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는 달 부터 가기로 했다 - 11

스페이스X와 xAI의 합병이 재편하는 우주 비즈니스

by Gildong

11. 조약이 무너진 자리, 서비스 약관이 법이 될 때


1967년에 체결된 ‘외기권 조약(Outer Space Treaty)’은 오늘날의 우주를 설명하기엔 너무 낡고 초라한 골동품입니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이 서로 핵무기를 우주에 배치하지 말자며 만든 이 평화로운 약속은 ‘억만장자’나 ‘민간 기업’이라는 변수를 계산에 넣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깃발이 아닌 기업의 로켓이 매일같이 대기권을 뚫고 나가는 지금, 인류의 우주 법전은 사실상 폐허나 다름없습니다.


법의 공백을 채우는 ‘동의함’ 버튼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법의 부재는 혼란이 아니라 ‘기회’를 의미합니다. 국제법이 지상의 회의실에서 문구 하나를 두고 수년째 공방을 벌이는 동안, 머스크는 이미 자신만의 법전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 법전의 이름은 다름 아닌 ‘서비스 이용 약관’입니다.


우리는 이미 스타링크의 약관에서 그 징조를 보았습니다. 화성에서의 서비스 이용을 논할 때, 머스크는 “화성은 지구의 법이 미치지 않는 자치 구역”임을 명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허풍이 아닙니다. 궤도 위의 위성 통신을 이용하고, 달 기지의 인프라에 접속하려는 모든 국가와 기업은 결국 플랫폼 운영자가 제시하는 약관에 ‘동의’를 눌러야 합니다. 헌법보다 무서운 ‘약관의 통치’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표준이 곧 입법인 시대

이제 우주에서의 입법 권력은 투표함이 아니라 ‘도킹 포트’의 규격이나 ‘데이터 전송 프로토콜’ 같은 기술 표준에서 나옵니다. 원리는 단순합니다. 머스크가 설계한 도킹 시스템이 표준이 되는 순간, 그 규격에 맞지 않는 로켓은 어느 정거장에도 발을 붙일 수 없습니다. 그가 만든 통신 프로토콜이 궤도 위의 공용어가 된다면, 그 언어를 배우지 못한 위성은 영원히 우주를 떠도는 미아가 될 뿐입니다.


이것은 총칼 없는 ‘기술적 입법’입니다. 국제기구가 우주 자원 배분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속도보다, 스타십이 달 표면에 물자를 실어 나르며 현장의 관습을 만들어가는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먼저 인프라를 깔고 그 운영체제(OS)를 장악한 자가 제시하는 규칙은, 훗날 어떤 국제 조약보다 강력한 실질적 구속력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조약의 시대에서 ‘프로토콜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시민인가, 혹은 유저인가

우리는 그동안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는 ‘시민’으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우주 인프라가 일상이 되는 미래에, 우리의 권리는 투표권이 아니라 플랫폼의 접속 권한에서 정의될지도 모릅니다. 내가 우주에서 캐낸 자원의 소유권을 주장하려면 국가의 법원이 아니라, 플랫폼의 중재 위원회를 찾아가야 할 세상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 조약이 무너진 폐허 위에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 인류의 미래 질서는 보편적 인권과 조약에 근거할 것입니까, 아니면 누군가 설계한 시스템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약관에 근거할 것입니까? 우리가 약관의 맨 밑바닥으로 스크롤을 내려 무심코 누르는 ‘동의’ 버튼 하나가, 어쩌면 우주에서의 우리 주권을 통째로 넘기는 가장 조용한 형태의 ‘헌법 개정’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