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희 Dec 16. 2020

누가 색을 독점하는가

1. 무지개색

인천에서는 해마다 월미 평화축제를 연다. 인천 월미도 앞에는 월미산에는 꽤 오랫동안 군부대가 주둔해있었는데, 이 곳이 시민들의 공간인 월미 공원이 되면서 평화와 생명의 공간으로 만드는 축제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10년이 넘어가고 있지 않는가 싶다. 해마다 공연, 전시, 시민 참여 행사가 열리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행사가 축소되었다.

내가 회원으로 있는 인천민족미술인협회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 축제에 참여해왔는데, 올해는 만장 작업을 한다고 하여 나도 함께 하게 되었다. 회원들이 평화와 관련 있는 문구나 그림을 구상해와서 긴 플래카드에 쓰거나 그리는 작업이었는데, 나는 평화란 글씨를 나름 해석하여 그리게 되었다. 평화를 위협하는 전쟁, 기아, 차별, 무기와 같은 단어들이 글씨의 끝에서 잡아당기고 있고, 부서지는 글씨 한쪽 획을 잡고 어린이들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내용이었다.  내 몫의 만장을 다 그리고 나니 플래카드 하나가 여유분으로 남게 되었다. 아직 다른 회원들이 작업을 마치지 않은 상태라 내가 그곳에 평화란 글씨를 쓰게 되었다. 종이테이프로 글씨 부분을 덮고, 배경을 무지개 색으로 칠하게 되었는데, 내가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회원 한 분이 '왜 무지개 색'이냐고 물어오셨다. 사실, 내가 무지개 색을 고른 데는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쁘지 않은가?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은 어떻게 칠해도, 물감이든, 색연필이든 어떤 재료로 칠해도 예쁘다. 거기에 무슨 이유가..... 생각하다가 문득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분이 그런 질문을 한 이유는 자신의 경험 때문이었다. 한 번은 그분이 우연히 성소수자들의 축제인 퀴어축제 장소를 지나게 되었는데, 축제 주최 측에서 나누어 주는 버튼 디자인이 참 이쁘더란다. 그 선생님은 자신도 버튼을 받아서 한동안 가지고 다니던 백팩에 달았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주변의 시선이 묘하게 달라진 것을 느꼈다고 했다. 어쩐지 거리를 두는 느낌도 들었다고 했다. 고작 버튼 하나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고? 그런데, 그런 일이 생겼단다. 아마도 혹시 너도?라는 시선이었겠지. 고작 무지개 색 버튼 하나에 차별의 시선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무려 두 개의 만장에 무지개색을 사용했으니. 뭐, 그렇다고 당혹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평화축제에 사용될 만장이니 성소수자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평화와 공존의 주제에 속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타인이 자신이 사용한 색을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 지어 판단하는 데 사용한다면 당혹스러운 일일 수 있겠다. 왜냐하면 색은 그저 색일 뿐이니까. 만일 색이 특정 집단의 상징이라고 해서 선망이나 혐오에 색을 이용한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이는 거꾸로 그 누구도 색의 사용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우리는 세상의 많은 색을 나 자신을 위해서 자유롭게 사용할 자유가 있다. (자유란 단어가 이렇게 많이 들어간다는 것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반증일지도.) 물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많은 사람들과 단체가, 기업이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기 위해 색을 사용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집단의 동질성을 유지하려는 마음과 함께 배타성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2. 빨강

2013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을 예감했던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이가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여론 조사? 인물됨? 그도 아니면 그들이 내세운 정책에 대한 면밀한 검토? 그나 나나 평범한 대한민국의 교사니 그런 전문적인 식견이 있을 리야. 우습게도 그이의 판단 근거는 당시 새누리당이 새로 정한 당의 상징색이었다. 당시 새누리당이 새롭게 정한 당의 상징색은 빨강색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빨강색이 역사적으로 어떤 대접을 받아왔는지는 모두 다 알고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차별을 받은 색이라면 단연코 빨강색이 아닐는지. 우리는 남과 북의 처절한 이념대결로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었고, 남북으로 분단된 이후에는 이념과 관련된 일이라면 숨죽이고 조심해야 하는 어둡고 차가운 시절을 겪었다. 지금은 민주화가 되었지만 어둡던 독재의 시절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빨강색에 대해서는 흠칫 움츠러드는 경험이 있다.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가 뼛속까지 스며있다. 빨강색에서 빨갱이로 이어지는 사고, 라기보다는 집단 무의식에 가까운 의식의 악순환 고리로부터 벗어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 빨갱이라는 단어 자체는 파르티잔-> 빨치산-> 빨갱이 정도의 어원을 가지고 있을 뿐, 빨갱이의 '빨'은 빨강색의 '빨'이 아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빨강색을 즐겨 사용했으니 빨강색이 이념의 전쟁터 한복판에 즐겨 소환되었을 뿐이다. 때문에 빨강색은 늘 전쟁, 피, 북한, 공산당 등을 연상시키는 단어였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빨간 머리띠 또한 빨갱이 새끼들이란 욕 아닌 욕의 근거가 되기도 했고, 정부 의견과 다르면 무조건 빨갱이였으며, 심지어 말이 많으면 빨갱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도 있었다.(그야말로 복종과 침묵을 강요하던 시대의 산물이 아닐는지.) 빨강색과 더불어 빨갱이란 단어는 특히 연좌제와 연결되어있는 무서운 단어였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빨강색은 죄가 없다. 빨강색은 그냥 빨강색일 뿐이다.


빨강색처럼 아름답고 매혹적인 색깔이 암울한 역사의 배경 때문에 천대받고 터부시 하고, 심지어 부정적인 의미로 타인을 덧씌우는데 이용되어왔으니, 빨강색의 입장에서 얼마나 곤혹스러웠겠는가.

 

하물며,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빨강색은 또 어떤가. 대한민국 역사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은 무수히 많았다. 이른바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역동적인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의 상징색으로 빨강색만 한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를 표방하는 그 어떤 정당도 빨강색을 당의 상징색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어디 빨강색뿐이랴. 주황색, 분홍색, 다홍색 등등. 마치 빨강색 계열을 기피라도 하듯, 녹색, 노랑색, 파랑색 등의 색이 당색이었다. 혹시 그들은 의도적으로 빨강색 계열을 피했던 건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보수 정당은 그들에게 빨갱이 이미지를 덧씌우고 싶어 하는데 당 상징색마저 빨강색이라면 얼마나 좋은 먹잇감이 되겠는가. 그나마 14대 김대중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의 당색이 빨강과 초록, 두 가지 색이었는데, 내 기억에 그때 그들이 입었던 당복은 빨강색이 아니었다.


그런데, 보수의 아이콘인 새누리당에서 빨강색을 당 상징색으로 정하고, 빨강색 점퍼를 입고 유세에 나선다? 이건 우리나라 색의 역사에서 그야말로 놀라 뒤집어질 사건인 것이다. 그 친구는 이미 거기에서 그녀의 승리를 예감했다고 했다. 사실,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그들 외에 누가 빨강색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겠는가. (당시 새누리당은 빨강색을 당 상징색으로 정하면서 진보 측의 갖가지 정책까지 함께 가져다 썼던 것 같다. 나는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그들이 그 정책을 모두 실천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좌:14대 대선 당시 민주당의 로고와 사색 / 우: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로고와 사색


3. 색을 독점하는 사람들

과거 봉건시대 유럽에서 물감은 정말 귀했다. 그중 빨강색 염료는 더 비싸고 귀한 것이었다. 빨강색 염료를 차지하기 위한 각국의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 또, 그림을 그릴 때면 황금색, 파랑색, 빨강색은 예수, 황제, 귀족과 같이 신분이 높거나 신성을 가진 존재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했다. (사실, 물감 색을 이렇게 특정 계층에 한정하여 사용한 이유는 이런 색의 물감들이 비쌌기 때문이다. 오가는 행인 1, 2, 3에게 뭐하러 값비싼 색을 사용하겠는가. 그리고 물감 살 돈은 왕족, 귀족, 성직자 등 사회의 부를 독점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러다 보면 특정한 색을 써서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표현된 색이 거꾸로 존재의 가치를 상징하는 색이 되는 역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팬톤 같은 회사는 다음 해의 색을 정해 색을 유행시킨다. 그 회사에서 만든 색은 전 세계의 화장품, 패션, 페인트 회사에서 사용하고, 그들은 그들이 만든 색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이용해서 기업을 운영한다. 우리는 색을 자유롭게 쓰고 즐기는 것처럼 보일 뿐 사실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색을 독점하고자 하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멀리 중세나 다국적 기업까지 갈 필요도 없다. 가깝게는 학교에서 입는 교복이나 체육복 같은 단체복을 보면 된다. 체육대회가 다가오면 각 반에서는 자신들만의 단체복을 맞춰 입기도 하는데, 이 또한 특정 색을 독점하여 학급의 소속감을 높이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어떤 반은 빨강색, 어떤 반은 파랑색을 입고, 그에 따른 문양도 선택한다. 물론 다른 반이 고르기 전에 먼저 좋아하는 색을 선택하고자 하는 경쟁도 나름 치열하다. 어쩌다 같은 색의 셔츠를 고른 학급이 나타나면 두 학급은 서로 지나칠 때마다 알게 모르게 눈을 흘기며 지나간다. (물론, 학급별로 색상을 맞춰 구입한 단체복을 입은 체육대회의 풍경은 시각적으로 매우 아름답다.)


색이 가지고 있는 힘은 때로 무섭다. 하지만,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 때문에 무지개 양말이나 카디건을 입지 못하거나 빨강색 머리띠를 할 때 망설이게 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저마다의 색 검열관이 있어 색을 색으로 즐길수 없다면 굳이 아름다운 색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 무엇에 쓰겠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공동주택 만들기 5 : 제작과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