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예쁜 사람을 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

세상을 바라볼 때

by 광규

[마음이 예쁜 사람을 보면]

마음이 예쁜 사람을 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 어디서 이런 말들을 배워 쓰는 건지 정말 같은 국어 교육 과정을 밟은 게 맞나 싶을 만큼 탁월한 사람들이 있다. 말이란 그렇다. 눈빛이 그렇다 말하듯 말은 마음의 창이며, 말버릇은 그 사람의 깊은 내면의 상태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버릇이 조심스럽고 섬세한 사람은 대개 마음이 따뜻하고 진심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인격자임을 알 수 있다.


[배려]

배려라는 게 있다. 사람 마음이 귀한 줄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결한 품성이다. 공감으로부터 비롯된 사려는 깊은 곳까지 닿아 사람의 마음은 편안하게 해 준다. 알게 모르게 해주는 것이 진짜 배려이며, 모르는 중에서도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먼 옛날 군자들이 가르치려 한 도덕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이 시대의 군자라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따듯한 사람을 보면 깜짝 놀란다.


[공손한 사람]

공손한 사람이 있다. 스스로를 낮출 수 있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서 이미 스스로를 인정해주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 사람의 마음이 더욱 건강한 이유가 설명되는데 그 인정이 타인에게까지 닿는 사람이라야 진정 공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참 멋있다고 느껴진다. 이들은 자신을 멋지다 말해줌과 동시에 그와 함께 있는 나까지도 멋있다고 생각해주기 때문이다.


사역자로서 사람을 만나고, 대하다 보면 느낄 수 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아직 세상엔 얼마나 아름다운 이들이 많이 남아있는지. 나를 힘겹게 하는 이들만 생각하면 세상이 참 좁아진다. 내 속에 좁아지는 만큼 나의 눈동자 속에서 비추는 창도 좁아진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분들이 남아 계시구나”한다면 아직 세상이 참 아름답다 느껴진다.


먼 옛날 소돔과 고모라에서 의인 한 사람이 없어 심판을 받았다 하는 말이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질 만큼 요즘은 사람을 대하기도 두렵고 선뜻 의인이 되는 것도 어려운 시절이 찾아온 것 같다. 여전히 뉴스를 보면 가슴 아픈 소식들이 들리는데 귀를 열고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려고 해도 결국 들리는 말은 “힘들다”하는 것들 뿐이다. 만나서 할 말이라는 게 힘들다는 하소연뿐이라 그런 게 아니다. 나 같이 멀리 있던 사람을 만나서라도 힘들다고 할 만큼 그 처지와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는 게 나는 참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나는 경청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저마다의 마음속엔]

그렇게 듣고 또 들어주다 보면 깨닫는 사실이 있다. 누구나 저마다의 마음속엔 정말 어여쁘고 예쁜 면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놀랍다. 마음이 예쁜 사람은 정말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다. 단지 그들은 속내를 털어놓아 그 마음에 쌓이고 쌓인 것들에 짓눌려 주변을 아름답게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놀랍고 아프다. 하지만 나는 또 한 번 희망을 가져본다. 예수라는 분이 세상에 소망을 품었던 것처럼 여전히 누구나 의롭다 함을 입을 수 있다는 그 사실에 나는 소망을 걸어본다.


당신도 지금 힘든 일이 있어 좋은 사람이 되어주지 못할 수 있다. 그럴 땐 나를 찾아와 응어리를 풀어버리고 세상을 세상답게 바라보며 멋진 당신처럼 저들도 멋지게 대해줄 수 있는 여유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마음이 예쁜 당신이 여기에 있다. 이 글을 찾아올 만큼 깜짝 놀랄 이야기는 바로 당신에게도 있다. 그러니 이제 쉼을 얻어 예쁜 당신을 먼저 비춰볼 수 있었으면 한다.