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중심디자인(UCD) 철학을 준비한 헨리 드레이퍼스

by 유훈식 교수

헨리 드레이퍼스(Henry Dreyfuss)는 누구인가?

헨리 드레이퍼스는 20세기 미국 산업디자인의 황금기를 개척하고, 오늘날 우리가 사용자 경험(UX)이라고 부르는 개념의 실질적인 학문적, 실무적 토대를 마련한 선구적인 인물이다. 1904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초기에는 연극 무대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경력을 시작했다.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이미 브로드웨이 무대 세트를 디자인하며 공간 배치와 시각적 내러티브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1920년대 후반까지 250여 개의 무대 세트를 제작하며 실용성과 사실주의가 결합된 독특한 디자인 감각을 선보였다. 이 시기 그는 당대의 거물 디자이너였던 노먼 벨 게디스 밑에서 도제 생활을 하며 디자인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깊이 있게 연구했다.

1929년 자신의 디자인 사무소를 개설하며 본격적으로 산업디자인 분야에 뛰어든 드레이퍼스는 당시의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접근 방식을 취했다. 당시 레이먼드 로위와 같은 경쟁자들이 제품의 외관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스트림라이닝(Streamlining)'이나 스타일링에 집중했던 반면, 드레이퍼스는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접근법을 강조했다. 그는 디자인을 단순히 아름다운 껍데기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제품이 생산되고 사용되며 수리되는 전 과정에서 인간이 느끼는 불편함을 제거하는 해결책으로 보았다. 이러한 철학은 그를 단순한 예술가에서 '인간을 연구하는 공학자'의 지위로 격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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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이퍼스의 경력은 미국 산업사의 상징적인 브랜드들과의 협업으로 점철되어 있다. 벨 전화기(Bell Telephone), 후버 진공청소기(Hoover), 존 디어 트랙터(John Deere), 하니웰(Honeywell) 등 그가 손댄 제품들은 미국 가정을 넘어 전 세계의 일상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제품이 시장에 출시된 후 디자인을 수정하는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믿었으며, 초기 기획 단계부터 제조사의 엔지니어들과 긴밀히 협력하여 제품의 구조와 메커니즘 자체를 인간의 신체 조건에 맞추는 방식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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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향력은 개별 제품 디자인에 그치지 않았다. 1965년 미국 산업디자이너 협회(IDSA)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디자인의 전문화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데 앞장섰으며,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Caltech)와 UCLA에서 수년간 강의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1972년 그가 불치병에 걸린 아내 도리스 마크스와 함께 생을 마감할 때까지, 드레이퍼스는 디자인이 기술과 인간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그가 설립한 'Henry Dreyfuss Associates'는 그의 사후에도 수십 년간 그가 남긴 인간 중심의 디자인 원칙을 지켜오며 현대 디자인계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헨리 드레이퍼스와 인간공학의 탄생

헨리 드레이퍼스가 산업디자인 역사에서 차지하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디자인의 중심에 추상적인 미학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인간'을 배치했다는 점이다. 그는 제품의 형태가 단순히 기능을 따르는 것을 넘어, 그 기능이 반드시 인간의 신체적, 심리적 한계와 가능성에 부합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이러한 통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사 장비 설계 과정에서 축적된 방대한 신체 데이터와 결합하며 '인간 요인(Human Factors)' 또는 '인간공학(Ergonomics)'이라는 새로운 전문 분야의 탄생을 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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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디자인 과정을 '안에서 밖으로(from the inside out)' 수행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는 기계가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순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 자체가 인간의 동작과 자세에 최적화되어야 한다는 혁신적인 사고의 전환을 의미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드레이퍼스의 상징과도 같은 '조(Joe)'와 '조세핀(Josephine)'이다. 이들은 드레이퍼스 사무실의 모든 설계 기준이 된 가상의 남녀 모델로, 인구 통계학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신체 치수를 형상화한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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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조세핀은 단순히 평균치만을 대변하는 정적인 수치가 아니었다. 드레이퍼스는 유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는 신체 변화를 추적하고, 상위 1%부터 하위 1%에 이르는 극단적인 치수까지 포함하는 정밀한 인체 치수 차트를 구축했다. 이는 키가 아주 크거나 작은 사람, 혹은 신체적 제약이 있는 사람들까지도 제품을 사용하는 데 소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보편적 설계의 기초가 되었다. 조와 조세핀은 전화기 수화기의 각도를 결정하고, 트랙터 좌석의 쿠션 높이를 설정하며, 비행기 조종석의 조작 레버 거리를 계산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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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연구 결과는 1960년에 출간된 《인간의 척도(The Measure of Man)》라는 저작을 통해 전 세계 디자인계에 보급되었다. 이 책은 디자이너들이 주관적인 감에 의존하지 않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 친화적인 제품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인간 사용 설명서' 역할을 했다. 드레이퍼스는 인간의 근육 움직임, 시야의 범위, 반응 속도, 심지어 특정 소음이나 냄새에 대한 심리적 반응까지 데이터화하여 디자인의 영역에 편입시켰다. 그의 이러한 접근법은 디자인을 장식의 차원에서 공학적 정밀함과 심리학적 이해가 결합된 고도의 전략적 행위로 탈바꿈시켰으며, 현대 UX 디자인이 강조하는 '데이터 기반 디자인'의 직접적인 기원이 되었다.


Designing for People(1955)을 출판하다.

1955년 헨리 드레이퍼스가 출간한 《사람을 위한 디자인(Designing for People)》은 현대 산업디자인의 바이블이자 사용자 중심 디자인(UCD)의 근간을 이룬 기념비적인 선언서다. 이 책에서 드레이퍼스는 자신의 평생에 걸친 디자인 철학과 실무 경험을 집대성하며, 디자인의 목적이 자아실현이나 장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을 돕는 것'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우리가 디자인하는 물건은 사람들이 타고 앉고, 보고, 말하고, 작동하고, 조작하는 대상"이라며, 제품과 인간 사이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모든 경험이 디자인의 핵심임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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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이퍼스는 이 책을 통해 모든 디자인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의 열쇠로 '5가지 핵심 공식(Five Point Formula)'을 제시했다. 첫째는 유용성과 안전성이다. 그는 농기구나 군사 장비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제품을 디자인할 때 작업자의 안전이 디자인의 그 어떤 요소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도구가 본래의 목적을 직관적이고 쉽게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용성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둘째는 유지보수의 용이성이다. 드레이퍼스는 제품이 사용되는 과정뿐만 아니라 청소, 기름칠, 부품 교체 등 사후 관리 과정까지 디자인의 영역으로 포함했다. 특히 대형 선박이나 비행기 인테리어 디자인 시 관리 효율성을 높여 운영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임을 강조했다. 셋째는 비용이다. 그는 디자이너가 생산 공정과 부품 수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제조 원가를 낮추어 더 많은 대중이 좋은 디자인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넷째는 판매 매력이며, 다섯째는 외관이다. 이는 제품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사용자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심미적 만족감을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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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이퍼스의 방법론 중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공감적 연구'와 '철저한 모델링'이다. 그는 비행기 좌석을 디자인하기 위해 직접 비행기에서 잠을 자고, 호텔 방의 가구 배치를 결정하기 위해 며칠간 그 공간에 머물며 사용자의 사소한 불편함까지 포착해냈다. 그는 이를 "사용자의 신발을 신고 걷는 것"이라 표현하며 디자이너의 현장 경험을 최우선으로 쳤다. 또한 모든 프로젝트에서 실제 크기의 모델(Mock-up)을 제작하여 점토나 석고로 형태를 다듬으며 인간의 손과 몸에 가장 잘 맞는 최적의 곡선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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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철학이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사례가 바로 1953년 탄생한 '하니웰 T87 원형 온도 조절기'다. 당시 온도 조절기는 대부분 사각형이었고 설치할 때마다 수평을 맞추는 것이 고역이었다. 드레이퍼스는 이를 원형으로 디자인하여 설치의 불편함을 근본적으로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단순히 다이얼을 돌리는 직관적인 조작 방식을 통해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쉽게 온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는 디자인을 통해 복잡한 기술을 단순화함으로써 사용자에게 '평온함(Tranquility)'을 선사하고자 했으며, 이는 현대의 미니멀리즘과 직관적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선구적인 모델이 되었다.


사용자 중심 디자인 (UCD) 철학의 기초를 마련하다.

현대 디지털 문명을 지배하는 사용자 경험(UX) 디자인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정점에는 항상 헨리 드레이퍼스가 서 있다. 그는 '사용자 경험'이라는 용어가 대중화되기 수십 년 전부터 제품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이 성공적인 디자인의 핵심임을 간파하고 이를 이론화했다. 드레이퍼스가 남긴 "제품과 사람 사이의 접점이 마찰점(Point of Friction)이 된다면 산업디자이너는 실패한 것이다"라는 명제는 오늘날 모든 UX 디자이너들이 가슴에 새기고 있는 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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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이퍼스의 공로는 특히 벨 시스템(Bell System)과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전화기 디자인의 진화 과정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1949년 출시된 '모델 500' 전화기는 현대적 사용성 테스트의 결정체였다. 그는 수화기의 각도를 조절하기 위해 2,000명 이상의 인간 얼굴 형태를 측정했으며, 사용자가 어깨에 수화기를 걸치고 통화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수화기의 단면을 평평하게 설계한 'G-타입' 핸드셋을 개발했다. 또한 숫자와 글자를 다이얼 구멍 바깥쪽으로 배치하여 가독성을 높이고, 손가락이 정확한 지점을 조준할 수 있도록 돕는 '에이밍 도트(Aiming Dots)'를 도입하여 다이얼링 시간을 0.7초 단축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오늘날 웹 디자인의 클릭 버튼 배치나 모바일 인터페이스의 레이아웃 설계 방식과 그 궤를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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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드레이퍼스는 디자인의 사회적 가치와 윤리적 책임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을 남겼다. 그는 기술의 자동화가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을 경계했으며, 디자인이 인간에게 더 많은 여가와 평온함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이 고차원적인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디자인한 뉴욕 중앙 철도의 '20th Century Limited' 열차는 로고부터 식기, 유니폼, 실내 조명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를 통합적으로 디자인하여 사용자에게 '레드 카펫 대우'라는 브랜드 경험을 선사한 초기 통합 UX 디자인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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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헨리 드레이퍼스는 디자인의 대상을 '물건'에서 '사람의 행동과 감정'으로 옮겨놓은 혁명가였다. 그가 구축한 조와 조세핀의 데이터는 오늘날의 AI 기반 인터페이스와 로봇 공학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지표로 활용되고 있으며, 사용자의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그의 집요한 탐구 정신은 현대 스타트업들의 '문제 해결 중심(Problem-solving)' 사고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오늘날 스마트폰을 켜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전제품을 만지는 모든 순간에 헨리 드레이퍼스가 남긴 사용자 중심 디자인의 유전자는 우리 삶을 더욱 안전하고 편리하며 아름답게 지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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