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과 기쁨의 성지
1. 신앙의 자유를 찾아.... 요당리 공동체
요당리 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 이후 크고 작은 박해를 격으며 살아남은 신자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모여와 형성된 교우촌입니다. 목숨을 담보할 수 없었던 긴박한 상황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던 신앙 선조들의 땅이었습니다. 요당리의 요당은 여뀌라는 소박한 풀이 피는 연못이라는 뜻입니다. 화려하지 않은 평범하고 흔한 풀이지만 모여서 한 군락을 이루어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꽃피우는 모습이 신앙 공동체였던 요당리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요당리 성지가 있는 양간지역은 경기남부와 충청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당시에는 바닷물이 유입되어 뱃길이 열리고 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초기교회 선교활동의 중심지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요당리 성지가 품고있는 가장 소중한 신앙의 유산은 장주기 요셉성인입니다. 신앙과 헌신의 본보기였던 장주기요셉 성인은 이곳 양간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성인품에 오르신 분입니다. 신유박해 2년후인 1803년생으로 1827년에 고향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신학교 건립을 위해 자신이 봉헌한 제천의 베론신학교에서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직접 한글을 가르치고 선교사들의 집주인 역할을 하셨던 분이시라고 합니다.
요당리 성지에 들어서면 너른 잔디위에 정갈한 붉은벽돌의 성당과 하얀색의 성모자상이 함께 한눈에 들어와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같은 그림을 그려냅니다. 성모자상이 있는 앞쪽은 기도의 광장으로 개인 기도와 묵상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기도의 광장 뒤 성역화 광장에서는 순교자들의 묘역을 참배하며 성인들의 신앙을 기리고 순교자의 삶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이 묘역에는 장주기 요셉성인과 함께 124위 시복 추진자였던 장토마스와 타지인으로서 이곳에서 신앙을 증거하다가 순교한 성 정화경 안드레아, 박해를 피해 이곳에 피신해 와서 순교한 성 엥베르범 라우렌시오 주교 등 8명의 순교자의 가묘와 대형십자가가 세워져 그들의 숭고한 얼을 기리고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을 갈구하며 박해를 견디며 살아내었던 신앙 공동체의 피난처 요당리 성지, 그들의 삶을 통해 지금의 내 삶의 자리는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는지 묵상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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