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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테 Aug 23. 2024

모든 화살표는 이미 내 안에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Day 19

2019.10.19

따르다호스 Tardajos  → 온따나스 Hontanas, 25km


눈을 떠보니 7시 45분이었다.


이제 긴장이 풀린 것일까,

아니면 더 이상 일찍 출발할 이유가 없어져서일까.

아무튼 자연스레 몸이 늦은 기상을 한다.


그러고는 알베르게에서 준비해 준 아침을 먹고는 8시 반안되어 출발했다.


camino, 길


순례길을 걸으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의 화살표를 본다.

'이 쪽 방향이야.'


하루종일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내가 가야 할 방향이 표시되어 있어서 편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저 화살표를 보고 따라 걸으면 되기에.


인생도 이리 확실한 화살표가 있어서 그저 따라가기만 한다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리고는 금세 그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생각이었는지 싶어서 실소가 나온다.


"이쪽이야. 이쪽으로 가야 해."

"여기로 가야 인생이 편해."

"이길로 가야 성공해. 널 위한 길이야."

"이걸 해야 해. 다들 그렇게 가잖아."

"이 길로 가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처질 거야."


지금껏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수많은 화살표를 제시받아왔고

이미 정해져 있는 정답 공식처럼 일말의 여지없이 그리로 가야 한다고 배웠다.

그 길을 벗어나면 마치 '틀린', '사회부적응자', '루저', '반항아', '불효자'등의 이미지들이 덧씌워지기도 했다.


내 길이 전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고통스러웠지만 제시된 화살표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그래, 이게 맞는 길이잖아. 남들처럼 못 따라가는 내가 잘못된 거야..'


다수 속에서 홀로 붕떠서 땅에 착지하지조차 못하고 방황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봐도,

화살표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나 자신을 매번 마주해야 했으며

언제부턴가 스스로를 '실패자', '사회의 기생충', '부끄러운 딸'로 낙인찍어버렸고

그러한 죄책감과 자괴감에서 비롯된 온갖 자기혐오로부터 매 순간 몸서리쳐야 했다.


누군가가 제시해 준 화살표는 그 누군가에게나 맞는 화살표일 뿐, 나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화살표일 수 있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겪은 일들은 애초에 타인의 목적지와 나의 목적지가, 서로의 길도, 그러한 과정 중에 사용할 도구와 수단들도 각자 모두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위한 시행착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화살표를 제시해 주는 것에도 신중을 가해야 함을 깨달았다. 자신이 가봤던 길이라고, 내가 겪어봤다고 해서 이 길이 '맞다', '틀리다'라고 주장하기보다는 나의 경우에는 이러했다고 상대에게 제시하거나 조언을 해주는 정도가, 그랬는데도 상대가 다른 선택을 하겠다고 한다면 수용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 서로를 온전히 존중하는 방법이 아닐까.


무엇보다 자신의 화살표는 본인이 살아온 수많은 삶의 경험치와 시야가 쌓이며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화살표는 '삶의 정답'을 의미할 수 없다.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자립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자신만의 화살표가 가득한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삶의 본질이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실수와 시련이 빠질 수 없다. 이 또한 허용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걸 극복해 나간 깊이와 단단함이 더해져 진정한 화살표를 삶의 곳곳에 세울 수 있다.


그러니 인생에서 내가 가야 할 길과 방향은 결국 외부에서 주어지 것이 아니고 온전히 내가 선택해야 할 권리이자 자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유를 어찌 다룰지는, 그 자유로 자신의 삶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동안 타인들이 제시해 준 화살표를 선택한 것은 나였으며,

그 책임 또한 제시된 화살표를 그대로 따라 걸었던 '나'임을 다시 한번 인지해본다.


어쩌면 책임을 지기 싫었기에 말해준 길을 따라 걸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이 그리하라 했지 않느냐며 회피할 구멍을 숨겨두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시속에서 아무리 타인과 세상을 탓해봐야 소용없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냐며, 이상 알려주지 않냐며 울부짖어봐야 의미 없는 메아리뿐이다.

그런 시기를 아주 깊이, 오랫동안 겪어보았기에

이제는 안다.


온전히.

그리고 오로지 내가 삶의 중심이.

인생의 모든 화살표는 결국 나를 향해 있었고 안에 있으며, 

스스로 삶을 만들어가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결국 화살표는 삶의 정답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뜻대로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아가는 삶의 자유이자 권리 아닐까?



귀여운 순례자 캐릭터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다음 마을이 궁금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걸으면서 바닥이 아닌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만들어준다.

순례길 여정의 작지만 큰 즐거움을 주는 녀석들이다.



성당 지붕 위에 엄청 둥지와 새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이곳이 종교적인 의미가,

저 새에게는 자신의 터전이라는 의미가,

나에게는 그걸 포착하며 찍는 즐거운 추억이 되네.


오늘도 보는 부엔 까미노. Buen camino.

좋은 길, 좋은 여행, 좋은 방법.

이 문장이 가면 갈수록 참 좋다.


문득 한국에 돌아가면 타투를 한번 해볼까 싶어 진다.


왼쪽 가운데 손가락에는 ↓ 이런 화살표를,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에는 발자국  표시를 새겨보는 상상에 빠진다.


가운데 손가락인 이유는

반지를 낄 때 가운데 손가락이 심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뭐 그런 상징적인 의미가 생각났다.


그러니 만약 저대로 타투를 한다면

'모든 화살표는 내 안에 있었고,

나는 그 화살표를 따라 두 발로 묵묵히 걸어 나가겠다'는 의미가 담긴다.


사실 아직 반도 다 걷지 않았지만,

이 여정길에서의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느낌이다.

오늘 당장 한국에 돌아가게 되더라도 아쉽지 않을 만큼.



'13'

좋아하는 숫자가 보인다.


내 생일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껄끄러워하는 숫자다 보니 오히려 나는 더 좋아졌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오늘은 걸으면서 '13'이 보일 때마다 찍어봐야겠다.

재밌겠는데?


지루한 여정 속에서 소소하게나마 즐거움을 찾는 방법이다.



홀로 붉게 피어있던 장미.

홀로든 함께든 아름다운 것은 그저 아름답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여기야, 여기라구! 느낌의 화살표 3개
부엔 까미노


따르다호스 마을에서 하루 묵었다는 사실이 이 마을을 떠나면서 괜히 뿌듯함으로 다가온다.

안 그래도 아침에 알베르게 자원봉사자 할아버지와 포옹을 나누며 따스한 작별인사를 했는데,

곳곳에 순례자들을 위한 정감 가는 그림과 표시들,

이 마을의 모든 것들이 따스함으로 매듭지어진다.



그렇게 또 다음 마을을 향해 걷는다.



그렇게 30분쯤 걸었을까.

첫 번째 마을에 도착했다.



RABE DE LAS CALZADAS

라베 데 라스 깔싸다스.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우연히 두 번이나 보게 된 '13'.

괜스레 응원받는 기분에 기분이 좋아진다.


조가비와 함께 'V'


나침반 옆 날아가는 새 두 마리


남은 거리 476km


800km대에서 어느새 400km대로 진입했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걷고 있을 뿐인데,

그 한 걸음이 모이면 이리도 클 수가 있구나.



볼 때마다, 신발들은 애초에 저러려고 본인들이 챙겨 온 걸까 궁금하다.



이건 좀 웃겼다.

심지어 멋도 없어.

그래도 어이없는 웃음을 주었으니 되었다.


'순례길 낙서 컬렉션' 느낌으로

매일 보게 되는 낙서들을 몇 개씩 찍곤 하는데,

오늘의 첫 낙서는 이거다.


"Angel ♡

Love & Peace"


걷다가 잠시 멈춰 서서,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이 여정을 걷는 순례자들을 위해 저런 문구를 적었을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니 귀엽고 사랑스러워진다.




앞으로 쭉 걸어가야 하지만, 잠시 오른쪽으로 빠져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늘의 두 번째 낙서를 찍었다.

"Keep Going You Can Do It!"


나머지 신발 한쪽은 어디로 갔을까?



점점 비슷한 풍경들을 많이 본다.

그만큼 순례길이 익숙해졌다는 의미겠지.

아무튼 1~2시간째 이런 길을 걷다 보면 지친다.


도대체 다음 마을은 언제 나타나는 것인지,

오늘의 목적지는 또 얼마나 더 걸어가야 하는 것인지의 늪에 자연스레 빠지게 된다.



오, 드디어 저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습관적으로 확대해 본다.


'오! 가까운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걷다 보면 엄청난 착각임을 알게 된다.



언덕 위에서 볼 때는 꽤 가깝다 느꼈던 마을이,

걷고 걷고 또 걸어도 보이질 않는다.


역시 위에서 바라보는 것과 실제로 그 안에 있는 것은 체감이 다른 법이지.



오늘의 세 번째 낙서.

"Stop for a minute and smile."



그렇게 1시간을 좀 더 걸어서 마을에 도착했다.


Origen Bar

'오리헨'이라는 레스토랑이었는데

사실 '화장실, 화장실'을 외치며 들어섰다.


휴.

11시가 넘은 시간이기도 했고,

큰 일을 해결하고 나니 개운해져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으나

예약한 손님들이 많았는지 풀 Full이라고 했다.

보니까 자전거 순례자 단체분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고 계셨다.


그렇게 나가던 길에 보게 된 레스토랑 한쪽 벽면에 쓰여있던 시.

한글로 된 시를 보게 될 줄이야.

무척이나 반갑고 신기했다.



여기서부터 산티아고

- 양경희


빠르지 않아도 괜찮아

멈추어있는 시간은 보여줄 거야

흐르는 하늘색과 파도치는 금빛 갈대를


아프고 힘들어도 괜찮아

시련이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거야

나무그늘의 응원과 햇살의 보듬어줌을


비싼 시계가 없어도 괜찮아

행복을 위해 내어 줄

빛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음을




그렇게 또다시 출발이다.



걷고 또 걷고, 또 걷고.

비가 내리니 쉴 곳도 마땅치 않다.

이런 길에는 중간에 앉을 곳이 없기도 하지만

쉬면 금세 추워지니 그저 걸을 수밖에 없다.



어느덧 서서히 비가 멈추는 것 같았고,

돌에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자전거 순례자가 슝- 하고 지나간다.

부럽다!



날씨가 점점 맑아지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도대체 이 길은 언제 끝나는 거야.



우와.

477,7Km다!

777, 럭키 세븐인가?



왼발, 오른발.

오늘도 수고가 많구나.



슬슬 힘들어서 그만 걷고 싶어 진다.



그래서 등산화에서 크록스로 갈아 신었다.


오늘의 마지막 구간에 접어들었거나 '한계다.' 싶어지는 무렵에 신발을 갈아 신으면,

좀 더 걸을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아무래도 바닥이 푹신푹신해지면서 발도, 마음도 같이 말랑말랑 해지나 보다.


'그래, 좀 더 힘내보자!'



그리고 얼마 뒤, 낙서가 눈에 보인다.

온타나스까지 15분!

아~ 이 낙서의 주인공은 천사가 틀림없다!


그렇게 10분을 좀 더 넘게 걸었는데..

마을이 안 보인다..


천사가 아니라 아무래도 악마인가... 하려던 찰나,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곳이 분지 지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안 보였구나!



그나저나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 같다.


Hontansa 온따나스


비가 또 많이 내리기 시작하길래

그냥 바로 옆에 보이는 레스토랑 겸 알베르게로 들어섰다.



숙박 6유로, 저녁 11유로를 신청했다.



그리고는 배가 고파서 샤워도 안 하고 짐만 내려놓고는

차와 베지터블 햄버거를 흡입했다.



샤워를 마치고서 잠시 걸으며 마을 성당도 구경했다.

비가 내려서 금방 숙소에 다시 돌아왔지만.


오늘의 숙소 침대 풍경


저녁 7시.

식사시간이 되어 레스토랑에 내려왔다.


옆자리에 한국분이, 그 옆으로는 프랑스분이 앉으셨다.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게 되었다.

 


이거 테이블 위에 그냥 장식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와인병이었다!

예쁘다며 찍었다.



이렇게 오늘도 무사히 '부엔 까미노'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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