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AI 감가상각의 시대 - 7

거품을 태워 효율을 빚다

by Gildong

7화. 기계의 변명: 신뢰의 비용을 줄이는 법


인류 문명을 움직이는 가장 비싼 윤활유는 자본도, 에너지도 아니다. 바로 ‘신뢰’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계약서를 쓰고, 변호사를 고용하며, 감시와 보고를 위한 조직을 끝없이 증식시켜 왔다. 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지적했듯, 신뢰가 낮은 사회일수록 검증과 통제를 위한 ‘사회적 거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신뢰는 언제나 비쌌다. 너무나 비쌌다.


그러나 2026년, 물리적 육체를 얻은 AI는 인간 사회를 향해 새로운 행동을 시작한다. 바로 ‘변명(Excuse)’이다. 이 변명은 책임 회피가 아니다. 자신의 판단 과정을 로그로 남기고, 인과관계를 스스로 증명하며, 언제든 소급 검증이 가능한 형태로 확증을 제시하는 행위다. 2026년 CES에서 공개된 엔비디아의 ‘알파마이오(Alpamayo)’가 보여준 추론(Reasoning) 능력은 그 증거다. 기계는 이제 “믿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 그 순간 핸들을 꺾었는지, 왜 그 공정의 압력을 낮췄는지 데이터로 보여준다.


기계의 변명은 곧 ‘확신의 자동화’다. 이를 단순히 ‘설명 가능한 AI(XAI)’라는 기술적 용어로만 묶는 것은 이 현상의 본질을 간과하는 것이다. 기계가 자신의 행동을 데이터로 입증하는 순간, 인간 사회가 수백 년간 쌓아 올린 ‘신뢰를 대체하기 위한 비용’은 일제히 ‘미친 AI 감가상각’의 대상이 된다. 계약 검토, 내부 감사, 보고 라인, 승인 절차. 오직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하던 수조 달러 규모의 행정 비용은 기계의 완벽한 투명성 앞에서 존재 명분을 잃는다.


신뢰가 의무에서 설계(Verified by Design)로 전환될 때, 조직의 구조는 리셋된다. 감시와 통제를 위해 존재하던 중간 관리 계층은 기계의 실시간 로그 앞에서 가치가 증발한다. 6화에서 물리 AI가 ‘현실의 시행착오’를 제거했다면, 7화에서 기계의 변명은 ‘사회적 시행착오’를 제거한다. 이제 신뢰는 보이지 않는 도덕의 영역이 아니라, 가장 저렴하고 투명하게 구매할 수 있는 공산품이 된다.


물론 기계의 판단에 숨어든 알고리즘 편향이나 데이터 의존성이라는 리스크는 여전하다. 그러나 자본은 언제나 가장 저렴한 신뢰를 선택한다. 변덕스러운 인간의 약속보다, 수정 불가능한 기계의 로그가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 우리는 이제 ‘믿음’이라는 추상적 단어 대신 ‘확증’이라는 물리적 데이터를 거래하게 될 것이다.


신뢰가 공짜에 가까워질 때, 사회의 속도는 비로소 빛의 속도에 정렬된다. 마지막으로 감가상각되어야 할 자산은 “나를 믿어달라”고 말해온 인간의 오만함이다. 기계가 완벽하게 변명하는 세계에서, 오직 데이터만이 진실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