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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못한 코미디언
Nov 29. 2021
학원 강사 일을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처음 반년은 마냥 힘들었고 그 뒤 반년은 마냥 즐거웠다. 낯설었던 학원 업무가 그럭저럭 익숙해지자 아이들 예쁜 것만 눈에 보였다. 3, 4학년 즈음된 아이들은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귀엽다. 아직 몸의 굴곡이 다 잡히지 않아서 말랐든 통통하든 배만 볼록 나와 있는데 그게 그렇게 귀엽다. 특히 내가 앉아 있을 때 옆에 와서 서면 그 통통한 배가 눈앞에 바로 와닿는데, 모르는 척 검지로 콕 찔러보고 싶은 걸 참느라 고역일 때가 많다.
가르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무언가를 처음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낯설고 두려운 일인지 자주 잊고는 한다. 처음 일 년은 마냥 친절하려고 애썼는데, 그러다 몇 번 곤욕을 치르고 나니 한동안은 통제권을 잡으려고 안달도 났었다. 즐겁고 행복하게 배우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아이들 위에 군림하려고 애쓰던 쑥스러운 날들이 있었다.
그럴 때는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됐다. 살면서 배우고 싶은 게 참 많았는데, 항상 돈이나 시간이나 집중력이 없었다. 이제 좀 자리 잡아 내 한 몸 건사할 소박한 주머닛돈도 생겼고 아침에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래서 바지런히 이것저것 배우러 다닌다. 수요일에는 기타로 옹달샘도 쳐보고 화요일이랑 목요일에는 동네 문화센터에서 운동도 배운다.
기타는 대학교 친구와 함께 배운다. 친구는 아예 처음이고 나는 간단한 코드 정도는 잡을 줄 안다. 오십 보 백보 차이인데 그래도 꼴에 오십 걸음 앞서간다고, 선생님이 뭐 하나 알려주면 나 혼자 앞서갈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선생님이 '거, 참 성격 급하시네. 하하' 웃으면서 속도를 맞춰 준다. 그럴 때면 하나 깨닫는다. 빠르게 가는 아이도 느리게 가는 아이도 다 자기 속도로 최선을 다해 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 깊은 산속 옹달샘도 갔다가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도 만났다가 한다.
문화센터에는 가끔 늦게 간다. 몇 달 전 수술한 무릎이 어떨 땐 아프고 어떨 땐 안 아프기 때문이다. 아플 때는 걸음이 느리고 안 아플 때는 걸음이 빠르다. 아예 십 분, 십 오분 일찍 출발해도 되는 일이지만 그렇게 일찍 가면 좀 민망하기도 하고 앉을 수도 설 수도 없어서 다리가 아프다. 아직 다른 사람 도움 없이 맨바닥에 쪼그려 앉기가 힘든 탓이다. 앉으려면 앉을 수야 있기는 하지만 한번 철퍼덕 앉았다가 일어날 때면 다른 쪽 무릎에 힘이 들어가서 아프다.
일 분이라도 늦게 들어가면 선생님 눈빛이 차갑다. 나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마는 사실상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왜 늦었나요? 물어보시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제가 다리도 아프고 그래서…, 그래서 지각을 했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 다리 아픈 거랑 지각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라고…. 참 구차하고 치사한 변명이기 그지없다.
그래도 그 구차하고 치사한 변명을 목구멍으로 한번 삼키고 나면 아이들이 내뱉는 구차하고 치사한 변명들이 하나하나 이해 가기 시작한다. 발표하기 싫어하는 아이도 나름의 변명이 있을 수 있겠구나. 마악 변성기가 온 자기 목소리가 싫어서 그럴 수도 있겠어. 지각한 아이도 나름의 변명이 있겠구나. 원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오늘은 집 밖에 나오니 갑자기 비가 왔던 거야. 자전거로 오가던 거리를 걸어서 오니 평소보다 늦게 올 수밖에…. 그렇게 아이들이 횡설수설하던 두서없는 말들이 하나둘 이해 가기 시작한다. 이해하려고 애써도 이해가지 않던 것들이 이해가 된다. 참 신기한 일이다.
어떤 날은 억울한 일도 있었다. 운동을 하려면 운동 도구가 들어있는 주머니가 필요한데, 그날 내가 받은 주머니에는 운동 도구가 하나 빠져 있었다. 선생님이 뭔가 열심히 설명하고 계시길래 방해하기 싫어서 기다리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도구가 없는데….’ 그러자 선생님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진작에 말하시지….’ 하시는 것이었다.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그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선생님의 짜증 섞인 표정과 말투가 익숙했다. 선생님을 통해 나를 본 것이다.
초등학생들은 아직 어려서 무슨 말을 하면 한 번에 잘 알아듣지 못한다. 노트에 날짜를 쓰라고 하면 한 명이 묻는다. ‘오늘 무슨 요일인데요?’ 월요일이라고 알려주면 또 다른 아이가 묻는다. ‘무슨 요일이라고요?’ 월요일이라고 또 알려준다. 그럼 또 다른 아이가 묻는다. ‘전 아까 못 들었는데 무슨 요일이에요?’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방금 말해줬잖아, 월요일이라고….’이렇게 짜증 섞인 말이 나올 때도 있다.
운동 선생님도 짜증이 났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냥 재빠르게 가서 다른 운동 주머니로 바꿔왔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난 지금 다리가 아파서 번쩍번쩍 일어나서 바꿔오기가 남들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선생님의 반응이 몹시 억울하고 짜증이 났다. 짜증이 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아이들도 똑같지 않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도 조금만 집중해서 내 말을 들었으면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고 여섯 번씩 묻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집중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여간 어려운 일인가? 그게 되면 그게 어른이지 애인가?
그렇게 아파서 미숙해진 내 몸을 통해, 어린이라 필연적으로 미숙한 이들을 본다. 이렇게 계속 아파보고 이렇게 계속 들여다보면, 그래도 누구 가슴에 평생 남을 상처 한 두 개 남기지 않고도 계속 가르칠 수 있겠구나 싶다.
훈육이란 게 참 어렵다. 엄하면 상처주기 쉽고 마냥 친절하면 얕보이기 쉽다. 얕보이면 얕보이는 대로 결국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주게 된다. 세상 어른들이 전부 오은영 박사님처럼 아이들을 잘 돌볼 줄 안다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 입은 아이 한 명씩 안고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게 어려운 어른이 참 많고, 체벌이 합법이었던 마지막 세대이자 체벌 없이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첫 세대인 나 역시 마찬가지다. 황무지에 무작정 씨앗을 뿌리고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배운 적 없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대한다. 아직 정확한 답은 모르지만 찾아가려는 중이다. 아픈 무릎으로, 절뚝거리면서도 계속 걸어간다. 다만 자주 친절하려 애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