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을 은밀한 권력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섹시함은 노골적인 권력일까요?
매력이라는 표현은 섹시함의 무난한 표현일 뿐, 은밀한 권력을 불러일으키는 실체는 섹시함입니다. 그리고 섹시함은 힘이 뒷받침되었을 때 가장 폭발적인 효과를 발휘합니다.
넥플릭스의 <거꾸로 가는 남자>를 보셨나요?
거기서 나오는 여주인공 알렉산드라의 변모를 보면 당신도 알 수 있을 거예요.
영화 초반부, 남성 우월주의자 다미앵이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쳤다 깨어나보니 남녀의 위상이 역사적인 단계부터 완전히 뒤바뀌어 현재에 이른 세상이 됩니다. 전복된 세상에서 생기는 이야기들이 기발하답니다. 그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여남이 꽤 평등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알고 보니, 그냥 물들어 의식하지 못하는 채로 사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뒤바뀐 세상에서는 통유리로 훤하게 보이는 사무실에서도 여자 상사가 탐폰을 책상 위에 간식 스틱처럼 꽂아놓습니다. 이게 뭔가 싶어 궁금해하는 다미앵에게 생리양이 많아서 특대형을 쓴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녀. 길에서 여자들이 다미앵에게 추파를 보내며 매력적이라고 말을 거는 장면들. 상상이나 해봤겠어요? 여자가 남자에게 캣콜링이라니. 그 외에도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다리털-다른 데 털들도 다-을 밀고 쇼트팬츠를 입고 다니는 뭐 그런 소소한 장면들이 재밌고 놀라웠습니다. 교훈적이기도 합니다. 탐폰 장면을 본 이후로는 저도 마트에서 탐폰류를 살 때 바구니에 다른 물건들로 숨기지 않고 그냥 담습니다. 회사에서 탐폰을 교체하러 화장실 갈 때도 예전에는 주머니에 꼭꼭 숨겨서 갔는데 이젠 개의치 않고 손에 들고 갑니다. 내가 탐폰-생리대든 팬티라이너든-을 쓰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감출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강렬했던 것은 여주인공 알렉산드라의 반전입니다. 원래 세상에서 다미앵 친구-직업은 작가-의 비서였던 알렉산드라는 전복된 세상에서 그녀 자신이 성공한 작가가 됩니다. 일류 작가인 그녀는 다미앵을 출산 휴가를 간 남자 비서의 대체 비서로 고용하게 됩니다. 다미앵이 늘씬한 다리를 다 드러낸 핫팬츠를 입고 면접을 보러 간 날, 알렉산드라는 하얀 정장 셔츠의 앞단추를 다 풀고 있었습니다. 젖가슴이 보여도 상관치 않고 복근 자랑을 합니다(복근은 없어 보였지만..). 원래 세상에서 입술을 빨갛게 칠하고 머리칼을 틀어 올린 알렉산드라의 조신한 모습보다, 전복된 세상에서 짧게 깎은 머리를 하고 셔츠 자락을 풀어 가슴을 내놓은 알렉산드라의 모습이 더 자연스럽고 강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강한 것은 아름답습니다. 진짜 섹시함은 그렇게 힘과 권력이 동반되는 것이 아닐까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셔츠를 풀어헤치고 알렉산드라 흉내를 내봅니다. 섹시함을 연기해 봅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지만 사실은 그 반대랍니다. 행동이 바뀌어야 생각이 바뀌고 운명이 바뀝니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의 《립 잇 업》에서는 이 사실을 증명하는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흔들리는 그물 다리 위에서 남녀가 처음 만나게 하고, 그 흔들림에 의한 긴장감을 사랑에 빠졌다는 감정과 혼동하게 하는 실험은 고전이 됐습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행동-내장기관의 활동 포함-을 관찰하는 자아가 있어서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지켜보고 자신의 감정을 결정한다더군요.
Fake it till you make it! (될 때까지 된 척하기)
내가 한 것이 정확히 그겁니다.
진짜 섹시해질 때까지 섹시한 척해보기.
그리하여 강한 여자, 강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