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人] 故 유재하, 그를 그리다

그를 그리다, 그를 기리다, 그를 그리워하다

by 스파씨바

가장 존경하는 음악인 유재하, 아래 글은 2004년, 모 음반사에 유재하에 대해 제출했다가 일부를 수정해 지식IN에 올려놓은 글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글을 거의 베껴 써놓고 본인이 이 글을 썼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 글이 오히려 내 원글보다 더 많이 퍼지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억울하여 표절한 사람에게 쪽지를 보냈으나 답변은 없고... 정성 들여 쓴 글을 도둑맞으니, 참으로 속상하다.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3&dirId=302140101&docId=49729550&qb=7Jyg7J6s7ZWYIOyynOyerA==&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UZ8PYlpySERsss5B9pNssssstDw-312556&sid=BFKfr/IaAnA6InlyhDDXYg%3D%3D


2003년, 2004년경 쓴 글이라 고쳐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 당시에 썼던 그 느낌 그대로를 살리기 위해 원본을 그대로 남긴다.



20140127101718306829_59_20140127101803.jpg


ABOUT 유재하


그가 떠난 지 어느새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5살에 우리 곁을 떠났으니 그가 살아있다면 이제는 40대의 나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천재 음악인, 비운의 천재, 가요계의 모차르트 등 그를 칭하는 말들은 많지만, 왠지 그 말들만으로는 "유재하"라는 음악인이 남기고 간 업적과 그의 실력을 다 표현할 수 없을 듯하다. 그만큼 그는 뛰어난 음악인이었던 것이다. 어느 기사에서 본 것처럼 1987년은 가요계를 뒤바꿀만한 커다란 사건이 두 개가 일어났는데, 그중 하나는 유재하의 독집이 나와 가요계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가 떠나 가요계의 음악적 발전이 더뎌졌다는 것이다. 그가 아직까지 살아있었다면, 우리나라 가요계는 어디까지 바뀌게 되었을까?


작곡가 유재하 - 그의 천재성은 아직도 그를 존경하게 만듭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 그가 유작으로 남기고 간 한영애의 ‘비애’, 그리고 그가 그의 유작 앨범에서 보여준 작곡 실력은 뛰어나다는 단순한 평가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당시에는 거의 없었던 변조나 독특한 코드 진행 등을 이용해 당시 가요의 수준을 팝 이상의 것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작곡 능력은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에 삽입되어 또 한 번 사랑을 받은 ‘우울한 편지’라는 곡만 봐도 알 수 있다. 스탠더드 재즈 스타일의 곡 ‘우울한 편지’ 중 “나를 바라볼 듯 눈물 짓나요 마주친 두 눈이 눈물겹나요”라는 부분의 코드 진행은 쉽게 합쳐지기 어려운 메이저 코드와 마이너 코드를 섞어가며 대중을 교란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작곡 실력은 어색하게 들려야 할 그 코드 진행을 대중이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 것이다. 또한, ‘지난날’이라는 곡의 뒷부분에서도 그의 작곡 실력은 돋보인다. “생각 없이 헛되이 지낸다고 하지 말아요 그렇다고 변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지난날”이라는 부분의 교묘한 변주는 대중들에게 그간 느끼지 못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쉽게 느끼지 못하는 ‘유재하 표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가 즐겨 쓰던 변조는 변조를 잘 쓰는 음악인 중 하나인 김현철이나 김광진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김현철이나 김광진이 장조에서 또 다른 장조로, 단조에서 또 다른 단조로의 ‘조바꿈 정도의 변조’라고 한다면, 유재하는 장조에서 단조로, 단조에서 장조로 계속 ‘변화해서는 안 되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그러한 ‘금기 사항의 파괴’가 그의 탁월한 작곡 실력을 거쳐 대중들의 귀에는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대 내 품에’라는 곡에서의 “어둠이 찾아들어 기댈 곳을 필요로 할 때”는 그의 변조의 절정 정도로 평가받으면 적당할 듯싶다. 기존의 가요 같은 메이저 코드의 자연스러운 진행에서 벗어난 이 네 마디로 인해 이 곡은 기존의 가요들과 그 격을 달리 하게 되는 것이다.


작사가 유재하 - 당신을 시인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작사가로서의 유재하의 능력은 당시의 사랑 일색이던 가요 가사에 ‘삶’이라는 또 다른 소재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가리워진 길’이라는 곡은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그리고 몇 년 뒤의 김광석과 더불어 가요 가사의 수준을 통째로 업그레이드시켰다는 의미에서 수작 중의 수작으로 꼽힐 만한 곡이다.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갯속에 쌓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이라는 가사는 ‘쉽게 잡히지 않는 꿈, 그리고 목표’를 ‘어렸을 때 손으로 그렇게도 잡고 싶어 했던 무지개’라는 단어로 표현함으로써, 대중들의 거부감을 줄이고 있다. 또한, ‘보일 듯 말 듯’과 ‘잡힐 듯 말 듯’이라는 대구를 이용해 ‘쉽게 접근하지 못해 생기는 안타까움’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 그에겐 있었던 것이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이라는 곡의 가사 역시 유재하의 능력을 한껏 보여주고 있다. “엇갈림 속의 긴 잠에서 깨면 주위엔 아무도 없고 묻진 않아도 나는 알고 있는 곳 그곳에 가려고 하네”라는 부분은 유재하의 죽음과 더불어 묘한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죽은 많은 가수들이 그랬듯, 유재하도 본인의 죽음을 미리 예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이 아닌 ‘삶’을 이처럼 훌륭히 표현했던 유재하는 가요계에 있어서 시인이라고 불려도 충분할 만한 자격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음악인 유재하 - 음악인으로서의 그는 천재 그 이상이었습니다.

불과 1-2년 전의 곡만 들어도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대중가요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 대중들의 귀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유재하가 만든 노래들에는 그런 ‘질림’ 혹은 ‘물림’이라는 것이 없다. 그만큼 그가 뛰어난 음악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까지 그의 곡이 고급스럽게 들리는 것은 그의 편곡 실력으로 인한 것이다. 기타, 베이스, 드럼, 건반이라는 네 가지 악기로 허술하기만 했던 편곡이 다였던 당시의 가요에 그는 ‘클래식 악기’들을 끌고 들어왔다. 기타, 바이올린, 첼로 등의 현악기, 그리고 클라리넷, 플롯, 오보에 등의 관악기까지 그의 노래에 이용되었던 것이다. 현악기 편곡을 잘하기로 유명한 김동률이나 관악기 편곡을 잘하기로 유명한 김현철보다 앞서, 그는 두 분야의 악기들을 모두 훌륭히 편곡해 낸 것이다. 또한, 그의 음악인으로서의 실력은 그의 연주 실력에서도 알 수 있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한 만큼 그의 키보디스트로서의 자질은 뛰어나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나머지 악기를 ‘그 악기의 전공자’보다 더 훌륭하게 다뤄내는 데 있는 것이다. 바이올린, 비올라, 기타 등등 그는 거의 모든 악기를 다루는 능력을 그의 앨범에서 한껏 발휘하고 있다.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춤추기에 바쁜 요즘의 가수들에게는 경종을 울려줄 만한 그런 그의 능력이 아닌가 싶다.


가수 유재하 - 그의 목소리에는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습니다.

작사가, 작곡가, 편곡가 등등의 그의 능력은 쉽게 인정하면서도 그의 가수로서의 능력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가 김경호나 김종서처럼 폭발적인 가창력을 지니지도 않았고, 박효신이나 휘성처럼 맛깔스러운 기교도 부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유재하의 목소리는 그 누구보다 진솔하다. 마치, 유재하를 따라 하늘로 간 김광석의 그것처럼..... 유재하의 목소리는 유재하의 노래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목소리이며, 우리 삶을 가장 편안하게 표현해주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진솔함이 묻어 있는 목소리, 그래서 삶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목소리, 그것이 바로 대중 가요계에 가장 필요한 목소리가 아닐까?

그리고, 현재... - 유재하는 아직 우리 곁에 있습니다.

"무지개"로 1회 대회 대상을 받고, 현재 활발한 음악 활동 중인 조규찬 씨, "나의 하늘"이란 곡부터 본인의 독집 앨범 두 장까지 폭발적인 가창력과 독특한 창법으로 인정받았던 정혜선 씨, "거리 풍경"이라는 곡으로 2회 대회 수상을 한 뒤 이소라 씨 등과 실력파 재즈 보컬 그룹 "낯선 사람들"을 이끌었던 고찬용 씨, "새로운 세상이"라는 곡으로 수상한 뒤 작곡자와 키보디스트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박인영 씨, 각각 2회 수상자와 3회 수상자로 "일기예보"라는 팀에서 활동했던 박영열(예명 나들) 씨와 강현민 씨, "달빛의 노래"로 4회 대회 대상을 받고, 요즘 가장 잘 나가는 프로듀서 겸 작곡가가 된 유희열 씨, 이수영, 이기찬 등의 작곡가로 유명한 4회 대회 은상 수상자 심현보 씨, 스토리라는 그룹의 이승환 씨, 불독맨션의 이한철 씨, "세 가지 소원"의 작곡자 이규호 씨, 박진영 사단의 작곡가 방시혁 씨, 지금은 각자 솔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예전에 "자화상"이라는 팀으로 활동했던 가수 겸 작곡가 나원주 씨와 정지찬 씨(현재 HUE로 활동 중), "내추럴"이라는 팀에서 활동 중인 양해중 씨까지.....


유재하 씨가 없었다면, 그래서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가요계는 지금과 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