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스타인과 ‘그들’은 무엇을 숨기고 싶었을까
350만 건.
2026년 2월의 시작과 함께 쏟아진 제프리 엡스타인의 비밀 파일. 그 분량만으로도 우리는 숨이 막힌다. 누군가는 이제야 정의의 문이 열렸다고 환호하지만, 과연 그럴까. 넘치는 정보는 때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보다 위험하다. 이 방대한 기록이 남기는 건 해답이 아니라 피로다. 피로는 진실을 ‘지겨운 가십’으로 흐릿하게 뭉개버린다.
권력이 범죄를 일상으로 세탁하는 법
그동안 우리는 엡스타인을 자극적인 스캔들의 주인공으로만 여겨왔다. 카리브해의 비밀 섬, 초호화 전용기, 거물들의 파티. 눈을 끄는 소재는 넘쳐났지만 그 이면의 구조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 기록이 드러낸 건 한 개인의 타락이 아니다. 권력이 자신의 추악함을 ‘평범한 일상’으로 세탁하는 방식이다. 세밀하게 덧칠해져서 더 기만적인 알리바이다.
문건 속에서 누군가는 범죄자와의 만남을 거래의 일부로 정리하고, 또 누군가는 섬에서의 시간을 그저 휴식이라 말한다. 가족과 함께였으니 건전했다는 구차한 변명까지 등장한다. 혁신, 자선, 가족이라는 단어 뒤로 미성년자 착취라는 범죄는 슬그머니 몸을 숨긴다. 그렇게 범죄는 ‘어쩌다 일어난 일상’이 된다. 죄책감조차 걸러진 세계. 우리는 이것을 정말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넘길 수 있을까.
예정된 결말, 그리고 망각
이 연극의 결말은 새롭지 않다. 누군가 책임지는 장면은 연출되겠지만, 뿌리는 남는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막이 내릴 가능성이 높다. 당장의 생존에 매달린 우리에게 350만 건의 진실은 지나치게 무겁다. 그래서 우리는 망각을 선택한다.
권력자들이 노리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우리가 잊는 순간, 그들의 알리바이는 완성된다. 진실이 힘을 잃는 자리에서 권력은 다시 점잖은 얼굴을 되찾는다.
죽음이 지켜낸 침묵
맨해튼의 초호화 저택을 누비던 주인은 결국 번호로 불리는 죄수가 되어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그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고발을 이어가던 이들, 통로가 되었던 조력자들 역시 차례로 침묵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죽음으로 지켜낸 것은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함께 파티를 즐겼던 이들의 비밀이었습니다. 죽음이 침묵의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가 되는 세상에서, 비밀은 사람보다 오래 산다. 비밀은 권력의 성벽이 되고, 성벽은 더 단단해진다.
그럼에도 틈은 있다. 우리가 그 비밀의 관객이 되기를 거부하는 순간이다. 생존이 팍팍하다는 이유로 눈을 감지 않고, 그들의 다음 움직임을 끝까지 지켜보는 태도. 그것은 냉소가 아니라 책임이다.
350만 건은 해답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괴물들과 얽혀 살아왔는지를 묻는 질문지다. 당신은 바쁜 하루 속으로 다시 몸을 던질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의심하는 목격자로 남을 것인가.
미래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잊지 않겠다는 작은 결심에서 나뉘는 법이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남겨진 질문]
글을 쓰는 내내 차마 지우지 못한 물음 하나가 입안을 맴돌았습니다. “대한민국이라고 다를까."
”멀리 떨어진 섬의 기록을 읽는 내내, 우리가 발 딛고 선 이곳의 공기가 낯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비정한 연극의 무대는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애써 누르고 비워둔 그 여백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시선과 만나 비로소 완성되기를 기다립니다.
타인의 비극을 관람하는 관객이 아닌, 우리 주변의 ‘알리바이’를 끝까지 의심하는 목격자로 남는 것. 그것이 먼 곳의 이야기를 꺼내 든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