤지컬 톱 흥행 배우로서 MBN 종편드라마 ‘왓츠업’을 안방 데뷔작으로 선택하며 모험의 길에 막 들어서던 참이었다. 뮤지컬 데뷔 7년 만에 드라마로 진출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조정석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자신의 진심 어린 도전이 잘 표현될 수 있도록 단어 하나 하나 신중히 선택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제 관심은 처음부터 영화였어요. 뮤지컬 배우로 첫 발을 들인 것도 영화 진출에 꿈이 있었거든요. 어린 시절 수중에 돈이 생기면 곧장 극장에 갔을 만큼 영화를 정말 좋아했어요. 그러다 대학시절 우연히 시작한 뮤지컬이 삶을 바꿔놨죠. 이후 뮤지컬에 집중하다 보니까 어느덧 7년이 흘렀더라고요. 드라마와 영화에 진출한 선·후배를 바라보며 부러움과 조급함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진작에 눈을 돌렸겠죠. 뮤지컬 작품을 하나씩 연기하면서 제 안의 능력들이 차오르길 기다렸습니다.”
뮤지컬 톱 배우에게도 새로운 도전은 어려운 과제 중 하나라는 것을 고백했다. 상기된 표정이 감돌았다. 신인 배우로서 생소한 분야에 뛰어든다는 부담감이 표정에서부터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러한 떨림을 보며 기자는 다소 의아했다. 뮤지컬 무대에서 입증된 조정석의 스타성과 연기력을 익히 듣고 봐왔던터라 “왜 더 자신이 없을까. 자신감을 가져도 이미 충분한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게 새로운 분야로 진출할 기회가 이전에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업계에서는 뮤지컬에서 입증된 거물급 신인으로 주목받으며 캐스팅 후보 라인업에 종종 이름을 올렸다. 그러다가 지난 2007년 개봉한 영화 ‘바람 피기 좋은 날’과 2008년 ‘고고70’ 출연 물망에 올랐으나 뮤지컬 스케줄과 겹치면서 불발됐다. 영화나 드라마로 나가기 전 뮤지컬 무대에서 더 기반을 닦아 연기력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이기에 묵묵히 작품 경험을 쌓아갔다.
그런 기다림 끝에 도전한 첫 드라마 ‘왓츠업’. 기대와 달리 성적표는 좋지 못했다. 당시 MBN은 종합편성채널로 재개국했던 터라 시청층이 두텁지 못했던 게 우선적으로 컸다. 첫 작품의 아쉬움을 달래며 절치부심했고 다행히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이듬해 영화 ‘건축학개론’을 통해 스크린의 신 코믹 캐릭터 납뜩이를 탄생시키며 혜성처럼 등장한 거물급 신인 배우의 탄생을 알렸고, 다음 해에는 900만 명을 단숨에 끌어 모은 영화 ‘관상’에서 애절한 가족애 연기로 관객의 눈물을 터뜨렸다. 이후 순정남의 매력을 그려낸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과 유방암을 앓는 남자 앵커라는 난해한 캐릭터를 코믹하게 살린 드라마 ‘질투의 화신’ 등을 통해 안방에서도 빠르게 입지를 다져나가며 연거푸 콜을 받았다.
“내 안의 능력들이 차오르길 기다렸다”는 조정석의 바람은 결과적으로 먼 미래가 아닌 금방 채워질 것들이었다. 10년이 지난 현재 조정석은 물오른 연기력으로 작품마다 만개 중이다. 그렇게 바라던 영화며 드라마며 출연하는 작품마다 ‘시청률 대박 배우’ ‘흥행보증수표’ 등 화려한 수식어를 몰고 다니고 있는 것. 뮤지컬부터 영화까지 맹활약한 덕분에 전천후 연기자의 롤모델로 급부상하는 등 인기 기세가 매섭다. 특히 지난 2019년에는 영화 ‘엑시트’를 통해 ‘천만 배우’(942만 집계) 문턱까지 근접하며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완성해가고 있다.
영화에 이어 드라마로 다시 돌아온 조정석은 현재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1’에 이어 ‘슬기로운 의사생활2’(슬의생)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캐릭터 뒤편에 묻은 인간미까지 건져올리는 디테일한 연기력이 그의 강점이다. 특히 이번 ‘슬의생2’는 조정석을 위해 쓰인 작품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아이 아빠로서 이혼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워킹 대디이자 의사 이익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박학다식함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의술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를 위한 섬세하고 따뜻한 배려까지 인간미 넘치는 가상 캐릭터를 현실 속 인물인 것 마냥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며 매회 돋보이는 주인공으로 매력을 갱신 중이다.
조정석이 10년 전 드라마 ‘왓츠업’을 택한 건 뮤지컬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를 모르시는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뮤지컬에서 익힌 감각을 자연스럽게 보여드릴 수 있을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어요.” 그 각오 그대로 현재 조정석의 연기력은 어디에나 흘러가듯 유연하고 날렵하다. 한정적 소재나 역할 그 어디에도 갇히지 않는 독립형 연기자로서 기반을 단단히 다져나가고 있다. 조정석이 곧 장르가 되는 탄탄한 연기력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10년 전 “저 배우 누구지?” “연기 정말 자연스럽다”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조정석은 현재 그 목표 고지에 근접해 있다. 카메라든 무대든 감정을 꺼내놓기만 하면 캐릭터가 완성되는 재주를 쉴 새 없이 부린다. 돌이켜보면 조정석은 이미 10년 전부터 완성형 캐릭터를 맛깔나게 빚어내는 비책과 능력을 내면에 장착하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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