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참 많이도 온다.. 그래서 난 차~암 좋다.
이런 날은 어김없이 창밖 풍경에 빠져들게 되는 마법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하염없이 퍼붓는 비를 보고 있으려니, 문득 ‘비에 관한’ 나만의 특별한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외대에 언어학 수업을 청강하러 갔던 날이다.
언어학 이론을 혼자 책을 읽으며 거의 독학하던 시기였고, 맨땅에 헤딩한다는 마음으로 ‘언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무조건 읽고 보던 때였다.
그럼에도 그 이론 공부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난해한 이론들을 따라잡기 위한 나의 무모한 도전은 결국 공부에 대한 자신감까지 잃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혼자서 허방을 헤매던 때였다고나 할까...
그렇게 절망하고 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외대 영문과 교수님의 대학원 수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 스스로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잔뜩 주눅 든 채로..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그'들의 틈에 끼어 수업을 들었던 기억..
그렇게 처음엔 낯선 분위기에 위축되었던 나는 교수님의 강의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어느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혼자 책으로 읽을 때는 전혀 내 것이 되지 못하고 허공만을 부유하던 개념들이 마치 스펀지에 스며들듯 하나둘씩 내 안으로 흡수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수업 내내 ‘앎의 환희’를 제대로 체험하며 그 수업과 나는 완벽하게 하나가 되고 있었다.
그 수업에 대한 나의 단상은...
교수님의 입을 통해 쏟아지던 그 수많은 단어들은 하나하나가 내 온몸을 따뜻하게 적시는 빗방울이었다.
그전까지 어렵기만 하던 그 언어학 이론의 개념들이 드디어 이해가 되기 시작하던 그 순간이 내겐 마치 들판에 서서 그 개념들로 내리는 비를 흠뻑 맞는 찰나와도 같았다.
그렇게 그날 그 강의실엔 오로지 나만을 위한 언어학의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에 젖는다는 건...’ 내게는 그랬다.
내가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그 무엇인가가 완전한 내 것이 될 때 느끼는 그 환희와 동일시되는 그 무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