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는 달 부터 가기로 했다 - 8

스페이스X와 xAI의 합병이 재편하는 우주 비즈니스

by Gildong

8. 블랙박스 앞에서 마신 서러운 보드카


모스크바의 찬 바람이 코끝을 스치던 2000년대 초반, 한국의 기술진들도 머스크가 러시아에서 느꼈던 그 비릿한 조롱과 소외감을 똑같이 맛보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우주는 낭만이기 전에 ‘서러움’이었고, 과학이기 전에 ‘정치’였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기술을 빌려 나로호를 쏘아 올리던 시절, 우리 연구원들은 정작 발사체의 핵심인 1단 엔진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러시아 기술자들이 ‘블랙박스’라고 명명한 그 철갑의 장벽 앞에서, 우리는 기술 추격자가 감내해야 할 지독한 소외감을 보드카 한 잔으로 달래야만 했습니다.


남의 엔진으로 쏘아 올린 절반의 성공

사람들은 나로호의 발사 성공에 환호했지만, 정작 현장의 엔지니어들은 온전히 웃지 못했습니다. 남의 엔진을 빌려 쓴 발사는 결국 절반의 성공일 뿐이었으니까요. 돈을 지불하고도 핵심 기술에는 손끝 하나 댈 수 없는 현실은, 우리가 우주라는 무대에서 여전히 '관객'에 머물러 있음을 증명하는 서글픈 기록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우리는 그 서러움을 ‘독자 개발’이라는 무식할 정도로 정공법적인 복수로 되갚아주기로 했습니다. 2023년, 마침내 우리만의 엔진을 단 누리호가 전남 고흥의 하늘을 뚫고 올라갔을 때, 그것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습니다. 인류가 만든 가장 정밀한 기계 장치인 ‘75톤급 액체 엔진’의 기술 주권을 우리가 확보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독립은 곧 자존이며, 선장의 권리다

이 10년의 세월은 단순히 기계를 조립하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우주 강국들이 철저히 숨겨온 ‘연소 불안정’이라는 물리적 난제를 수백 번의 실패 끝에 우리 손으로 풀어낸 인고의 기록입니다. 세계에서 7번째로 자력 발사 능력을 갖춘 국가라는 타이틀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75톤급 엔진 4개를 하나로 묶어 거대한 힘을 내는 ‘클러스터링’ 기술까지 성공시키며, 우리는 비로소 선발 주자들이 앉아 있는 우주라는 테이블에 우리만의 의자를 놓고 앉을 자격을 얻었습니다.


기술의 세계에서 독립은 곧 자존입니다. 이제 우리는 러시아의 눈치를 보며 블랙박스 겉면만 만지던 추격자가 아닙니다. 우리만의 로켓으로 우리만의 위성을 원하는 궤도에 올릴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 이것은 우주 대항해 시대에 우리가 ‘승객’이 아닌 ‘선장’의 권리를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머스크가 러시아에서 무시당한 뒤 엑셀 시트를 켰듯, 우리도 서러움을 딛고 우리만의 설계도를 그렸습니다.


기쁨은 짧고, 다음 좌표는 멀다

하지만 누리호의 성공에만 취해 있을 여유는 없습니다. 우리가 엔진 하나를 완성하는 동안, 세상은 이미 ‘재사용’과 ‘궤도 인프라’라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7대 강국이라는 타이틀은 종착역이 아니라, 이제 막 본선에 진출했다는 입장권일 뿐입니다.


10년 전 러시아에서 마셨던 보드카가 타 들어가는 목마름이었다면, 누리호 성공 이후 마신 술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성취의 맛이었을 겁니다. 우리는 이제 압니다. 기술은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이제 이 소중한 긍지를 동력 삼아, 기존 질서의 빈틈을 파고들 다음 10년의 설계를 시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