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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주 May 21. 2024

여의도에 페이커가 있다

주변 사람들 1. 꾸준함이 만들어 내는 힘



오후 8시, 모두가 떠난 사무실을 인쇄기 소리만 요란하다. 홀로 남아 찍찍, 형광펜을 그으며 글씨를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안달이다. 야근이라고 하기는 사장과 직원에게 미안하다. 나는 공부 중이다. 물론 '갓생'을 위한 자발적인 움직임은 아니다. '내가 또 혼나면 사람이 아니다'에서 나오는 처절함이라면 처절함이지.


몇달 전 혼났다. 그것도 아주 크게. 눈물이 찔끔 나오게.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 기억 속 장면은 이렇다. 복습하겠다며 낸 질문에 얼토당토않게 한 대답. 이어지는 정적. 하하, 멋쩍게 웃는 나에게 내리 꽂히는 말.


"내가 시간이 많아 보여?"


혼나면 머리가 하얗게 변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눈앞이 노래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진짜 다시는 경험하기 싫다! 나에게 그야말로 '혼쭐'을 경험시켜 준 사람이 바로 이 글의 주인공, 쌍욕 하나 없이 눈물을 뽑아낸 사람. '이도경 보좌관'이다.




내가 이도경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23년 롤드컵시즌이다. 평소 게임을 좋아하던, 특히 '롤(리그오브레전드)'을 좋아하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팀이 결승에 진출함과 동시에 롤드컵 티켓팅을 시도했으나 장렬히 실패했다. 실패는 실패로 끝내야 하는데 그 당시 나는 눈이 절반 돌아있었다. 어떻게든 롤드컵 티켓을 구하고 싶었고, 티켓이 없다면 롤드컵과 가까운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이 심정을 토로하고 싶었다. '내 새끼들이 결승에 진출했어요!'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런 나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대한민국 모든 정보와 관련 기관 사람들이 모이는 이 여의도에 '게임' 관련자를 아는 사람은 가뭄에 콩이었기 때문이다. 취미가 게임이라 하면 '그 시간에 생산적인걸 하라'는 말이 나오는 곳이다. 고고한 보좌진들이 게임에 관심 없는 건 새삼스러울 정도로 당연했다.


갈증을 채우기 위해 당시 의원실 보좌진은 물론, 다른 의원실 보좌진들, 특히 게임을 담당하는 문체위 소속 보좌진들에게 '롤드컵' 이야기를 꺼냈다. 돌아오는 건 멋쩍은 웃음뿐이었다. 낙심하는 나에게 사람들은 꼭 한마디를 했다. "이도경 보좌관을 찾아가야 할 것 같은데?". “게임 쪽은 이보가 꽉 잡고있지”.


만약 그런 사람이 한 사람뿐이었으면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말미에 그 이름을 말했다. 이도경, 이도경, 이도경….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누구나 그 이름을 말하지? 국회 인싸인가? 처음은 약간 질투가 났다. '게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데, 고작 보좌진 따위가 게임 뒤에 이름을 붙이는가!' 후려치기도 조금 곁들였다.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다. 가능하면 롤드컵 이야기도 하면 좋고. 이 좁디좁은 국회에서 보좌관 한 명 만나는 건 껌이지.


라고 생각한 나의 뺨을 강하게 치고 싶었다. 이도경을 찾아 헤맨 지 이주가 지나도 도통 연결이 되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롤드컵이 끝나도 한참 전에 끝난 시기다. '아니 보좌관이라며? 국회에서 오래 있었을 거 아냐? 도대체 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야?' 그쯤 진지하게 '이도경'이라는 사람이 실체가 있는지 의심되기 시작했다. 도시전설 마냥 모두가 아는데 모두가 몰랐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난 그냥, 롤드컵 이야기나 하고 싶었던 건데….


좌절에 좌절을 맛보고, 안개는 그냥 안개로 남겨놔야겠다 포기할 무렵이었다. 오랜만에 간 보좌진 모임에서 나는 술 한잔에 롤드컵 결승을 직관하지 못한 한탄을 섞었다. 그때 누군가 익숙하게 말을 꺼냈다. '게임은 이도경…'. 그러니까요, 그 이도경은 실존해요? 어이없게도 내 질문에 그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뭐야 진짜 없는 거 아냐?' 할 무렵, 내 옆자리 처음 보는 비서관이 말했다.


"나 이도경 보좌관 아는데"


"어떻게 알아!?" 나뿐만이 아니라 그 테이블에 앉은 모든 사람이 경악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됐더라,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았던 것 같다. 젤다(=이도경)를 찾아 떠난 링크의 우여곡절을 절절히 늘어놓았다. 실존하는 게 놀랍다고도 말했다. 파랑새는 가까이 있다고 절규하자 그녀는 조금 닥치라는 뜻을 완곡히 말했다.


"다음에 같이 점심 한 번 먹자"


그렇게 만나게 된 이도경이라는 사람은 실로 게임 고인물이자(후술은 생략한다) 위에 언급한대로 유일무이의 국회 게임정책통이었다. 고인물에게 게임정책을 배울 수 있는 기회! 덕업일치의 시작!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얼마 없는 '혼쭐났다'의 시작이자 현재 야근의 전말이다.


몇 주에 걸친 스터디에서 사람들이 왜 그를 모르는지도 단숨에 알았다. 퇴근 후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칼럼을 쓰고, 전화번호를 모으기보다는 피규어를 모으는 듯하다. 6년을 알고 지냈다는 동지와 아직도 존댓말을 쓰고, 말을 고른다. '안녕하세요!' 인사만으로 외향적인 성격 같다며 감탄하는 내향인이었다.


약간의 무례에도 침착하디 침착하기에 도저히 그가 화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게 나의 패인이라면 패인이었겠지. 언젠가 지금까지 배워온 것들을 복습하는 시간을 가지자며 그가 던진 질문들을 난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쉽게 생각한 것 같다. 바쁜 시기기도 했고 이런 걸로 혼나지는 않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민망한 건 있으니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지 싶었다. 그때 그가 말한 것이다. 자기가 한가해 보이냐고.


너도 게임에 진심이라 배우기로 한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잊으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차라리 다 틀리면 처음부터 가르치면 되는데, 이것저것 다 뒤섞여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더 실망스럽다고도 했다. 논리로 반박할 말이 없어 변명하지도 못했다. 눈물이 싸악 올라오는데 뭘 잘했다고 울까. 결국 난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할 뿐이었다.


그때 나를 채운 건 부끄러움이었다. 그 말이 다 맞아서 화났던 것도 있다. 입만 열면 맞는 말을 하니 더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그때 생각했다. 확실히 난 '게임'이라는 한 영역을 쉽게 보고 있었다.


어차피 국회에서 게임은 비인기 항목이다. 그러기에 정책의 블루오션이고, 달려들기만 하면 쉽게 '전문가' 소리는 들을 수도 있겠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고, 그 영역에서 바꾸고 싶은 것도 있으니 그 자체로 얼싸 좋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의 선호나 희망에는 선행되어야 하는 게 있었다. 꾸준함과 성실함, 진심이겠지. 허울뿐인 성취욕으로 앉아있는 나에게 꾸준히 진심이었던 사람은 실망스러운 것이다. 꾸준히 진심이었던 사람 앞에서 허울뿐인 성취욕은 한없이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고.




국회에서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름을 널리 알린 보좌진들은 참 많다. '오래 있었다', '성격 급하다', ' 일 잘한다' 등등. 각양각색의 유명세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서술어'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어떠하다, 무언가를 잘(못)한다처럼 말이다. 서술적 표현은 필히 교집합이 생긴다. 오래 있는 것도, 성격도, 성과도 다른 누군가와 그 특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결국 보좌진의 유명세란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접촉했냐의 증거가 아닐까. 그의 특성을 느끼고 증언해 줄 사람이 많아야 가능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


나 또한 나에 대한 좋은 말이 나오길 원한다. 예를 들어 눈치가 있다거나, 글은 빨리 쓴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텁텁한 맛이 있다. 오직 나로서, 나만의 유일한 특성은 가질 수 없는 걸까. 지금까지 나의 대답은 '가질 수 없다'였다. 누군가는 나를 서술해야 하고, 나는 그 표현에 걸맞기 위해 나를 증명해야 했다. 그렇게 지내왔다.


그런 관념을 깬 것이 바로 이도경 보좌관이다. 형용사가 아니라 명사로 기억되는 사람, '게임'이라고 하면 '이도경'이 연상되는 과정을 수없이 봤다. 국회에서 유일하거나 몇 없을지라도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희망적이다. 우리도 충분히 될 수 있다는 말이니까.


그 자리에 가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시간을 지났을지, 얼마나 많은 좌절이 있었을지, 그 모든 걸 넘는 열정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2020년부터 한 달에 한두 번씩 연재한 게임 칼럼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처음 연재할 적 '비서관'이었던 호칭은 어느덧 '보좌관'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에도 콘텐츠분쟁조정위에 게임이용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글을 연재했다. 여의도 부동의 게임 정책 강자가 되어서도 '한 자리'가 아닌 현장에서 현안을 짚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개원하는 제22대 국회에서도 할 일이 많다고 말하는 그 꾸준함이 신기할 뿐이다.


앞서 나는 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23년 롤드컵 결승에 올라간 내가 좋아하는 팀은 T1이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 페이커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게임을 잘해서는 아니다. 13년도 데뷔한 그가 이스포츠계 최장수 프로게이머로 현역에 있는 모습이 좋다. 그게 다른 후배들에게 늘 좋은 선례이자 동지가 되는 모습이 좋다. 그 꾸준함 덕분일까,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은 '롤=페이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의도에도 페이커가 있다. 자신의 이력을 위해서라도 국토, 산업 같은 경쟁력 있는 곳에 눈을 돌릴 법도 한데 비인기 상임위라는 문체위에서, 그중에서도 극극극 비인기 항목인 게임을 파는 보좌진. 피큐어가 있는 사무실에 앉아 십여 년의 꾸준함으로 자신의 단어를 만들어낸 사람이 있다. 그 꾸준함이 후배들에게는 선례가, 게이머들에게는 동지가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가 유명(?)한 게 참 보기 좋다. 이 일은 결국 인맥과 처세가 전부인가 싶을 때, 꾸준함이 만들어낸 확고한 아이덴티티에서 희망을 본다. 나도 꾸준해야겠다. 언젠가 내 앞에 달릴 귀한 명사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자 상상은 이제 그만. 이제 복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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