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색출판기념회] 홍미경 수필집 『뭐, 어때』
작은 출판기념회가 12월 16일, 논산시내 작은 공간에서 열렸다. 제일아파트와 제일성결교회 사이에 있는 독립서점 ‘어쩌다 산책’에 삼삼오오 8명이 모였다.
‘위드 코로나를 거두고 다시 거리두기로 선회한다’는 정부의 발표와 그 재개일을 코앞에 둔 시점이다. 그날 ‘2021충남태권도인의 밤 행사 전격 취소’라는 문자도 날아와서 이 모임은 어찌 되나 싶었는데, D-데이 턱걸이로 속행이 되었다.
주인공은, 시아북(詩芽Book)에서 첫 수필집 『뭐, 어때』를 펴낸 홍미경 작가다. 축하객은, 아직까지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논산 ‘글쓰기모임’ 회원들이다. 책방 주인장이 마련한 소담한 수국꽃다발에 이어 하얀 케이크가 커팅되었다. 촛불 하나 끈 다음 배분된 케이크 옆에는, 나무책꽂이들로 데코된 목조책방과 환상의 총아인 ‘주인장 박선희표 커피’가 배달되었다.
저자 사인이 끝난 책을 앞에 두고서 소소한 대화들이 이어졌다. 글쓰기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었다. 한 달에 최소 한 편씩은 내자, 나는 글을 잘 못 쓰니까 우리 자작글뿐 아니라 다른 사람 글 품평회도 섞어서 하자... 글쓰기 월례모임 겸하는 자리였다. 홍미경 작가는 30년 전통의 놀뫼독서회를 비롯, 독서나 글쓰기 모임 몇에 적을 두거나 리더다. 책을 워낙 좋아해서 본인 집 앞에 작은 책방 하나가 생기자마자 그 뉴스를 제보해 주었다. 그 문화가산책 기사는 놀뫼신문 2021-03-24일자에 <논산의 동네책방 “어쩌다 산책” - 문학·예술·철학·인문학·그림책 전문서점>이란 제목으로 실렸다. (인터넷판 https://nmn.ff.or.kr/17/?idx=6121860&bmode=view 참조).
기자는, 홍미경 작가가 놀뫼신문의 시민기자로도 활동하기에, 이날 모임 스케치도 할 겸 기념회 장면장면들을 담았다. 요즘 대세가 스몰웨딩이라는데, 출판기념회를 이리도 소박하게, 저자와의 대화를 소수로 격의없이 할 수 있음에, 이날의 풍경이 새로운 이정표로 돋보였다. 모임이 끝나갈 무렵 기자는 비로소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질문 1]은 책 제목을 『뭐, 어때』로 진 이유였다.
“사람들이 내 책을 보고서 ‘뭐 이런 책도 있대?’라고 할 경우, 그때 답이 <뭐, 어때>예요^ ” 프롤로그를 보니, 거기에 엇비슷한 답이 적혀 있다. “책을 통해서 낯선 사람을 만나고 글로 그 사람의 은밀한 세계를 엿보다 보면 ‘모두에게 얼마쯤은 괜찮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뉴스에 등장하거나 인플루언서가 되지는 못해도 좀 괜찮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같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뭐, 어때.”
[질문 2]는 책 표지에 대한 설명이나 이야기!
이 질문 겸 부탁에 대한 답은 “책에 들어 있어요”로 돌아왔다. 홍준표 집안 아니랄까봐 남양홍씨 홍미경 식 답변이다. 지난번 대선 때 손석희 앵커의 송곳 질문에 홍준표 후보는 “그거, 인터넷에 다 있다니까요”라면서 받아치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더 이상의 질문은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보아, 귀가 후 책을 열었다. “대체 어디에다 적어놓았다는 거지?” 투덜거릴 필요가 없었다. 장절이 바뀔 때마다 크고 작은 그림들이 한 페이지씩 전면을 시원시원 차지하고 있었고, 표지 사진 그림은 책 조금 넘기다 보니 눈에 확 들어온다.
이 소녀는 “무엇이 되지 않아도”라는 제목 앞에서 강렬하다. “사진으로 만난 소녀의 눈빛에서 나는 같은 마음을 읽었다. 직접 꺾은 듯한 노란 꽃을 왼손 마디가 굽을 정도로 힘을 들여 쥐고 있는 어린 소녀의 눈빛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당당함 그 자체였다. 소녀의 사진을 오래도록 핸드폰 갤러리에 보관하고 있다가 그림으로 옮기기 시작하면서 ‘누구나 그 자체로 존중받는 세상’을 향한 바람도 같이 담았다.”
이 설명을 실감나게 이해하려면, 성장소설 같은 그녀의 이야기가 곁들여져야 한다. 소녀시절 꼬마소녀는 ‘빨강 머리 앤’을 동경한 나머지 ‘홍 앤’으로 변하기를 빌고 빌었단다. 그러다가, 그런 소원은 비현실적이기에 대체인물찾기로 전환한다. 작가의 이상형으로는 순정만화가 강경옥, 작가 신일숙에 이어 이문세, 헤세, 왕조현, 류시화, 김완선, 카프카.... 등등으로 그때그때 갈린다.
그 동안 기자가, 홍 작가에 대하여 헷갈릴 만했다. 시민기자로 해서 알게는 됐지만 만날 때마다, 소식 들을 때마다 천의 얼굴이었다. 분신술 홍길순이었다. 민화, 독서모임, 꽃차강사, 그림책 동호회, 논산문인협회 사무국장, ‘논산문화’ 편집위원, 한글대학 강사일만 하는 줄 알았더니 계간지 ‘한마음글마실’ 편집장.... 깐깐해 보이는 마스크에 종종다리는 늘 분주해 보였다. ‘하는 일이 너무 많지 않느냐’는 지적에 ‘불러주는데야 어떻게 노우라고 해요?’라는 반문이 동어반복이다. 내심 드는 느낌은 ‘팔방미인도 좋지만 한우물이면 어떨까’였다. 이렇게 선입했던 기자의 한우물타령을, 홍작가는 이번 책에서 여지없이 깨뜨렸다.
“그래서 몰두할 수 있는 무엇이 필요했고 그림을 시작했다. 궁금한 것도 많아졌다. 남들은 어떻게 그리는지, 어떤 색을 쓰는지. 그 덕에 한 구멍으로 내려갔지만, 수많은 곁가지가 만들어졌다. 민화, 수채화, 데생 …. 책으로, 동영상으로 여러 선생님에게도 배웠다.....”
한 구멍을 통해 가다보니, 결국 그게 갈래를 치더라는 얘기인가보다. 홍 작가는 강의파보다 학구파쪽이다. 말하기보다 주로 남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다 듣고서, 최대한 배우고서, 그것을 그때그때 자기 걸로 소화하고, 체화한다. 받아들이는 통로는 여럿이지만 출구는 하나인 모양새다. 학제(inter-disciplinary)의 통섭, 뭐 그런 쪽 같다.
작가가 닮고자 했던 인물 중 하나 김완선! 이 대목에서 기자는 깜놀했다. 기자 역시 김완선의 광팬이어서다. 단, 기자는 그녀가 노래 잘하는 가수라서 열광하는 게 아니다. 정반대다. 자기 노래를 가지고도 저렇게 못 올라가는데, 그럼에도 줄기차게 부른다. ‘정 안 되면 춤으로 커버하지 뭐’ 하는 당당함에 매료돼서다.
홍 작가가 소설을 쓴다니까 응당 소설 한 권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수필집이다. 수필이라고 해서 일반 수필은 아니고, 소설적 요소가 가미된 자유글이다. 필자 소개할 때 글·사진, 글·그림 식으로, 아직은 글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다.
[질문 3]으로 글, 그림 우선순위를 물었다.
혼용이지만 그림쪽에 무게 중심이 실리는 성싶다. 이 책에는 그림, 사진, 수필, 소설, 기사가 퓨전 융합이다. 처녀작 단골메뉴인 추천사나 작가사진 하나 없다. 자유혼의 구가(謳歌)다. “프로가 아니어도, 좀 어설퍼도 어드런가? 세상에 완벽(完璧)이란 없다. 어차피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다. 그래서 자유롭다.” 기자가 나름 정리해본 이런 류의 홍작가 자유선언은, 우리의 일상어 “좀 모자란다 해도, 어때”에 다름아닌 경쾌한 수다다. 아래, 이날 참석한 박용신 논산문인협회 부회장의 내밀하고 알찬 수다로 이어간다.
- 이진영 기자
[책수다]
책의 온전한 소유는 그 책을 읽은 후에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누군가 말했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분주한 때에 책을 받았다. 그녀에게 여유가 생기면 읽겠다고 양해는 구했지만,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볼 때마다 마음은 편치 않았다. 어느 날 새벽 그녀의 책은 친구처럼 다가왔다.
그녀는 평소에 호기심이 많고 그 호기심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추진력이 있다. 호기심과 추진력에서 오는 다양한 경험을 과장스럽지 않게 담담하게 전달한다. 그녀의 강단 있는 모습 내면에 자리한 여린 감성이 삶에 대한 사색으로 이끈다. 생각의 깊이는 짙은 감정이 배어 있는 어휘가 아니라 정갈하고 담백한 언어로 풀어낸다.
소설가는 첫 번째 작품은 대부분 자서전적인 소설이다. 수필은 거의 경험에 근거한 사실이기 때문에 작가의 면면을 엿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첫 번째 수필집에서 자신을 일차원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간다. 간혹 글에서 발견되는 그녀의 더 사적인 일화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낸다.
글 하나하나가 매력적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미안해」이다. 그녀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갈비탕에 들어 있는 만두를 먹지 않는 그녀를 봤을 때, 만두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녀는 만두를 좋아한다, 엄마가 해준 만두를.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해준 만두는 시중의 맛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나 보다. 기숙사에서 전화 온 아들에게 내려오면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말한 후에 미안해지는 마음과 여전히 요술을 부리듯 음식을 차려내는 친정엄마의 에피소드는 따뜻하고 마지막은 애교 있게 마무리한다. 나는 엄마의 손맛과 달라도 같은 종류의 음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손길이 가곤 한다. 엄마의 손맛을 느끼고 고수할 수 있는 그 여유가 부러웠다.
만약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처음 표지를 봤다면 눈길이 갔고 펼쳐보았을 거다. 초록 식물에 둘러싸인 소녀와 눈이 마주친다. 그녀는 15년 넘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런 재능의 일부가 이번 책에 담겨 있다. 그녀가 최근에 그린 작품 〈Alice〉가 표지화이다. 책 사이사이에 들어간 삽화는 글에 대한 이정표 역할을 한다. 언젠가는 그녀의 작품이 중심이 된 책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책 제목이 『뭐, 어때』라고 들었을 때, 글이 어떤 분위기일까, “뭐, 어때!” 아니면 “뭐, 어때~”? 책을 다 읽은 후에 든 느낌은 “뭐, 어때……”였다. ‘뭐, 어때. 어디든 떠나면 여행이지.’ ‘뭐, 어때. 무엇이 되지 않아도.’ ‘뭐, 어때. 달팽이답게 달려.’ 때로는 휴식이 되고,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용기가 되는 말이었다.
- 박용신/ 논산문인협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