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국가 선포식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

by 겨울밤

지난달 23일 정부에서 '독서국가 선포식'을 했다. <독서국가 추진 위원회>가 발표한 '생애주기별 독서교육 로드맵'에 따르면, 유치원에서는 "책과 아이를 잇는 국가적 시작점"으로 독서 유치원을, 초등학교에서는 "독서 중점 초등학교"를 확대하는 방안으로 "독서 골든타임"을 잡겠다는 취지다. 중학교에서는 "자유학기제를 독서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고등학교에서는 "독서 이력을 고교 학점제와 연계"하면서 이제 독서를 선택이 아닌 "국가 전략"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에게 내재된 어휘의 폭이 현저히 좁다는 사실에 당황하곤 한다. 더군다나 능동적으로 책을 읽기보다는 오디오로 책을 듣거나 영상으로 휘발성 콘텐츠 대하듯 접하다 보니 진득하니 글 읽기를 못 견디는 경우도 태반이다. 그나마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학부모들이 수행평가와 2028 교육개정에 대비해 일찍이 독서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이를 준비하게 되는 데 반해, 읽기가 체화되지 않은 고등학생들은 이렇다 할 대비도 하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라 긴 호흡으로 책 읽기를 더더욱 어려워한다.


능동적 사고력이 부재한 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고 학습 체계를 조정한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학교는 결국 사회로 나가기 위한 기본적 토대를 마련하는 곳인데, 정답이 정해진 선다형 학습과 사회라는 야생의 간극은 너무도 크다. 그러다 보니 학습의 장이 존재하는 본래의 목적은 이미 흐릿해진 지 오래다. 더욱이 인공지능이 생활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면서 단순한 생각조차 챗지피티 같은 기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일상화되고 있다. 생각이 빈곤한 사회는 야만의 시대로 퇴화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루 대부분을 꽤 능동적으로 산다. 일을 할 때도, 점심메뉴를 고를 때도, OTT를 볼 때도 다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행한다. 그래서 교육계에서는 상식적인 수준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온전한 개인으로 자립해서 스스로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12년간의 교육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공표한 것이다. 문해력은 어휘력과 사고력에서 오고 이 모든 기반은 결국 독서에 있다.



"지상의 모든 운동은 근본적으로 인간 정신의 두 가지 발명에 그 근거를 둔다. (...) 모든 형태의 바퀴가 ... 공간의 중력을 극복한 것처럼, 글자 또한 단지 묘사하는 역할에서 진즉에 더 나아가 한 장의 종이에서 책이 되었고, 지상에 사는 개별 영혼들의 경험과 체험의 비극적 유한함을 극복토록 했다. 책을 통해서라면 누구도 자신의 시야에 갇히지 않고 현재와 과거의 모든 사건, 전 인류의 사상과 감정에 모두 관여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우리 정신세계의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지성적 활동은 책에 기초하고 있으며, 물질의 상부에 있는 문화라고 불리는 그 무엇은 책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슈테판 츠바이크,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



암기 중심의 선행학습을 아무리 해봤자 사고력이 없으면 어느 순간 분명히 벽을 마주하게 된다. 생각하는 힘이 없으니 문제가 꼬아서 출제되기라도 하면 추론하거나 연상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령 영어도 어근을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 영어에 대한 이해력이 높다. 단어 뜻 하나하나 명료하게 알지 못해도 추론해서 문맥을 파악하거나 내용을 이해해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처럼.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생각까지 대신해 주는 시대에 생각하는 힘을 잃은 인간은 결국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문해력은 스스로 길을 찾는 능력이자 생존을 위한 무기이기도 하다. 앞서 슈테판 츠바이크가 말했듯, 책은 유한한 개인의 경험을 무한한 세계로 확장하는 유일한 열쇠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해상도와 맥락을 파악하는 통찰력은 결국 책에서 나온다. 독서 교육 강화가 우리 사회 전체의 지적 근력을 키우는 거대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