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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Mar 20. 2020

안심시장이여, 이제는 안심하라

[전통시장 순례] 연무읍 안심시장 & 오일장

이명랑 소설 『삼오식당』은 작가가 나고 자란 영등포 시장을 배경으로 한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 제목도 실제 어머니가 운영했던 '삼호식당'에서 따왔다는데 시장사람들의 애환이 적나라하다. 좋은 얘기뿐 아니라 마뜩찮았던 내용도 꺼집어내어 고발소설처럼 썼지만, 작가는 '명랑'이라는 자기 이름처럼 명랑톤을 유지해간다. 


시공을 옮겨서 여기는 연무대 안심리 안심시장! 안심(安心)하고 살 수 있는 고장이라 하여 안심리 또는 안심동이라고 하였다. 논산경찰서장도 여기 출신이라는데, 출세하려면 얼마든지 정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고장이라는 말도 들려온다. 안심정사가 있는 제갈마산은 제갈량의 말인 천마가 승천하는 형상으로 많은 사람을 다스리는 총사령관의 위상을 자랑하며 우리나라 최고 영산이자 영험한 기가 모인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처럼~~



안심리는 원래는 여산군였는데 익산군 황화면였다가 1963년 1월 1일 연무읍 승격에 따라 논산군 연무읍에 편입된 곳이다. 문헌을 보니 안심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대메가 나온다. 안심시장 안에는 ‘다메’라는 야채집이 있다. 삐꼼 들여다 봤다가 붙잡히다시피하여서 한참 얘기 나누었다. 처음에 밝히지 않던 나이가 나중에 91세로 커밍아웃이다. 5남매 모두 훌륭하게 키워낸 자랑스러운 어머니로서 자식자랑이 간단없이 이어진다. 아직은 바람불고 추운 겨울, 그런데 유복한 이 할머니는 가게에 들인 방에서 생활을 하신단다. 자식 하나가 속 썩일 때가 가끔 있어서, 속 차릴 때까지 독거노인을 자처하신다고 털어놓는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 가게에만 목을 거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농사를 지으러도 나가시고 경로당에도 들르신다. 장사가 시원찮아서도 그렇지만 이렇게 나와 있어야 속이 트이고 기분 전환도 되신다고. 재래시장에서 구순인 현역 할머니가 건재하는 곳, 연무대 안심시장이다. 



스산하지만 봄이 오는 길목


골목풍이 부는 사거리에 고정 의자 하나 갖다놓고 하루 종일  앉아 있는 할머니가 있다. 서울상회 주인이다. “춥지 않으세요?” 자세히 보니 의자 크기에 맞춘 전기장판이 깔려 있기는 하다. 가게가  안쪽으로 있는데, 사람들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각도 다른 쪽에다 좌판 하나를 더 펼쳐놓았단다. 한눈은 가게를, 한눈은 좌판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에서 망부석이 되어 하루 종일 가부좌이다. 그래본들 손에 쥐어지는 건 하루 5천원, 만원짜리 한 장뿐인데, 집에 있으면 우울증 생길 거 같아서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하신단다. 


대한민국 전통시장, 특히 지방 시장 대부분이 스산한 풍경이지만 안심시장은 유독 더 심한 거 같다. 안 되겠다. 냉해진 속에 따신 기운을 불어넣어야 할 거 같다. 시장 하면 국밥집이다. 안심시장에는 순대골목이 있다. 3개 나란한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15일 일요일이어서 문을 다 닫았다. 연무대 5일장인 안심장은 5일, 10일이다. 장날인데도 문 안 연 곳이 꽤 된다. 일요일은 무조건 쉰다는 대화기름집 박용화 상인회장처럼 주 5일 근무제 추세여선지, 코로나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돼지처럼 정과 인심이 뚝뚝~


가뜩이나 코로나로 위축된 연무 경제에 자그만 희망이라도 안겨주고 싶은 마음에 황명선 시장이 안심시장 다녀갔다 하고, 그게 며칠 전 일이다. 안심시장 리빌딩에 대한 기대감도 있어선지 기자가 시장취재를 하러 나온다니까 지역활동가 몇이 시장 안내 겸 점심 함께 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밥을 먹어야 정(情)이 든다고 했던가! 장소는 소머리국밥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후덕한 아줌마가 주방을 장악하고 있다. 대화 분위기는 박용화 회장이 다잡는다. “소머리국밥집으로 유명한 곳이 여산에도 하나 있고 화지시장에도 있죠? 난 그 셋 중에 여기를 최고로 쳐요!” 중매쟁이에게 속는 셈치고 들어주는데, 허풍이 아니었다. 최고 정직한 게 세치 혀. 진하고 깊은 맛에 빠져 있는데, 들어왔던 손님이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식객 중 하나가 “왜 오신 손님을 내보내느냐?”고 뭐라고 하자 주인집 아줌마 왈 “국물 우려내는 데 기름 걷어내고 하려면 시간이 엄청 걸려서 손님들 기다리게 할 수 없잖아요!” 답하면서 웃는데, 솥뚜껑만한 얼굴에서 눈이 아예 사라진다. “상호를 왜 정이라고 지었어요?” 기자의 물음에 돌아온 답. “몰라요, 안산 사는 우리 딸이 엄마는 정 많으니까 정으로 지으라 하더라구요^”



시장은 뭐니뭐니 해도 정이요 덤이요 먹거리다. 안심시장의 대표음식은 무엇인가? 앞으로는 어떤 메뉴에 왕관을 씌워서 등극시켜야 하나? 이 화두를 두고 입들이 모아졌다. “안심 하니까 쇠고기 안심살이 연상되는데요?” 기자가 아는 체하자 동석한 윤석용 주민자치회장은 이야기 물꼬를 돼지로 튼다. 돼지음식특화거리의 시작은 돼지의 육질! 그래서 미생물로 돼지 키우는 얘기부터 시작된다. 미생물로 키운 돼지는 돼지똥 냄새도 별로며 소화도 잘 시키니 속성양돈 가능, 육질도 부드러워서 양돈농가나 식당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결론이다. 현재 조상덕 양돈회장과 얘기중이며 조만간 논산의 대표먹거리로 키워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연무대에 양돈단지가 들어선 것은 연무대훈련소 덕이다. 1만여명이 훨 넘는 군대에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짬빱(잔반)이 돼지키우기에 노다지였다. 초창기에는 돼지를 키우지 않는 집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는 동안 차츰 통폐합되고 해서 현재는 11개의 축산농가가 기업형으로 운영하는 중이다. 그러니 여기 연무대표 돼지는 로컬푸드의 전형이기도 한데, 그 중 일부는 살아 있는 미생물로 키워 타지역 돼지맛과 현격하게 차별화한다는 전략이다. 


돼지는 요리도 다양하다. 서울에만도 신림동 순대타운, 장충동 족발, 응암동 감자탕집... 최상급 재료에는 최고요리사가 붙어야 하는데, 그 비법 전수가 돼지특화거리로서의 성공 관건이다. 윤회장은, 시에서 그 교육비를 투자하여 기술 이전을 제대로 받아서 운영한다면 안심시장이 전국적인 돼지명소로 부각할 수 있다고 청사진을 펼치며 사자후를 토한다. 하긴, 부산에는 양돈장 없는데도 부산돼지국밥이다. 그거 먹으러 부산까지 가는 먹방천국이다. 아참, 안심 부위는 소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돼지에게도 안심살이 있다. 기자가 뭘 제대로 몰라서 뱉은 말이었다. 찾아보면 어떤 프로젝트에도 활로는 트이게 마련. 



간판없는 3천냥 추억의 집과 튀밥트럭


시장 안에는 식당이 꽤 있다. 보리밥집은 외손녀가 하얀 비닐에다가 만화를 그려놓았다. 논산여상 하은이 작품이다. 안심시장 뒤켠 벽화는 군입대 가족의 애환을 리얼하게 표현해 놓았다. 연무는 이곳저곳 벽화만으로도 부자인 동네이다. 안심장이 열리는 날, 안심시장 초입은 짜장면 냄새가 솔솔 풍겨져 나온다. 간판 없는 짜장면집. 주인장은 2일 일하고 3일 쉬는 한량이다. 하루는 안심장날, 다음 하루는 여산장날 출동한다. 한그릇에 2500원 받았는데, 요즘은 3천원이다. 기자가 들른 시간은 4시 반쯤였는데, 오늘은 재료가 떨어져서 ‘장사 쫑’이란다. 많이 팔 때는 50만원 매출이고 줄을 서는데, 손님들이 그릇 치워줄 정도로 북새통인데, 요즘은 30만원선이지만 그래도 꾸준한 맛이 있는 모양이다. 원래 상호는 ‘추억의 집’ 간판이 없다보니 똥짜장집이라는 짖굳은 별칭도 등장했는데, 안심시장 명물 중의 명물이다. 



안심 시장의 명물이 또 하나 있다. 튀밥장사이다. 박회장도 별명이 여럿이다. 시골집에 여러 가축을 기르니까 손자들은 ‘멍멍이 할아버지’ 시장에 나오면 오꼬시다. 예전에 한과상도 하면서 튀밥도 튀긴 경력자인데, 이젠 전업하여 기름집을 하는 케이스다. 장날이 되면 튀밥 트럭이 둘 나타난다. 어떤 때는 세 대다. 고객 하나 입이 잔뜩 나와 있다. 은행을 까먹기 쉽도록 기계 속에 넣어서 돌려달라는 게 주문사항이다. 어찌된 일인지 통속에 두어 번 들어갔다 나왔는데도 쫙 벌어진 게 뜨문뜨문이다. 튀밥아저씨는 조금 벌어진 틈으로 해서 까먹으면 된다고 하지만, 고객은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까먹기 편하게끔 다시 한번 더 돌리라고 하자 튀밥아저씨 “내가 안 해준다는 게 아니라....” 궁시렁궁시렁하면서 기계랑 함께 열받기 시작한다. 


튀밥집은 가열 차지만 장날 거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처럼 썰렁하다. 보라농원에서 처음으로 묘목 가지고 나왔지만 매기는 별로란다. 꽃화분 아줌마는 그래도 단골이 꽤 있다. 12,000원 부르자 동네할머니 고객은 2천원 빼달라고... 결국 중간인 1000원 빼주는 걸로 해서 성사된 꽃처럼 아름다운 거래 장면이다. 


짐을 일찍 싸는 건어물 트럭은, 바람이 너무 불어서란다. 생선 좌판으로 가서 맛깔스런 은색갈치 4마리 얼마냐고 물어보니 단돈 만원. 군산쪽에서 왔는데, “참 싸네요. 여기 수산물 가게와 마찰 같은 것은 없어요?” 조심스레 물어보니 돌아오는 즉답 “장날이잖아요!” 



글쓰기까지 이어지는 시장 상부상조


생선배를 가르면서 입에 물려 있는 것은 건너편 트럭에서 파는 핫도그다. 식당에서도 깍두기가 하두 걸쭉해 “식자재는 어디에서 사와요?” 물어보니 같은 시장 야채가게 것을 팔아준다고.....동덕상회, 만물상회, 똘맹이네 야채가게 주인들은 하루 종일 뭔가를 손질이다. 하얀 백색의 알타리무 묶음이 예술품처럼 전시되어 있다. “살림하는 여자들 손 하나 안 가게끔 해놔야 사가지, 그렇잖으면...” 어쨌거나 손님이 들러서 눈길만 줘도, 게다가 조금이라도 사가주면 감지덕지인 분위기다. 


나들가게란 별칭을 가진 수퍼 역시 마찬가지다. 20여 년 전 서울 중견기업에서 잘 나가던 강상요 씨가 여차저차해서 이곳 시장에서 수퍼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때는 하루 매출이 200만원 정도였다. 그때에 비하여 지금은 매출이 급감해 버린 상황. 당시 연무대에서 수퍼는 여기 하나뿐이었는데 지금은 대형마트만 해도 네 개다. 농협하나로마트, 그린농축가마트, 다이소연무점, 하모니마트.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강사장에게 자꾸 말을 시키니 한참 만에 두부공장 얘기를 꺼낸다. 쭉 듣고 나니 그 이야기가 하나의 전설이어서 처갓집 이야기를 부부가 합동으로 써달라고 주문하였다. 


강사장을 소개해준 황기학 사무국장에게도 추가 부탁하였다. 시장바닥에서 고교동창을 조우하였다. 아버지를 모시러 내려왔다가 3년 시묘살이처럼 하고 이젠 다시 올라가려는 찰나에 맞닥뜨린 것이다. 연무의 효자 이야기를 써볼 수 있겠다고 흔쾌한 OK이다. 짜장면 먹는 것은 다음 장날을 기약했지만 신문 게재는 기다릴 수 없어서 맛있는 블로그로 마실 간다. (연무 안심시장!!! 어린시절 장날 엄마 따라 짜장면도 먹고 시장구경을 하던~~  blog.naver.com/nscity/60167025303) 연무읍장은 안심리 조감도를 그려주었다. 


[글·사진] 이지녕

위 글은  『놀뫼신문』  2020-03-17일자 7~8면에 브리지로 실렸습니다. 




[연무안심시장이야기-1]

 

연무안심시장을 전국특구로 


연무읍 2월말 현재 인구는 1만 4천명(13,988)이고, 그 중에  안심리 인구는 1/3 정도로 읍내 밀집지역입니다. 안심리는 10개리나 되며 시장은 안심1~2리에 걸쳐 있습니다. 안심리 전체 인구수는 4863명인데, 그 중 안심2리(이장 송영식)는 482명이고 안심1리(이장 조상욱)는 452명입니다. 


안심시장 안에는 ‘다메’라는 간판이 나오는데 다메는 왕릉아랫동네입니다. 참고로 1994년 12월 25일 논산문화원에서 발행한 ‘論山地域의 地名由來’에 ‘대메’라는 동네가 나옵니다.(= 대메[마을] : 안심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대나무가 많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대메 또는 죽산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조사해 본 결과 ‘대메’라는 동네는 없고, ‘대밑(대나무밑)’이라는 동네가 죽본리에 있답니다.


어쨌거나 안심시장이 지역상권으로 자리매김해서는 한계가 있고, 전국을 상대로 하는 특화시장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중지를 모으고 있습니다.


- 박동주 연무면장 

 

 


[연무안심시장이야기-2]


'연무합동' 두부공장 장신선 사장을 아시나요?


나의 장모님 장신선 여사는 6.25전쟁 이후 황해도에서 같이 월남한 이기준 선생과 결혼 후 연무지역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연무대 지역명은 본래 구자곡 등 몇 개 지역을 합쳐 연무대지역명이 생겼다고 합니다. 여기 까치마을에 시장이 형성되면서 연무 안심 시장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이곳 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잡곡장사를 시작하며 겸하여 두부 공장(연무두부공장)을 경영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이 지역에는 마산과 신촌에 두부 공장이 따로 있었는 데 이에 대한 지분 인수를 통해 ‘연무 합동 두부’를 창업하십니다. 연무지역에서 두부공장을 단일화하여 사세를 확장하고 시장에서는 쌀과 잡곡을 함께 운영하게 되지요. 작은마을에 생긴 초창기의 소규모 시장을 번영시키는 데 나름 공헌을 하신 창립공신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후 잡곡 장사는 수퍼마켓(현재 한빛 마트)으로 정비하여 창업해서 시장 안에 생활 편의 시설로서의 영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일찍이 경영 수완을 발휘하여 연무지역의 군납과 대형 공장에 쌀과 두부를 납품하여 사세를 키웠습니다. 시장에서는 비교적 큰 대형 마트로 키워 연무 지역에서는 가장 큰 수퍼마켓이었습니다. 당시 시장에서 이웃들의 어려움은 앞장서 해결하고 ‘번 만큼 베푼다’는 생각으로 이웃들과 사소한 것이라도 나누며 잘 소통하며 지냈습니다. 잔치가 있으면 음식을 충분히 만들어 이웃뿐 아니라 오가는 길손들까지 챙겼습니다. 그 밖에 동지 같은 때에도 시장 사람과 고객들과 함께 팥죽을 나누며 애환을 같이 하셨습니다. 


한때 계모임이 있어 계활동하던 중 계주가 계원들의 돈을 떼먹고 도망친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때도 나서서 계원들의 곗돈을 정리하여 당신의 재산으로 보전해 줌으로써 그 사고를 수습하였고, 그래서 지역 주민들의 신망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지역민들이 자투리 땅에서의 잡곡 농사가 주요한 생계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잡곡을 취급하게 되면 매년 시세가 달라 들쭉날쭉했는데, 어떤 해는 생산자나 촌민들이 이익을 보는 해도 있었죠. 그러나 어떤 때는 가격이 폭락하는데, 그때도 적정 가격으로 매입하여 손실을 보전해 주었답니다. 작은 양의 잡곡도 반드시 제 값을 쳐서 산정해 주곤 하였어요. 이웃이나 주민들과의 거래에서 계산이 정확하고 신용이 확실하다는 평판을 받으며 살아가셨습니다. 

  남편 이기준 선생은 파킨슨씨 병을 앓아 거동이 불편하여 사업에 힘을 보탤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남편을 위하여 민간요법에 의한 약재나 몸 보신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여 챙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죠. 수년간 남편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여러 사업 수완을 발휘하였고 그 와중에 다섯 남매를 키워 분가 독립을 시킨 여장부이십니다. 이 외에도 같이 월남했던 친인척들을 보살펴 주고 이들을 모두 분가 독립시켜 자립하게 하였으니, 개인사를 떠나서 이 지역 사회에서 알아줄 만한 여장부라 추억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겁니다.

  불행히도 암으로 환갑 갓 넘어 돌아가셨습니다. 고생만 하시고 이룩한 것에 대한 보답을 받을 틈도 없이 너무 일찍 타계하셨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 후 자식은 각자 나름의 생업에 종사하게 되었는데, 재래식 두부는 대기업의 두부 산업 진출로 두부공장이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고인의 유업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것이 남은 자식들의 안타까움입니다.


- 강상요 한빛수퍼 주인




[연무안심시장이야기-3]

황금수산식자재 황기학 사장 이야기 



나는 1957년 충북 단양군 매포읍 안동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손잡고 매포성당에 다니며, 단양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전에 누님 댁에서 과자 기술을 배우며 객지생활을 시작하였다. 3년 후에는 자동차 운전을 배운다고 트럭 보조로 3년을 따라다니며, 19세가(1976년) 되던 해에 유성 신진자동차학원에서 보통1종 면허를 취득하였다. 2년 후에 대형1종 면허와 각종 면허를 취득, 그 덕에 운전을 24년 동안 원없이 하였다. 부천에서 시내버스, 관광버스, 논산에서 사료차량(벌크) 등등.. 그러나 몇 번의 사고와 만성피로에 잦은 졸음운전으로 운전을 그만두기로 마음 먹었다. 2000년 생선 생자도 모르면서 생선 장사를 시작을 하였다. 집안과 아내의 거센 반대에도 2001년 7월 연무시장 가게에서 거주하며 5천만 원을 투자하며 월세 40만원에 생선가게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전 수산시장처럼 좌판에 얼음을 깔고 시작했다. 지역이 작은 관계로 생선의 신선함을 오래 유지하지 못해 냉장고 시설로 생선관리를 바꾸었다. 좌판을 없애고 생선 냉장고를 설치하며, 생선을 깨끗이 손질하여 매운탕은 해물을 서비스로 넣어주었다. 생선맛의 비결은 신선함과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염 처리에 있음을 알았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손님에게 항의도 받고 염처리를 너무 많이 하여 교환도 해주는 가운데 염처리 비법을 터득하였다. 지금은 손끝에서(4시간 8시간 12시간 24시간 48시간) 구분, 소비자 입맛에 맞게 하여 가정에 돌아가 바로 조리할 수 있게끔 판매를 하여, 단골손님이 많이 늘어나며 장사가 잘 되었다. 그런데 주변에 마트와 대형점(홈마트), 5일장이 들어서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어, 학교 납품으로 눈을 돌렸다. 5년여 동안 벌은 돈과 5천만 원을 다시 대형냉장고, 냉동차량, 점포정리 등 재투자 하게 되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며, 대전오정동 시장과 군산해망동 새벽시장을 다니며, 좋은 생선으로 골라온다. 가격이 좀 비싸도 신선한 생선으로 판매하며, 재고는 과감히 버리게 되었다. 소비자에게 “황금수산은 생선이 싱싱하고 맛있어”라는 말을 들으며, 학교에서나 식당에서도 대기업의 비싼 HACCP 제품보다 맛있다는 점이 인정되어 꾸준히 납품을 하고 있다.    


지금은 시대가 어려워 힘든 일을 기피하는 사회구조이기에 소비자에게는 편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살아남는다. 싸고 맛없는 생선은 소비자에게 음식쓰레기 처분했다는 인상을 줄 것이다. 비싸도 맛있게 먹었다는 인상을 소비자에게 심어주는 것이, 길게 장사할 수 있는 길임을 깨달았다. 많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거나 성공한 적은 별로 없지만, 아내와 둘이 10여 년 동안 어려움도 있었고, 밤잠 못자고 고생도 하고 밥해주고 빨래도 하고 온갖 집안 살림을 다하는데 아내에게 장사시켜 미안하고 고맙기도 하다. 어쨌든 남매 공부시키고 크지는 않지만 대전 원앙마을아파트에 내 집 마련하고, 30여 평의 현 영업점포도 구입했고 아들, 딸 다 출가했으니 내 나름대로 성공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도 20여년 동안 장사를 하면서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내 일도 미뤄둔 채 이제껏 고생했는데... 상인들과 싸우기도 달래기도 해보지만 ‘욕 안 먹으면 본전’인 게 상인회 일이다.  가끔 아내가 “우리에게 도움도 안 되고 욕만 먹는 일을 왜하냐?”고 따질 때 서운함도 있기는 하다. 그래도 시장상인회가 존재하고 있음에 있음에 상인 회원분이 감사하고 시장에서 납품을 할 수 있는 훈련소와 공단이 있음에 감사하고……. 입대날 마산사거리까지 밀려 있는 차량을 보며 입소대 앞에서 입대장병과 가족이 뒤엉켜 바글바글 건널목 건너는 모습을 보며 연무지역에 큰 희망을 갖는다. 도시재생 교육을 받으며 노후된 시장과 변화되기 싫어하고 내것만 내세우려는 나 자신과 70여 명의 상인들이 이제는 변화를 선택해야 할 때가 된 거 같다. 도전의 물결이고, 새로운 시작이다.


- 황기학 상인회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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