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의 밥이 된 인간들 - 6

30년 전 오토모 가츠히로가 예언한 3가지 멸망

by Gildong

제6화.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의 비겁한 민낯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말의 진짜 의미


<최취 병기>에서 가장 웃기면서도 무서운 장면은, 다나카 한 명을 막겠다고 일본 정부와 자위대가 벌이는 촌극이다.


최첨단 미사일과 전차를 동원하지만, 그들은 다나카를 막지 못한다. 무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결정권자가 없기 때문이다.


상황실의 높으신 분들은 모니터 뒤에 숨어 서로 눈치만 본다.


"발포 허가는 났나?" "미국 측 입장은?" "책임은 누가 지지?"


회의가 길어지는 사이, 다나카(독가스)는 유유히 도쿄로 진입한다. 도시는 멸망 직전인데, 관료들은 끝까지 '절차'와 '체면'을 따진다.


이 모습, 낯설지 않다. 대형 참사가 터지거나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가 목격하는 뉴스 속 장면과 판박이다.


'폭탄 돌리기'라는 이름의 직무 유기


현대 사회의 시스템은 거대하고 정교하다. 하지만 그 정교함 뒤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 있다.


바로 '조직적 무책임(Organized Irresponsibility)'이다.


업무를 잘게 쪼개놓은 탓에, 누구도 전체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실무자는 "규정대로 보고했습니다."

중간 관리자는 "위에서 지시가 없었습니다."

최고 경영자는 "실무진의 보고가 늦었습니다."


모두가 알리바이가 있다. 법적으로는 무죄일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전원이 공범이다.


<최취 병기>에서 일본이 망한 이유는 다나카라는 괴물 때문이 아니다. 괴물을 보고도 "내 담당 아님"이라며 문을 닫아건 시스템의 비겁함 때문이다.


"규정상 어쩔 수 없습니다" = "나는 생각하기 싫습니다"


우리가 관공서나 고객센터, 혹은 타 부서와 협업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규정상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말은 현대판 면죄부다. 이 문장을 뱉는 순간, 상대방은 이성적인 대화를 포기하고 '매뉴얼'이라는 절대 방패 뒤로 숨는다.


물론 규정은 필요하다. 하지만 규정이 사람을 살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지, 아니면 책임지기 싫은 관료들의 방어 기제로 존재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규정집을 뒤적거리는 리더는 최악이다. 타이타닉이 침몰하는데 "구명정 탑승 규정"을 검토하느라 승객을 수장시키는 꼴이다.


규정은 평시를 위한 것이지, 전시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무능한 시스템은 위기 상황에서도 규정을 신주단지처럼 모신다.


조직과 시스템은 당신을 지켜주지 않는다


다나카의 결말을 보라. 그는 끝까지 회사의 지시를 따랐지만, 결국 시스템에 의해 토사구팽 당한다. (스포일러: 미군에 의해 '처리'되거나 격리된다.)


착각하지 마라. 회사는, 국가는, 시스템은 당신을 가족처럼 여기지 않는다.


시스템의 제1목표는 '시스템 자체의 존속'이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말 잘 듣고 힘없는 '부품' 하나를 희생양 삼아 꼬리를 자르는 것이 그들의 생존 방식이다.


당신이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요?"라고 억울해 해봤자 소용없다. 시스템은 차갑게 말할 것이다.


"누가 그렇게 융통성 없이 하랬나? 자네가 알아서 잘 대처했어야지."


무능한 시스템 밑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자살 행위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시스템이 던져주는 매뉴얼을 맹신하다가 다나카처럼 팽 당할 것인가, 아니면 시스템의 허점을 꿰뚫어 보고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플레이어'가 될 것인가.


다음 화에서는 이 답답한 관료주의 지옥에서, 부품이 아닌 '대체 불가능한 해결사'로 살아남는 실전 노하우를 공개한다.


[Next Episode] 제7화. '부품'이 아닌 '해결사'로 생존하는 법 : 맥락 없는 성실함은 독이다. 시스템의 빈틈을 메우고, 위기 상황에서 '규정'을 넘어 '해결'을 제시하는 3가지 업무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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