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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킴 Jun 17. 2020

웬디 우드의 [해빗(Habit)]

코로나 재난 긴급지원금이 촉발한 기본소득시대는 올 것인가.


우리는 행복한 삶이라는 인생 목표를 향하여 매일 의지를 불태우며 열심히 살고자 애쓴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끊임없이 고도의 집중력과 불굴의 자제력을 요구한다.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자신을 최악의 실패자로 여기고 거기서부터 자신감은 뼛속부터 흔들리기 시작하고 결국 무기력에 빠지고 만다.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면 인간은 기본적인 삶의 의지조차도 상실하게 된다. 과연 우리 인간이 다 의지박약이어서 원하는 삶에 도달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이 질문에 희망적인 답변을 주는 책이 있다. 바로 웬디 우드의 ‘해빗(Habit)이다. 

 

웬디 우드는 성공과 실패의 간극을 무의미한 노력과 고통스러운 끈기 대신 좀 더 즐겁고 유쾌한 과정으로 채운다면 어떻게 될까를 고민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재배열해 자동으로 성공에 이르는 길은 없을까? 그리고 인간의 무의식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존재, 즉 내면의 충동을 제어하고 늘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 일지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찾았다. 


성공한 사람들은 이 비밀을 알고 오래전부터 이 전략을 실천해왔다는 것을 말이다. 바로 ‘습관이 지배하는 삶’이 그것이다. 그들은 강인한 자제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가볍고 쉽게 문제를 해결해왔던 것이다. 그는 이 습관을 ‘비의식적 자아’라고 명명했다. 
 

우리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단호하고 확고하게 계획을 천명했음에도 비의식적으로는 과거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한다고 한다. 우리가 의지력이라고 부르는 ‘의식적 자아’는 일상적 행동 패턴과 거의 관련이 없고 대신 광대하고 반쯤 숨겨진 ‘비의식적 자아’가 작동한다고 한다. 바로 습관이다. 


우리 일상에 스며든 습관은 처음에는 의식적 자아로부터 보내진 신호에 의해 시작되고 조종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실행 제어 기능의 간섭 없이 비 의식적 자아에 의해 스스로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존에 의식적 자아만으로도 사람의 모든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에 반하는 주장인 것이다. 


이 주장은 그동안 의지가 약한 자신을 질책하며 후회하는 삶을 살아왔을 많은 이들을 위로해준다. 또한 더 나아가 인생의 실패가 온전히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라며 습관의 사회화를 강조한다. 인생의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개인적이지 않으며 사회 전체가 함께 부담해야 할 짐이라는 것이다. 동시대의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공공의 시련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련은 개인의 습관이 아니라 모두의 습관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저자의 말대로 개인의 의식적 자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극히 제한적이다. 게다가 우리는 매일 마주하는 충동과 유혹과 무기력을 감당할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변화무쌍해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외부적 힘을 통제하는 것도 역부족이다. 하지만 그는 과학의 힘을 정책에 활용하면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더 쉽게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일상적 환경을 변화시키는 정부 정책을 고안한다면 우리의 삶의 질은 훨씬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 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에서 취한 ‘코로나 재난지원금 정책’이 그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위축된 소비를 살리고 취약계층을 보호하려고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긴급구호자금으로 볼 수 있는 이 정책의 효과는 단번에 나타났다. 긴급재난지원금이 풀리면서 코로나 19 발생 이후 대위기를 맞았던 골목상권이 살아나고 있다. 5월 들어 도내 소상공인 매출이 하락세에서 회복세로 돌아섰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가시적인 효과는 자연스럽게 재난지원금이 아닌 재난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재난 소득 논의의 뿌리는 기본소득에서 나온다. 코로나 19로 촉발된 재난 소득 논쟁은 결국 향후 기본소득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재난지원금에 대한 기사 리뷰에서 모든 국민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정부에 감사하는 댓글을 보았다. 국민으로서 이러한 정책에 대해 취해야 할 자세는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의견임이 분명하다. 한 번 생각을 해보자. 과연 나라가 국민에게 지원금으로 도와주었으니 그것을 감사해야 할까? 물론 감사해야 할 것은 분명 있다. 하지만 내 경우엔 그 이유가 조금 다르다. 이것은 현재 일고 있는 재난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과도 맥을 같이 한다. 


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지원금이라는 명칭이 타당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지원금이라는 명칭에는 ‘도와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정부가 국민을 도와준 게 아니라 납세의 의무를 충실히 지킨 국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해 준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래서 감사해야 한다면 정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에서 오는 감사여야 한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납세의무에서 자유로운 곳은 없다. 그만큼 우리는 매일 나라에서 정한 일정한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정부를 비판할 때 자신들이 낸 세금이 모두에게 공평한 형태로 되돌아오지 않는 데에 불만을 표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라는 비상시국에서 드디어 평등하게 그 혜택을 누릴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를 그동안 4차 산업혁명시대에 더 필요한 제도로 부각되던 기본소득에 대한 개념과 가치를 재정립해보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기본소득은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정기적으로 조건 없이 지급하는 현금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세계적 기업의 CEO들도 고용 없는 시대, 소득 없는 시대를 대비할 대안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개념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고도의 자동화로 인해 사람이 로봇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대규모 실업 사태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재교육과 함께 그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 줄 제도적 장치가 절실한 것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중요해진 것이다. 

이제 GDP와 같은 경제적 지표가 아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의미 있는 역할을 찾았는가 하는 것이 발전의 척도로 여겨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마크 저커버그의 말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 세대가 평등의 개념을 확장해서 새로운 사회적 합의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이런 시점에서 웬디 우드의 과학을 기반으로 한 사회 정책 설계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행복한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주민이 대다수인 지역이 있고 언제나 불행만을 반복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주민이 대다수인 지역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회 정책은 주민의 생활을 개선했고 반대로 회복할 수 없는 해악을 안긴 사회 정책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떤 방향의 관점과 태도가 더 많은 사람의 목표를 달성하게 만들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고 하였다. 코로나 재난지원금이 어떻게 우리 경제와 삶을 변화시키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장기적으로 하나의 경제정책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의 의지와 근면 따위에 너무나 많은 기대를 걸었던 과거 정부와 기관의 태도는 변해야 한다. 기대라는 명목으로 실패와 파산의 원인을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돌리면 정부의 책임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웬디 우드는 국가는 여전히 의지력만이 목표를 이루는 제대로 된 방법이라고 믿고 있는데 그 편이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그의 주장대로 현실에서 대다수의 사람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가혹한 덫과 진창에 허덕이고 있으며 그들은 그 악조건을 스스로 돌파해낼 힘을 갖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것은 상황을 살짝 조정하거나 아주 간단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만들어주는 정책과 제도가 계속해서 입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우리 정부가 더디지만 한 걸음씩 모든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방향성에 기대를 걸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것은 상황을 살짝 조정하거나 아주 간단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만들어주는 정책과 제도가 계속해서 입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우리 정부가 더디지만 한 걸음씩 모든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방향성에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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