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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불편해서
by 이승주 Apr 12. 2018

시월드의 언어폭력

화병 며느라기들의 탈출을 꿈꾸며


세상에 의외로 막장 시댁은 많다. 무일푼으로 장가를 왔는데, 아들이 바람을 피우고 이혼을 요구당하자 “우리가 준 중고 전자레인지를 택배로 부치라”라고 한 시댁. 부잣집이라 집도 사주고 다달이 용돈도 주지만 “그 돈은 사실 우리 돈”이라며 매일 초인종을 누르고 며느리 계좌를 추적한다는 시댁 등. 이들은 누가 들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대놓고 나쁜 시댁’이다.


하지만 누가 봐도 폭력적인 것보다 무서운 건 은근한 폭력이다. 특히 언어를 통해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시댁의 언어폭력은 무섭다. “시어머니 비위 맞추다 화병이 났어요”라며 커뮤니티에 호소하는 글에 공감 댓글 3000개가 달리는 것은 요즘 시대 ‘며느라기’들의 현실이다. 나 또한 “너는 키가 작은데, 왜 디스크가 생기니?”라는 말을 듣고 사는 며느라기의 한 사람으로서, 그 울화를 풀어내기 위해 적어본다. 시월드의 언어폭력에 도대체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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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다 알게 되었다. 정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걸. 우리에겐 살짝 자신을 놓아버리는 기술이 필요하다. 김치 싸대기를 불사하는 악독한 시어머니를 뒷목 잡게 하는 건, 똑똑하고 사려 깊은 여성 캐릭터가 아니다. 백치미를 발산하며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약간 ‘돌 아이’ 같은 캐릭터다. 타인의 마음이 상할까 봐, 혹시 예의에 어긋날까 봐 당신이 ‘할 말 못 하고’ 끙끙댈 때, 이들은 그냥 질러 버린다. 그러니 화병이 날 틈이 없는 것이다. 온몸의 점잖은 기운을 떨쳐내자. “나는 푼수다, 나는 푼수다”의 최면을 강력히 반복한다. 강력한 페르소나의 이입만으로도 뭔가 자유로워지는 기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도돌이표를 활용하자. 갑자기 훅 들어온 말에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다. 시댁에 김장김치를 보내 놓고 안부전화를 드렸는데 갑자기 이런 말이 돌아온다. “그래, 먹을 만은 하더라” 욱할 필요가 없다. 침묵할 필요도 없다. 가급적 상냥하게 생글거리며 이야기한다. “아, 먹을 만은 하셨다고요? 어머 고마워라!” 이는 상대가 의도적으로 한 비꼼을 그대로 주지시키면서, 감사하다는 의례적 인사로 맥을 끊는 방식이다. 뒤 이어 나올 문장들을 미연에 차단해라. 동시에 당신의 마음 상함도 끊긴다.


질문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는 의도적 비꼼을 넘어 대놓고 나를 무안 주려 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시어른께 선글라스를 선물로 드렸다. 칭찬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이런 말이 나올 때가 있다. 어머, 이거 누구 쓰라고 가져온 거야? 취향이 아주 촌스럽네 그러면 이렇게 답한다. “네, 어머님 쓰시라고 가져온 거예요. 취향이 아주 촌스러울까요?” 물음에 대한 답은 제대로 하고, 말 끝은 물음으로 처리한다.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본인이 한 말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여기서도 “어, 그래” 내지 “아주 촌스러워”식의 답이 나온다면 고이 접어라. 그것은 ‘선물’을 하는 한 인간의 기본적인 성의를 모르는 것이다. 아주 고이, 마음속에서 그 관계를 접어라.


어떤 일에는 침묵을 추천한다. 주로 나를 넘어 내 가족에 대한 인신공격이 이런 유형에 대한 대처다. “사돈어른이 자꾸 애를 보려 하시는 거 보니, 돈이 필요하신가 봐” 등의 밑도 끝도 없는 모욕 말이다. 요즘 같은 육아전쟁 시대에 육아는 도와주지 않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 시댁이 종종 있다고 한다. 친정에 드리는 보상 자체도 상당히 아까워하면서. 그럴 땐 조용히 눈을 깜박이고 시부모님을 응시해야 한다. 2,3초 정도. 마치 “이거, 큰 실수 하신 거예요!”라는 걸 상기시키듯. 그리고 무시해라. 정말 그 어떤 말도 아깝다.


아주 큰 수긍도 필요하다. 이것은 나와 가족을 섞어서 시댁이 어떤 결정을 대신 내려줄 때 자주 발생한다. 가령 아이들을 돌보는 전업주부에게 “신랑이 힘들게 벌어다 주는 돈, 밥충이처럼 쓰지 말고 나가서 돈 벌어라”라거나. 백수를 전전하는 시동생과 함께 한 자리에서 “얘한테, 한 달에 용돈 100만 원은 꼬박꼬박 줘라”식의 발언들이 그것이다. 이렇게 답 안 나오는 말들은 아주 크게 수긍해 주자. 내가 기분이 상한 어떤 부분만 뚝 떼어서, 맥락 없이 수긍해버린다. “아 맞아 맞아. 나 밥충이지”, “맞아 맞아. 용돈 100만 원 필요하지. 나에게도” 아니면 그냥 웃기만 해도 좋다. “하하하하” 그러면서 그 말을 바람에 정말 날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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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작가 정문정 님도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는 법>에서 비슷한 얘기를 하셨다. 그러고 보니, 시월드와 개인이란 관계를 떠나 이것은 ‘무례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란 생각도 든다. 나도 아들이 있으니, 언젠간 시어머니가 될 것이다. 상식적이던 사람도 ‘시’ 자만 들어가면 비상식적 사람이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던데, 나부터라도 그 ‘시’ 자의 비상식을 깨기 위한 실천을 시작해 보고 싶다. 그리고 이런 개인들의 집단 실천이 미래엔 좀 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그렇게 변하는 맛이라도 있어야, 세상은 좀 더 살 만한 가치가 있을 테니까.


화병 며느리가 많은 현실, 하지만 미래에는 멋진 시어머니가 많은, 어떤 유토피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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