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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Oct 21. 2022

그날 새벽 화장실에서 만난 것은.

때 지난 납량특집(안무서움 주의)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사무실에 출근해서야 당일 당직근무임을 알게 된 것만 빼면. 그런 줄 알았으면 미리 짐을 챙겨서 출근했을 텐데. 갈아입을 옷도 없이 하룻밤을 꼬박 새게 되어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 외에는. 평범하게 업무를 보는 날이었다.


  우리 회사는 당직근무제를 운영 중이다. 그렇다고 무슨 생산 공장처럼 야간 3교대를 돌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옥 자체가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임시 피난처의 역할을 한다나? 회사에서 생산하는 물품의 특수성도 어느정도 있는 터라, 청사 경비를 하는 분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비상 시 응소할 수 있는 야간 근무자를 지정해두어야 한단다.


  이런 것도 이제 쌓이는 연차에 비례해 반복되는 당직의 횟수만큼 점차 익숙해지고 있었다. 직원들이 다 떠나고 남은 사옥은 항상 고요한 이질감을 띠고 있었다. 평소 사람들의 활기찬 기운이 말끔히 소거된 사옥의 모습은 사람을 사뭇 긴장하게 만들었고, 마치 휴일에 학교에 혼자 나온 초등학생처럼 나는 그 두근거림을 즐기기도 했다.


  사옥 당직의 인원은 두 명. 한 명은 팀장급 이상이며, 나머지 하나는 대리부터 평사원까지의 직급이 맡는다. 긴긴 밤, 적적하지 않게나마 한 명 더 배치해주는 모양이기도 했지만 차라리 혼자였으면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고, 직급도 아직까지 대리인 나는 윗사람들을 대하는 게 썩 불편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당일 당직 메이트가 그래도 평소에 안면이 있는 옆 부서 팀장님인지라 적당히 회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주변 신상 잡담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저녁으로 부대찌개를 시켜먹고 TV도 보다가, 가져온 책도 조금 읽는 둥 마는 둥하며 시간을 때운 지가 어느덧 5시간쯤 되었다.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팀장님은 입이 심심한지 연신 담배를 태우러 들락날락하는 중이었다. 담배를 태우고 들어오는 팀장을 보며 “저희 이제 그만 잘까요?” 라고 말을 걸며, 침구류를 준비했다. 어차피 우리는 사옥을 지키는 것도, 생산을 담당하는 것도 아닌 단순 비상 응소직원이기 때문에 유사시(有事時)에만 업무를 보면 되는 것이었다. 아무 일도 없으면 그걸로 그날 당직은 끝. 그렇게 아무 일도 없이 끝났으면 이 글을 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조용히 잠을 자다가 눈이 떠졌다. 단잠을 깨운 것은 아랫배. 부대찌개가 점심에 먹어낸 음식들을 밀어내고 있는지 갑작스런 통증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새벽 2시 언저리였다. 화장실은 당직실에서 10걸음 정도 떨어진 사옥 로비 공용 화장실.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인지라 흘러내리는 허리춤을 여민 채 대충 신발을 구겨 신고 화장실로 향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통증인데, 정작 화장실에 가서는 의외로 결과물(?)이 신속하게 나오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준비과정이 필요한 것 같은 배를 살살 달래며 변기에 앉아있기를 10분 정도. 우리 사옥 화장실은 평소 에너지 절감을 위해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를 달아놓는다. 공공기관 화장실 같은 곳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사람이 입장하면 불 켜지고, 퇴장하면 불 꺼지는 그것 말이다. 문제는 그것도 일정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동 소등이 된다는 것을 내가 몰랐다는 거지.


  볼일을 보고 있는 도중, 갑자기 화장실의 불이 ‘탁’ 소리를 내며 꺼져버렸다. 새벽의 사옥 화장실은 그야말로 암흑. 스마트폰 불빛만이 내가 들어와 있는 화장실 칸에서 미약하게나마 어둠에 반항하고 있는 한 줄기 등대였다. 그것도 곧 어둠에 금방 잡아먹힐 것만 같은.


  사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그러한 상황에 놀라기는 하지만 겁을 집어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비데 버튼을 작동시켜보며 ‘비데는 되는구나.’ 하고 안심했을 정도.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점차 어둠이 심어주는 불안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까부터 이 화장실을 감도는 적막감(寂寞感)은 대체 뭐지? 


  나 혼자 아무도 없는 암흑 속에 있다는 불안감이 공포로 변색되는 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급하게 일을 마무리 하고 뒷정리를 한 다음 일어났다. 변기의 물을 내렸어야 하지만 이런 적막과 어둠 속에서 그렇게 큰 소리를 내게 되면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 이 공포에 내 스스로가 너무 놀랄 것만 같았다. ‘불부터 켜자. 나갔다 들어와야겠다.’ 하고 생각하며 문을 연 순간.




내가 본 것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누군가의 하반신이었다.




정확히는 봤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미약한 불빛만을 의지한 채, 그 좁은 화장실 칸의 문을 열 때, 내 시선은 아래를 향해 있었다. 그 아래를 향한 시선의 끝에 들어온 것은 바지를 입고, 검은 구두를 신은 채 내 화장실 칸 앞에 서서 나를 마주하고 있는 누군가의 하반신이었던 것이다.


  머리는 판단을 할 여력이 없었다. 갑자기. 이 화장실에. 칠흑 같은 이곳에 인기척도 없이 누군가의 하반신이 나타났다니.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것은 그나마 감각이 남아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 자리에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그것의 위를 차마 올려다 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아니. 그냥 그 자리에서 내 몸의 모든 근육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나는 미동도 못한 채 내 눈에 들어온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폰의 화면에서 나오는 흰색 불빛과 그 불빛에 얼비쳐서 보이는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은 채 나를 마주하고 있는 암흑 속 남자의 하반신.


  몸이 굳은 것과는 별개로 머릿속은 돌아갔다. 그렇지만 그렇게 신속한 편은 아니어서 ‘대체 뭐…?’ 정도의 사고에 머물러 있는 수준. 가위에 눌렸다면 적당한 표현이겠지만, 문제는 내가 자다가 가위에 눌린 것이 아니란 점이었다. 정말 1분도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것과 대치한 것은 마치 한 시간이나 지난 것만 같았다.


  그것을 마주한 후 처음 머릿속에 완성된 문장은 부정 시도였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닐까?’ 그러기엔 아직도 그것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눈을 질끈 감았다 떠야 하나?’ 그랬다가는 내가 눈을 뜨면 정체모를 그것이 허리를 굽혀 나랑 눈을 마주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탁.’ 


  화장실의 불이 다시 켜 졌다. 불이 켜지는 순간 그것은 거짓말처럼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눈을 감았다 뜬 것도 아니고, 그저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굳어있던 내 몸의 모든 감각이 돌아왔다.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으나 그곳엔 화장실 칸과 마주하고 있는 소변기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감각은 청각. 다시금 불이 켜지며 전력이 공급되어 소변기 자동 물 내림 장치들의 전원이 켜지는 기계음이 들렸다. 그 다음엔 화장실 입구 쪽에서 누군가가 들어오는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 


“아, 뭐야. 이 대리 화장실 갔었어?”


소리의 주인공은 같이 당직을 서던 팀장님.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도 더 반가운 얼굴이었다.


“네, 자다가 갑자기 배가 좀 아파갖구….” 돌아오는 감각을 느끼며 내가 웅얼거렸다.


“아이, 자다가 이 대리 나가는 소리에 깼는데, 잠이 너무 확 깨버렸어. 그래서 저쪽 쪽문 열고 담배 한 대 태우고….”


 그러고보니 이젠 후각도 돌아오고 있었다. 방금 연초를 즐기고 온 팀장님한테는 바깥 바람의 비릿한 향기와 함께 매캐한 담배 내음이 났다.


“아, 죄송합니다. 조용히 나온다고 나왔는데.” 공포에 움츠러들어 말려있던 어깨를 펴며 내가 말했다.


“됐어, 방이 좁은 걸. 먼저 들어가셔.”


 팀장님을 뒤로하고 그 공포로 점철되어 있던 공간을 벗어났다. 화장실을 나와 불 꺼진 사옥 로비를 둘러보았다. 텅 빈 이질감을 즐기던 사옥의 복도 끝은 마치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법하게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등 뒤로 끼쳐오는 소름을 느끼며, 다시 당직실로 돌아가서 누웠다. ‘방금 내가 본 것은 대체 뭐였을까?’


  우리 사옥은 지은 지는 오래되었다만 여느 학교나 기숙사처럼 무슨 공동묘지 위에 건물을 지었다든지, 혹은 누군가 건물 내에서 죽은 사람이 있다든지 하는 허황된 소문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아까 화장실에서 무엇인가와의 조우(遭遇)가 그나마 이해가 될 법도 했다. 그렇다고 무엇인가 화장실에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쩌다 내가 그 새벽의 화장실에서 미지의 무엇인가를 만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일은 정말 따끈따끈하게 오늘 새벽에 겪은 일이다. 애초에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해 본 적도 없었고, 무슨 영적인 감각이 있다느니 하는 사람도 아닐 뿐더러, 미신에 의지하는 편도 아니기에 아직까지도 오늘 겪은 일이 얼떨떨하기만 하다. 누군가 이런 일을 또 겪게 된 사람이 있다고 할 때까지 오늘 일은 함구(緘口)하고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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