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주년이잖아. 우리 둘이 여행 한번 가자.”
올해 초, 결혼 10주년이라는 특별한 해를 맞아 남편과 약속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쉼 없이 달려온 지난 시간,
이제는 잠깐이라도 ‘부부로서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출국일이 다가오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머릿 속에 챙겨야 할 짐들은 둥둥 떠다니는데 쉽게 짐을 싸지 못했다.
‘이 아이들을 두고 괜찮을까?’
여행보다 아이 걱정이 먼저였고,
설렘은 어느새 불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음이 무거운 여행을 싫었다.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아이들의 친구들이 모여 있던 며칠 전 어느날, 나는 일부러 그 자리를 택했다.
“지율아, 민재야. 이번엔 엄마랑 아빠가 둘이서만 여행을 다녀올 거야.”
둘 다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순식간에 울 것 같은 표정이 스치더니,
옆에 있던 친구들이 먼저 소리쳤다.
“우리 집에 와! 같이 놀자!”
“우리 집에서도 자도 돼!”
그 말에 두 아이의 표정이 조금 풀렸고, 나도 안심이 됐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렇게 덧붙였다.
“엄마 아빠 없는 3박 4일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랑 잘 지내면
너희가 갖고 싶어 하던 장난감 사줄게.”
지율이랑 민재는 동시에 눈이 반짝였다.
“정말?”
“그럼!”
장난감을 안은 아이들의 얼굴엔 미소가 피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조금 안심했고, 마음에는 다시 설렘이 싹텄다.
그날 밤, 딸이 잠들기 전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 안 가면 안 돼?”
다시 철렁했다.
“지율아, 엄마랑 아빠가 이번엔 둘이서 다녀올게. 지난번에 지율이랑 엄마랑 둘이서만 데이트했지? 그런 것처럼 엄마랑 아빠랑 둘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어”
나는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아이의 눈은 금세 촉촉해졌다.
다음 날 아침, 지율이는 눈을 뜨자마자 말했다.
“엄마,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내일 말고 모레 가면 안 돼?”
나는 잠시 아이의 눈을 바라보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지율아, 이번 여행은 엄마 아빠가 젊은 시절에
마지막으로 둘이서만 떠날지도 모르는 여행이야.
조금만 지나면 너희랑 늘 같이 여행하게 될 거야.
그때는 네가 글도 읽고, 여행 계획도 직접 세울 수도 있을걸?
지금이 지나서 나중에 엄마 아빠가 둘이서만 여행을 떠나게 될 때는 지금처럼 젊지 않고 늙어있을거야.
결혼 10주년은 엄마 아빠한테 아주 특별한 날이야.
조금만, 잠깐만, 엄마 아빠가 둘이서 데이트할 시간을 주면 좋겠어.”
지율이는 내 눈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조용한 끄덕임이, 그 어떤 약속보다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옆에 있던 민재가 갑자기 ‘뿌앵’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민재야, 왜 울어?”
민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 늙지 마… 엄마 늙지 마아아~!”
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으로 나는 박수를 치며 박장대소했다.
그때 남편이 옆에서 한마디 했다.
“아빠는 이미 늙었단다.”
그 순간, 지율이도 민재도 나도 동시에 빵 터졌다.
웃음 속에서 불안이 눈 녹듯 사라졌다.
여행 가방을 싸기 전 이 글을 쓴다.
왠지 아이들이 허락한 여행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훨씬 가볍다.
장난감보다 진심이, 말보다 눈빛이 아이의 마음을 달래준다는 걸 배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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