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의 UHI와 로마의 지혜로 본 노동 이후의 삶
자본이 지불하는 가장 영리한 유지비
세계적인 명품 거리인 파리의 방돔 광장이나 서울의 청담동 거리가 완벽한 정적에 휩싸인 풍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매장 안에는 인간보다 더 우아하게 옷을 매만지는 휴머노이드 직원이 가득하고, 쇼윈도에는 인공지능이 설계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방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거리를 걷는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생산의 효율은 극점에 도달해 물건은 넘쳐나는데, 정작 그 물건을 살 ‘지갑’이 사라져버린 세계. 이것은 디스토피아 영화의 상상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가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공포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본이 이기적이며, 이윤을 위해 노동을 착취한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2026년의 거대 기업들은 이제 스스로 수익을 시민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갑자기 인류애에 눈을 뜬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자본주의라는 엔진이 ‘연료(소비자)’ 부족으로 멈춰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장 합리적인 유지비를 지불하기로 결심했을 뿐입니다.
원자폭탄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 인류는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파괴력은 ‘상호 확증 파괴(MAD)’라는 기묘한 평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서로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전쟁은 가장 비효율적인 선택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가져온 노동의 실종 역시 같은 구조를 따릅니다. 기업이 모든 일자리를 기계로 대체해 비용을 제로에 가깝게 줄이는 순간, 기업의 매출 또한 제로로 수렴합니다. 월급을 받지 못하는 인간은 소비자가 될 수 없고, 소비자가 없는 기업은 존재할 이유를 상실합니다.
결국 기업들이 제시하는 보편적 고소득(UHI)은 자선이 아니라 ‘시장 유지비(Market Maintenance Fee)’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리콘 노예’가 창출한 초과 이익 중 일부를 시스템에 재주입함으로써, 시장이라는 게임판 자체가 붕괴되는 것을 막으려 합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최후의 진화입니다. 인류가 수 세기 동안 축적해온 방대한 데이터와 지식이라는 자산 위에 AI가 세워졌음을 인정하고, 그 지분을 시민들에게 배당금 형태로 환원하는 ‘거대 주식회사 지구’의 출현인 셈입니다.
로마의 황제들이 시민에게 곡물을 배급한 것은 자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굶주린 시민이 폭동을 일으키는 것보다 배급이 훨씬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테크 자이언트들 역시 같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분노한 대중이 시스템을 거부하는 사회적 비용을 감당하느니, 차라리 부를 흘려보내 소비를 진작하고 평화를 구매하는 편이 이득이라는 판단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국가가 주는 보조금을 받는 수혜자인가, 아니면 인류 문명의 자산에서 나오는 배당금을 받는 주주인가?” 생각의 전환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받는 풍요는 비겁한 타협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수 세기 동안 축적해온 지식과 노동의 총합에 대한 정당한 지분입니다. 기업은 이 지분을 인정함으로써만 자신들의 존재를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생산의 가치보다 ‘존재’와 ‘유지’의 가치가 더 비싸진 시대. 당신은 당신의 지분을 어떻게 사용할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