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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주 Mar 07. 2024

원한의 독을 약으로

상위 1% 맹독 보톡스가 미를 지키는 약이 되듯이

둘째가 1학년이 되었다.

나는 장애인을 키우며 행복할 수 있는 법을 찾아 8년을 헤매는 중이다.

둘째가 중증 장애인이 될 거라는 말을 듣고 좌절과 분노 원망이 온 세포를 장악했다는 걸 나는 숨기지 않겠다.

그러나 그 엄청난 정신적 시련이 남을 새롭게 보게 했다.

암으로 죽어가는 삼십 살 엄마 작가가 있었다.

다섯 살 아들이 여섯 살이 되는 걸 보지 못할 4기에 을 발견했기에 그녀는 이별준비를 잘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는 그녀의 유머 있는 투병일기를 도저히 읽기 힘들었다.

그녀의 고통은 알 것 같은데 왜 그녀는 행복 비슷한 상태를 갖고 나는 이렇게 불행에 찰싹 붙어사는지.

내가 너무 못나 보이고 그녀가 혹시 거짓말을 하는가 의심도 들었다.

그러나 둘째를 낳으며 지금까지도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는 나이기에 삼 개월 뒤 죽을 그녀가 거짓말을 쓰고 그릴리 없다는 걸 알기에 그녀의 일기가 버거웠다.

어쨌든 나는 그런 저런 일들을 거치며 6년간 죽지 않고 내가 살 이유를 찾아 헤맸다.

내 딸은 360도 어느 각도에서 봐도 좋은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 딸의 엄마인 내가 취할  태도도 오리무중이었다.

아프니까 아프다고 소리만 질렀다.

원래 아픔을 고상하게 이 악 물고 버텨내는 인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 내게 질문은 명확했다.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도 잘 살 수 있을까요?

이런데도 행복할 수 있나요?

그래도 마흔은 질문의 필요를 아는 나이다.

질문이 있는 사람은 답을 찾기 위해 헤매고 다닐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어쨌든 답을 찾는다.

답인데 마음에 안 들 수 있다는 건 둘째 문제로 처음 알게 된 인생의 지혜였다.

그전까지 나는 대체로 답을 찾았을 때 안도했다.

그런데 둘째로 생긴 질문에서 나오는 답이 영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 둘째가 일곱 살이 되면서 한결 편안해졌다.

지금은 한고비 넘어왔다는 확신이 든다.

톨스토이는 작은 고민은 인생의 균형을 깨지만 큰 고통은 사람을 바꾼다고 했다.

이 말은 사실이다.

세상에 떠다니는 말 중에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이 육체적 사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육체는 껍데기요 영혼은 에너지라 보기 때문에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방향을 틀어 나아간다는 말로 이해된다.

결국 톨스토이는 철학적인 변화를 가리킨 거다.

큰 고통은 나를 독을 품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독과 함께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자만일까 봐 조심스럽지만 독을 다스리고 약으로 쓰려고 노력 중인 사람쯤 된 것 같다.

여전히 장애인의 가족으로 산다는 게 좋다거나 일어나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독을 약으로 쓸 수 있다는 걸 안다.

보톡스처럼 말이다.

보톡스는 맹독이다.

그런데 간이 버텨낼 양으로 적절하게 쓰면 젊음을 유지시켜 주는 약이 된다.

나도 내 분노와 원망, 슬픔을 인생 좀 아는 사람, 지혜와 혜안이 열린 사람이 되는 데 쓰기로 했다.

내 분노와 원망과 슬픔에게 매일 치르는 의식이 있다.

나는 이것을 하루에도 여러 번 수시로 한다.

내 나쁜 마음에게 미안해, 용서해, 고마워, 사랑해를 하는 중이다.

슬퍼할만하다고 토닥여주니까 마음이 한결 좋아한다.

마음은 음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을 하는 거다.

마음을 먹자.

맛있게 즐겁게 행복하게.

나는 내가 심리 미술학원 원장이 된 게 좀 대견하다.

지치지 않고 나서주는 내 마음을 존경한다.

화도 나있고 슬프고 두렵고 죽고 싶고 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은데도 그걸 외면하지 않고 느껴주고 있기에 미안하고 용서하며 감사하고 사랑한다.

내가 오늘도 기도하고 한 걸음 정진할 수 있는 건 내 마음이 아파하는 덕분이다.

그리고 내 마음이 계속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다.

이번 이야기는 꽤 괜찮은 그림책이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잠깐.

큰 고통이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는 말은

소위 폐인이 되는 걸 가리킨다.

그러니 약이 되도록 마음 잘 먹자.

마음은 음식이다.

과식하면 살찌고 안 먹으면 약해지고 잘못 먹으면 채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마음을 잘 먹자.

그래서 내 학원이름이 마음팔레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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