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아, 난 은퇴하면 농사를 지을 거야"

by 길동

부장님의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기자로서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분이 선택한 마지막 꿈이 흙을 가꾸는 삶이라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뭉클했다.


부장님은 여자 기자가 드물던 시절, 남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역경을 이겨낸 선구자였다.

최초로 여성 9시 뉴스팀 부장이 됐고, 기자협회 역사상 최초의 여성 회장도 맡으셨다.

회사 내에서 최초로 육아휴직 제도를 개선해, 후배 여성 기자들이 아이를 키우면서도 당당히 기자의 길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길을 닦으신 분이기도 했다.


부조리한 술자리 문화와도 맞서 싸웠다.

후배들이 회사 일 때문에 술자리에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선배가 식당 콘크리트 땅바닥에 머리를 박으라고 했던 시절,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박을 때 부장님은 단호히 말했다.

"저는 안 하겠습니다."


순간 술병이 날아들고 폭언이 쏟아졌지만,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사과를 받아냈고, 그날 이후 술자리의 모멸적인 '머리 박기' 문화는 사라졌다.

한 사람의 용기가 조직 전체를 바꿔낸 것이다.


아버지가 MBC 기자였던 부장님은 어릴 적부터 기자의 꿈 하나만으로 살아왔다.

KBS 입사 시험에도 1등으로 들어와, 누구보다 치열하게, 또 누구보다 뜨겁게 언론인의 길을 걸어왔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의 권리를 넓히고, 조직의 부당한 문화를 깨뜨리며, 언론사의 한 시대를 바꿔온 인물이다.


그런 전설 같은 부장님이 은퇴를 앞두고 농사를 짓겠다고 하셨다.

흙을 만지며 계절을 따라 숨 쉬고 싶다는 그 말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이 선택한 마지막 문장처럼 들렸다.

나 역시 언젠가 은퇴를 맞이한다면, 부장님처럼 단단하게 살아낸 뒤 흙과 바람 속에서 쉼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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