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의 생존법

by 길동

우울할 때마다 글을 썼다. 기분이 안 좋을 때 글이 잘 써지냐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평소 꾹꾹 눌러뒀던 감정이 글을 통해 터져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우울할 때마다 글을 쓰는 버릇이 생긴 것뿐이다.

먼 훗날, 이 고통의 순간을 다시 본다면, 그땐 이 순간이 성장의 시간이었음을 회상하길 소망하며.

그동안의 난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무엇인지가 더 중요했다.
정규직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괜찮은 학교에 나왔는지, 돈은 얼마나 모았는지,
어디에 사는지, 어디 출신인지, 외모가 아름다운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매력이 있는지,
남들에게 인정받고 살 수 있는지,
누구에게 존경받을 만한 사람인지,
'가치' 있는 사람인지.

떳떳한 '모습'을 갖기 위해 떳떳하지 못한 것들로 나를 채우고 있었다.
그저 보이는 모습이 그렇다면 그걸로 만족했다. 그리고 집착했다.
'기자'란 타이틀에, 외모에, 돈에, 인기에, 이미지에.
얻으면 얻을수록 보여지는 것 자체에 더 집착했다.
그게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

2019년, 나는 이런 글을 봤다.
"착한 척을 계속하다 보면 착하게 산 것이 된다. 예의 바른 척을 계속하다 보면 예의 바른 사람이 된다. 이번 한 번만 용기 내자 하다 보면 아이언맨이 되고, 딱 한 줄만 더 읽자 하면 어느새 다 읽는다. 삶의 태도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습관과 훈련의 힘을 믿는다. 오늘도 산을 열심히 오른다. 당신의 산은 허무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당신은 이미 꽤 올라왔다."

이 글을 보고, 나는 착한 척을 시작했다.
그랬더니 어느새 예의 바른 사람이 됐고, 원하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됐다.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되기보단, 그런 '척'을 하는 사람이 쉽기에 실행은 바로바로 했다.

누가 내게 행복하다고 묻는다면, 그렇게 보여지고 싶기 때문에, 맞다고 하겠다.
내가 내게 행복하다고 묻는다면, 행복이 뭔지 모르겠다 하겠다.

나의 기분은 어떤지, 내 상태는 괜찮은지, 마음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들여다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저 좋은 '척'만 했을 뿐.
쓰디쓴 실패의 경험은 그저 나를 성장시킬 동력원으로만 여겼다.
어쩌면 슬퍼할 시간도 아파할 여유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나를 옥죄냐 묻는다면, 좋아지고 싶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고 싶고, 멋있어 보이고 싶다.
캄캄한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있다면, 따라가는 벌레들처럼
막막한 미래 속에 보이는 건 오로지 잘 살고 싶은 마음 하나뿐이다.
그게 정녕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모른 채 그저 벌레들처럼,
타들어가는 빛 속에 나의 온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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