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배신, 질문의 시대 - 7

AI가 바꿀 대한민국의 성공 방정식

by Gildong

7. OMR 카드와 AI: 효율적인 머리와 관료적인 손


2026학년도 수능 AI 테스트 결과를 지켜보던 개발자들과 관찰자들은 경악했다. 국어 만점, 영어 만점, 수학 1등급. AI의 지능은 이미 인간 수험생의 최상위권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성적표 뒤에는 실소를 자아내는 거대한 구멍이 하나 있었다.


AI는 문제를 다 풀어놓고도, 정작 'OMR 카드' 마킹에서 낙제했다.


테스트 과정에서 Gemini 3.0은 수험 번호는 기가 막히게 적었지만, 선택 과목 답안을 마킹할 때 엉뚱한 곳에 색칠을 하거나, 공통 과목의 답을 랜덤하게 찍는 기이한 오류를 범했다. 복잡한 미적분 문제를 1초 만에 풀어내는 지능이, 고작 검은색 사인펜으로 동그라미를 채우는 단순 작업에서 무너진 것이다.


이 해프닝을 단순한 기술적 오류로 넘겨선 안 된다. 여기에는 미래 사회의 구조를 예견하는 섬뜩한 메타포(Metaphor)가 숨어 있다.


AI는 '본질(Essence)'을 추구하고, 인간은 '형식(Form)'에 집착한다.


AI에게 중요한 것은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본질이다. 반면 OMR 카드는 그 정답을 인간의 기계(채점기)가 읽을 수 있도록 규격화한 '형식'이다. AI 입장에서 이 비효율적이고 낡은 형식은 이해하기 힘든, 혹은 굳이 완벽하게 수행할 필요를 못 느끼는 영역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우리 사회, 특히 대한민국은 여전히 '본질보다 형식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점이다.


공직 사회나 대기업을 보라. 보고서의 내용은(본질) 훌륭해도, 줄 간격이나 자간이 맞지 않거나(형식), 결재 도장의 위치가 틀리면 반려당하기 일쑤다. 내용을 고민하는 시간보다, 그 내용을 '예쁘게 포장하고 규격에 맞추는 시간'이 더 많이 드는 주객전도의 현장.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대로라면 미래의 풍경은 아주 기묘한 형태가 될지도 모른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의사결정의 핵심을 찌르는 보고서를 쓰는 것은 AI(머리)가 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 위대한 결과물을 상사가 보기 좋게 편집하고, 규격에 맞춰 OMR 카드를 칠하고, 결재판에 끼워 넣는 단순 행정직(손발)으로 전락할 수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AI가 인간의 단순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생각)'을 대체하고, 인간은 AI가 처리하지 못하는(혹은 귀찮아하는) 지루한 '형식적 절차'를 뒤치다꺼리하는 존재로 남을 위기에 처했다.


'효율적인 머리'를 가진 AI 상사와, '관료적인 손'을 가진 인간 인턴. 이것이 OMR 마킹 실패가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적 농담이다.


우리는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네모 칸 안에 튀어나가지 않게 색칠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정답을 찾는 능력은 이미 AI에게 넘어갔다. 그런데도 우리가 계속해서 OMR 카드 같은 '낡은 형식'을 고수한다면, 우리는 결국 AI의 손발이 되어 평생 답안지나 칠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형식을 버려야 한다. AI가 마킹을 못 한다고 비웃을 때가 아니다. 마킹 따위는 필요 없는, 본질만이 오고 가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다면, 그 시스템 안에 갇히는 것은 결국 우리 인간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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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선을 개인에서 '국가와 자본'으로 돌립니다. AI 전쟁은 소프트웨어 싸움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구글의 '가격 파괴' 뒤에는 무시무시한 '하드웨어(TPU) 독점'이 있었습니다. 스타트업들의 '치킨 게임'이 끝나가는 지금, 진짜 권력은 어디에 있는지 추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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