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로 풀어보는 재미있는 고사성어
낭중지추(囊中之錐), ‘뛰어난 인재는 누구나 알아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주머니 낭(囊), 가운데 중(中), 어조사 지(之), 송곳 추(錐)
‘낭중(囊中)’은 ‘주머니 속’이요, ‘지(之)’는 지금껏 계속 보아왔듯 ‘가다’가 아닌 어조사로서 ‘~의’로 해석되며 추(錐)는 ‘송곳’이다. 말 그대로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이다. 가만히 있어도 기어이 주머니를 뚫고 비어져 나오는 뾰족한 송곳처럼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남의 눈에 띔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성어는 그 유명한 중국 고대 역사가인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에서 조(趙)나라의 공자(公子)인 평원군(平原君)과 관련된 고사에서 유래했다. 노파심에 조금 더 설명해보자면, 평원군(平原君)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살았던 조나라의 공자로서 맹상군 ·춘신군 ·신릉군 등과 함께 ‘사군(四君)’의 한 사람이다. 3번이나 재상이 될 정도로 현명하고 거기에 붙임성까지 있어 식객 3,000명을 거둬먹였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진(秦)나라가 조(趙)나라에 쳐들어오자, 조나라는 평원군을 초(楚)나라에 보내 도움을 청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에 평원군이 식객 중 인재 20명을 선발하는데, 마지막 한 명을 채우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모수(毛遂)’라는 자가 자신을 추천하며 앞으로 나오는 것이렷다(여기서 유래한 성어가 바로 ‘자기가 스스로를 추천한다’는 뜻의 ‘모수자천(毛遂自薦)’이다).
평원군은 처음 보는 듯한 이 낯선 식객을 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무릇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을 땐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다(夫賢士之處世也, 譬若錐之處囊中, 其末立見)”
이 말인즉슨 ‘3년이나 내 식객이었거늘 넌 내 눈에 단 한 번도 띈 적이 없노라. 헌데, 너를 뽑아달라고? 싫어!’다. 그렇게 거절을 당한 모수는 포기했느냐? 아니다. 모수의 변(辯)은 이랬다. 평원군 당신이 날 단 한 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주지 않아서다. 오늘 내가 이렇게 넣어달라고 부탁할 때까지 말이다. 좀 더 일찍 넣어줬다면 송곳 끝이 뭐냐 자루까지 밖으로 비어져 나왔을 거다.
이런 자를 어찌 내치랴. 그렇게 모수는 평원군의 수행원으로 뽑혀 초나라의 도움을 얻어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단다. 예나 지금이나 당당한 자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나니. 멋지다. 모수!
평원군의 저 말에서 유래한 ‘낭중지추’는 그러니까 ‘뛰어난 인재는 어떻게든 두각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말인 거다. 참 좋은 말이다. 헌데 이 성어를 익힘에 있어 꼭 함께 기억했으면 하는 표현이 있다.
바로 ‘덕승재(德勝才)’다. ‘덕이 재주를 앞서야 한다’는 뜻이다.
옛말에 ‘덕승재 위지군자(德勝才 謂之君子)요 재승덕 위지소인(才勝德 謂之小人)’이라 했다. 즉 ‘덕(德)이 재주(才)보다 승(勝)하면 군자요, 재주가 덕보다 승하면 소인’이라는 뜻이다. 모름지기 덕이 재주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가르침인 것이다. 아무리 실력을 갖추었다한들 어진 성품이 밑바탕 되어 있지 않다면 그 재능은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없음이라.
독일의 철학자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이라는 표현으로 ‘똑똑함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을 잘 찾아내는 이성을 가리켜 도구적 이성이라 한다. 이 편리하고 유용한 이성이 잘못된 목적에 사용될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상상해보라. 여기서 우리는 철학자 이충녕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언제라도 우리의 도구적 이성을 우리 자신을 효율적으로 파괴해버리는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기억해야 한다. ‘목적에 대한 고민이 없는 똑똑함은 가장 무서운 것이 된다’는 것을.
‘낭중지추(囊中之錐)’같은 똑똑한 인재를 발견하는 일은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똑똑함이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덕승재(德勝才)’의 교훈을 기억해야 하리라. 능력주의가 팽배한 작금의 시대적 분위기에서는 더더욱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주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